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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츠>, 진실과 거짓의 이중주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8.07.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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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이라고 하죠.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 모두가 행복한 상황. 눈앞의 평화를 위해선 사소한 죄책감 같은 건 잠시 접어두게 됩니다. 거짓말의 유일한 순기능이 아닐까 싶은데요.

“당신의 거짓말을 사랑해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2016년 작품 <프란츠>의 헤드카피는 이런 멋진 문장으로 완성됐습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실로 많은 의미가 숨어 있죠. 단순한 매혹의 고백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매 순간 힘겨운 대치를 이룹니다. 그리고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단아한 흑백 영상 속에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순간을 아름답게 담아냈죠.

사진은 <프란츠>스크린샷

<프란츠>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청년과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독일 여인이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죠. 원작은 독일의 거장 에른스트 루비치의 <내가 죽인 남자>(1932)입니다. 독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원작을 이번엔 프랑스 감독이 리메이크하게 됐으니 이것도 묘한 인연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난해하고 예술지향적인 영화를 선보여왔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다소 힘을 빼고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무엇보다 <프란츠>는 사랑에 관한 영화거든요. 그리고 절망의 극단에서 다시 일어서는 삶의 의지가 담겨 있죠. 아, 어떻게든 이 영화를 보게 만들려는 뻔한 거짓말이 아니에요. 꼭 한 번 감상을 권하는 아름다운 영화랍니다. 진짜로요.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약혼자 프란츠의 묘지 앞에서 안나는 오늘도 하루를 보냅니다. 이제 그만 잊고 너의 삶을 찾으라는 충고도 그녀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죠. 안나는 아직도 그의 영원한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설령 평생을 이렇게 슬픔으로 여위어 간다고 해도 말이죠.

어느 날, 그녀 앞에 프랑스에서 왔다는 청년 아드리앵이 나타납니다. 우수에 가득 찬 얼굴로 묘지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안나는 호기심을 느끼죠. 혹시 프란츠가 유학 시절 알게 된 친구가 아닐까 했는데 정말로 그는 프란츠와의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드리앵이 들려주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프란츠를 떠올리며 안나는 모처럼 슬픔에서 벗어납니다. 기쁨에 들떠 그를 환대한 건 프란츠의 부모도 마찬가지였고요.

희망은 늘 절망의 끝에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이 대목부터 흑백과 컬러를 교차 삽입하기 시작하는데요. 안나가 프란츠를 회상하거나 아드리앵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프란츠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은 컬러로 전환됩니다. 자칫 건조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흑백과 달리 화사한 파스텔 톤의 컬러는 이 슬픔에 가득 찬 인물들에게 잠깐의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안나도, 그리고 프란츠의 부모도 아드리앵에게 아들의 친구 이상의 호감을 느낄 무렵, 그가 안나에게 뜻밖의 고백을 해옵니다. 사실은 자신이 전장에서 프란츠를 죽였노라고. 그 죄책감을 잊지 못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노라고 말이죠. 내심 그가 프란츠의 부재를 채워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안나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전쟁의 비극보다 한마디의 진실에 더 상처받는 게 바로 인간이기도 하죠.

사진은 <프란츠> 스크린샷

그의 안부를 묻는 프란츠의 부모에게 안나는 아드리앵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거짓으로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설령 약혼자를 죽인 원수라 해도 그와 스치듯 나눴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이번엔 그녀가 아드리앵이 있는 프랑스 파리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아드리앵을 찾는 동안 안나는 그가 거짓으로 지어냈던 프란츠의 과거를 차근차근 밟아갑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네의 그림 ‘자살’을 처음 마주하게 되죠. 아드리앵은 이 그림 앞에서 손끝에 남은 살인의 감촉에 끝없이 괴로워했던 걸까요? 그림 속 주인공처럼 차라리 스스로 생을 등지고 싶은 생각뿐이었을 겁니다. 안나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죠. 우여곡절 끝에 안나는 아드리앵과 다시 해후하게 되는데요. 불행히도 아드리앵에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있었고 안나는 그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군요. 설마 모든 게 안나의 착각에서 비롯된 거였을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흔들렸던 것은 아드리앵도 마찬가지였겠죠. 다만 안나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온 것뿐. 겨우 찾은 이 평화가 다시 깨지는 걸 원치 않을 뿐입니다.

다시 루브르 박물관. 안나가 마네의 그림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절망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저 그림에서 안나는 오히려 삶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프란츠의 부모는 여전히 그녀가 아드리앵과 사랑을 키워갈 거라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고, 아드리앵은 안나가 독일로 돌아가 평상심을 되찾을 거라 믿고 안심할 겁니다. 슬픔만 가득했던 과거를 스스로 죽이고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현재를 사는 것. 그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안나가 도착한 삶의 종착역입니다.

제목인 ‘프란츠’는 사실 영화 속에서 전쟁의 망령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프란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죠. 슬픔과 고통의 철창 안에 가둬놓고 풀어주질 않습니다. 결국 착한 거짓말로 진실을 위장하더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안나의 결심은 프란츠라는 이름이 은유하는 전쟁의 참상, 극복해야 할 과거를 의미하겠죠. 마지막 안나의 표정, 아련한 미소가 그녀의 거짓말을 응원하게 만듭니다. 잘 가요 안나. 있는 힘껏 행복하기를.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산(山),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