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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특별한, 히라야마

2018-04-16 오후 5:51:00

일본 유학파로 지난해 제오헤어&프랑크프로보 헤어 콘테스트 포토 부문 금상을 수상한 제오헤어 범계점 히라야마 점장을 만났다.

에디터 장혜민
포토그래퍼 정푸르나


<그라피>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해주세요. 올해로 미용 경력 17년 차인 히라야마 아키라입니다. 현제 제오헤어 범계점의 점장으로, 항상직원들과의 팀워크를 1순위로 두고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명이 ‘히라야마’예요. 조금 독특한데요? 고객들도 많이 하는질문입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 사람들 틈에서 튀지 않으려고 사용했고, 지금은 고객들에게 일본식 미용 서비스를 하고 있음을 알리려고 쓰고 있어요. 제 본명은 신창섭(申昌燮)인데 일본에서 한자가 히라야마 아키라로 읽혀서 유학 시절부터 줄곧 사용하고 있습니다. 살롱 주변에 일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제 프로필을 보고 많이들 방문하죠.

작년 제오&프랑크프로보 대회 포토슈팅 부문 금상을 수상했어요. 해당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작년 9월 초에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당크스(DANKS)라는 굉장히 큰 미용 대회가 열렸어요. 참가인원 규모로 기네스에 오를 정도죠. 그 대회를 통해 다양한 사진들을보았고 영감을 얻어 ‘White Noise(백색소음)’를 만들게 됐어요. 백색소음은 흰색 컬러 스프레이와 회색 컬러 왁스, 작은 아이론으로 머리를 만지면서 제가 머릿속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으로,전체적인 밸런스와 컬의 흐름, 사진 포커스를 자연스럽게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수백 번 셔터를 누르고 단 한장을 셀렉하려니 쉽지 않더군요. 다른 출전자들은 본사에서 정해놓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거나 사진가에게 의뢰했지만 저는 직접 촬영을했기 때문에 의상부터 촬영 배경, 메이크업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많았죠.

원래 3년 전에 살롱 마케팅을 배우려고 포토슈팅 수업을 듣게 됐는데 그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모델에게도 여러가지 포즈를 요구했는데 결국 제목과 딱 부합하는 샷이 나와 주었죠.마지막에 측면과 정면 샷 두 장을 놓고 고민했지만 결국 정면 샷으로 승부를 걸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됐습니다. 올해 콘테스트에도 미리 생각해놓은 이미지가 있어 참가할 예정입니다. 아, 제2회 그라피 포토어워즈에도 참가하려고요.
5년 동안 일본에서 유학을 했어요. 일본으로 떠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군대 제대 후 이가자헤어비스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지만1년이 채 안 되어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별한 무기를갖고 싶었고 그 해답을 일본에서 찾기로 결심했어요. 그 후 6개월 정도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일본 내 어학원과 살 집을 알아보았고, 대학교 졸업과 함께 2007년 4월부터 일본 도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죠. 하루 4시간 어학원을 다니며 나머지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일본어도 서툴고 미용 경력도 많지 않아, 일본에 간 첫날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도착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그곳에서 근무하게 됐어요.

6개월만에 식당일을 그만두고 신주쿠에 있는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쉼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점장이라는 직급을달고 긴자와 우에노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주로 업스타일을 했고 VIP 고객 응대 서비스를 배웠습니다. ‘꼬리빗과 아이론, 스프레이만 있으면 내 힘으로 일본에서 충분히 돈을 벌어서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덕분에 비즈니스 비자가 쉽게 나와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을 6개월 동안 모르고 지내는 바람에 심적으로 힘든 시기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5년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나요? 2011년 발생한 대지진으로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반강제로 소환됐죠. 일본에서 공부했다고 한국에서 더 잘될 거란 기대는 없었습니다.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었고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이 제겐 너무스트레스였죠. 한국에 오자마자 청담동의 살롱인 블로우브러쉬 초창기 멤버로 들어갔는데 많은 연예인들과 각종 매거진 촬영을 통해 포토슈팅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대표님께 꾸중도 많이 듣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됐죠. 하지만 청담동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스타일은 당시 막 일본에서 돌아와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지금의 제오헤어에 입사했습니다.

일본과 한국 미용의 차이점을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서비스에서 차이가 있어요. 일본의 서비스는 고객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되, 서비스가 끝나면 고객이 디자이너를 우러러본다고 해야 할까요. 디자이너가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노력한 부분을 고객 한 명 한 명에게어필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또 서비스에 대한 퀄리티도 다른데, 예를 들면 탁자 밑을 손걸레로 닦더라도 디테일한 자세까지 배우는게 일본의 서비스 문화죠. 고객에게 서비스할 때 시술 정보를 제공하는 비중이 3 라면, 저의 말투와 음성 등 사소하지만 세심한 애티튜드가 나머지 97 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일본의 밍스(MINX) 살롱 긴자점과 카키모토암즈 살롱을 다녀왔어요. 긴자는 한국의 청담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위치한 많은 고급 살롱들의 추세가 디자이너 경력과 무관하게 기술 위주로 요금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미용인들이 포토슈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헤어 디자인을 만들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 과정 자체가 디자이너에게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용도예술인데 애써 표현한 걸 남기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잖아요. 나만의작품을 기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롤모델이 있나요? 미야무라 히로키. 야마노 미용학교를 졸업하고 방송 헤어와 메이크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afloat라는 유명 살롱의 대표로 헤어와 관련한 많은 서적을 낸 인물입니다.제가 갖고 있지 않은 카리스마와 여성스러우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많이 닮고 싶은 분이죠. 일본 유학 중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당크스 대회 심사위원으로 우연히 만났어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요청을 드려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좋았죠.

앞으로의 목표. 미용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스타일을 만드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성장을 돕고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중에는 투자자로 영역을 넓히고 미용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저를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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