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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적 - 영화 리뷰 '원더'
  • 성재희
  • 승인 2018.09.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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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란 말, 참 많이 듣고 자주 씁니다. 뭔가 자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 때, 타인의 획일화된 시선과 평가의 피사체가 되는 게 불쾌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쓰게 되는데요. 그런데 어떤 경우엔 말입니다. 이 말을 너무 단호하게 사용하거나 또는 신앙처럼 믿고 따를 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측은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뭐랄까, 살다 보면 타인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대범함보다 내가 틀렸다는 걸 수긍하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도 더러 있다는 거죠. 그래야 대화라는 게 가능하고 원한다면 해결책을 같이 의논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 몰랑! 난 그냥 좀 달라. 특별하다고!” 투쟁하듯 투정만 부리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안면기형장애를 안고 태어났죠. 27번의 수술로도 극복하지 못한 장애라는 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일 겁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당사자도, 그의 형제도, 무엇보다 그를 낳은 부모로선 말이죠. 육체의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은 바늘처럼 파고드는 타인의 시선입니다. 누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랄까 봐 우주인 헬멧을 쓰고 다닐 정도니까요. 

원더 Wonder, 2017 /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 주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원더 Wonder, 2017 /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 주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런 아이에게 “넌 다르긴 하지만 틀린 건 아니야”라는 판에 박힌 위로를 건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은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게 문제”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이 아이가 앞으로 집 밖에서 겪게 될 세상이 얼마나 험난하고 야만적이며 잔인한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라면 말입니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원더>(2017)는 R.J. 팔라시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앞서 예시로 든 안면기형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년 어기가 주인공입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나 다름없지만 어기와 그의 가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적의 스펙트럼을 확장해가죠. 흉측한 외모 때문에 열 살이 되도록 학교도 가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대신 가면을 쓸 수 있는 핼러윈을 좋아하는 소년 어기.

영화 &lt;원더&gt; 스크린샷
영화 원더 스크린샷

엄마 이사벨과 아빠 네이트는 긴 시간 고심 끝에 이제 어기를 세상과 만나게 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평생을 집에서 우주인 헬멧만 쓰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요. 학교는 어기에게도, 가족에게도 아주 중요한 도전의 무대인 셈입니다. 

천 개의 사소한 믿음

학교측의 배려로 사전에 급우들을 만나보는 시간까지 가졌건만, 어기의 첫 등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내심 어기와 가족들은 기적을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갓 구운 빵처럼 따뜻한 환대와 비타민 같은 격려. 하지만 그를 반긴 건 전혀 다른 종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출근길 버스정류장을 옮겨놓은 듯 발 디딜 틈 없던 광장이 홍해처럼 갈라지고 모든 대화와 동작이 일순간에 멈추는 기적이었죠.

 
영화 &lt;원더&gt; 스크린샷
영화 원더 스크린샷

27번의 수술을 이겨낸 인내심과 용기 같은 건 학교생활에 별반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그는 첫날부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리고 집단 속에서 느끼는 진짜 무서운 고통은 혼자인 나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임을 깨닫죠. 걱정을 가장한 호기심이야말로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무형의 린치라는 사실, 어기가 학교에서 배운 첫 번째 지식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생긴 것부터 남들과 달라서 문제인 소년의 눈물콧물 고군분투기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요.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죠. 세상이 작은 지옥인 건 장애를 타고난 어기뿐만이 아닙니다. 그를 둘러싼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자기만의 지옥을 하나씩 갖고 있었으니까요.

영화 &lt;원더&gt; 스크린샷
영화 원더 스크린샷

소설가 출신의 감독은 영리하게도 그들의 삶을 소년 어기로부터 떼내어 하나씩,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의 누나인 비아, 어기가 사귄 첫 번째 친구 잭, 비아의 단짝 친구 미란다 등 다양한 인물들이 어기의 등장과 함께 겪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어지는데요. 그들에게 세상이란 이름의 우주는 영원히 어기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이 아님을, 그의 위성 같은 주변인들의 삶도 얼마든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나름의 상처와 고민이 있음을 여러 개의 챕터로 담아냈습니다. 

영화 &lt;원더&gt; 스크린샷
영화 원더 스크린샷

<원더>가 장애 아동이 등장하는 여타의 드라마와 차별화된 매력을 발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소년 어기의 험난한 학교생활과 내면의 갈등만 비출 것 같았던 카메라가 멈춘 곳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주변인들의 일상이었죠. 희생과 인내만 강요되어왔던, 그래도 장애가 없으니까 저 아이보단 낫겠지 싶은 그들의 삶에도 고통의 화살촉은 예외 없이, 잔인하게 파고든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어쨌든 예상 가능한 몇 번의 사건사고를 거쳐 어기는 잠시 갈등을 빚기도 했던 급우들과 원만한 관계를 회복해갑니다. 끝내 편협함을 떨쳐내지 못한 악동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고요. 남 모를 사연을 힘겨워했던 어기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 오랜 상처와 갈등이 봉합되면서 준비된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갑니다. 교장 터쉬만의 말처럼, 어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외모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가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영화 &lt;원더&gt;의 스크린샷
영화 원더 스크린샷

27번의 수술도, 그토록 수천, 만번을 애타게 기도드렸던 신도 그것만은 구원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선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죠. 설령 그게 영화니까 가능한 판타지라고 해도 바꿀 수 있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적(Wonder)은 천 개의 사소한 믿음이 모였을 때 비로소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는 겁니다. 천 개의 촛불이 광장을 밝혔던 그날처럼 말입니다.

원더 Wonder, 2017 |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 주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