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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명장, 미용에서 예술을 보다
  • 성재희
  • 승인 2018.09.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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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명장의 헤어아트 전시회 오프닝이 정매자 미용기술위원장의 사회로 지난 8월 8일 서울 인사동 G&J 광주·전남갤러리에서 있었다. 잔칫집에 풍악이 빠질 수 없는 일. 용덕중 팝페라 가수가 분위기를 띄우고 유희순 자수 명장(2002년)이 전통 춤사위로 자리를 빛냈다. 김 명장과는 소위 ‘계급장 떼고’ 봐도 애틋한 사이라는 최영희 중앙회 회장은 정작 김 명장보다 더 감격한 목소리로 축사를 전했다. 

김진숙 1호 미용 명장이 인사동에서 헤어아트 전시회를 가졌다.
김진숙 1호 미용 명장이 인사동에서 헤어아트 전시회를 가졌다.

“일반 대중에게 미용 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작가의 노력에 미용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진숙 작가는 미용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미적 가치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했습니다.” 

김진숙 명장의 헤어아트전은 헤어아트에 대해 가진 그간의 편견을 깬다. 무등산의 갈대, 섬진강의 물빛을 머리카락 염색으로 그려냈다. 전시장을 채운 30여 작품은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리사이클링하는 수준을 넘어 미용과 미술을 접목시킨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듯 보였다.
 
“여기 작품은 다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에요.” “와, 정말이요?” 김진숙 명장의 작품 전시회에서는 계속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인터뷰하는 사이 찾아오는 일반 관람객들에게 김 명장은 손수 도록을 건네고 설명을 덧붙였다. “38년간 가둬두었던 작품을 세상 밖으로 처음 선보인 자리잖아요. 일반인들이 ‘이거 진짜 머리카락이냐’라며 놀라는 모습이 기분 좋네요.” 다음은 김 명장과 가진 일문일답이다. 
 
김진숙 미용 명장의 전시 작품 <여행에서 노을을 본다>와 <봄과 여름 사이>

헤어아트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예전엔 고객이 참 많았어요. 감사하는 마음 한편에는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싶은 회의가 들곤 했죠. 마음속에 열정이 넘치니현장에서 머리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어요. 1979년 대회 수상 특전으로 일본에서 한 달간 컬러 연수를 받고 처음으로 빨갛고 파란 머리를 해서 귀국했죠. 고객의 잘린 머리카락을 탈색해 책갈피를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걸로 꽃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던 중 1980년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송혜자 선생의 헤어쇼를 도우러 가서 머리카락으로 부케를 만든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에요. 스프레이로 금방 눅눅해져 오래가지 못했지만요.

미용을 시작한지 45년, 허기진 내 삶의 한 모퉁이에서 참 많은 시간을 미용과 함께 살아왔다. 무수히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또 자르고.... 그동안 나를 거쳐 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반복되는 일상에 머리카락을 만지고 빗질하고 만들면서 이것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 <도록> ‘미용에서 예술을 보며’ 중.

김진숙 명장은 명장이 되면서 헤어아트에 더욱 몰두했다. 결과물이 남는 다른 분야와 달리 미용은 한번 표현하고 나면 사라지는 특성상 마네킹 머리로 표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전칠기 등 상품적 가치가 있는 타 분야 작품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미용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가 헤어아트라고 생각했다.

김진숙 미용 명장의 작품 

머리카락으로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돈이나 벌지’ 하며 처음에는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누구도 가르쳐주거나 이끌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생각하고 만들며 지금까지 왔죠. 일단 소재에 대한 편견이나 금기 때문에 작품화가 쉽지 않았어요. 머리카락이 혐오스러운 소재로 치부되는 걸 극복하기 위해 모발에 염색을 했지요. 한동안 발색이 선명한 작품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천연 염색이 좋아요. 치자, 홍화씨, 울금, 소목, 아카시아 등을 끓여 매염제에 넣고 재료를 다듬지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카락 재료를 사전 작업해야 하는데 이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 작업을 직원들이 도와주기도 하는데, 광주 지역 인턴들 사이에서 ‘한울이 미용실에 가면 배울 건 많은데 일이 많아 힘들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렇게 38년을 하고서야 완성도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늘 뭔가 아쉽고 부족함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판매도 합니다. 사군자 인기가 좋고, 새 집에 걸어두겠다며 목단화를 구입하기도 하죠.

머리카락을 붙였다 떼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에 김 명장은 말하기도 싫다며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아예 풀에 손을 담그고 살았다. 투박한 손에 금이 간 손톱. 메니큐어는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전형적인 일하는 손이다. 전남 순천에서 8남매 셋째로 태어난 김 명장은 형제들을 위해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18세에 미용을 시작했다. 30대 중반에 공부를 다시 시작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광주대 산업교육학과에 진학하고 조선대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40세가 넘어 대학 진학을, 49세에 명장에 도전했습니다. 남들 안 하는 헤어아트도 40년 가까이 해왔고요. 다음 도전은 뭡니까.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대학 시험을 치렀어요. 노후에는 작품 활동을 하며 멋지고 우아하게 늙어야죠. 내년에 뉴욕 전시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작품 운송 등 제약이 있어 두고 봐야해요.

김진숙 미용 명장의 작품 <노을의 시간>

이쯤이면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하겠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사실 명장도 작정하고 도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언으로 준비하게 되었어요. 2000년대 들어 서비스 산업 쪽에도 명장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흐름이 있었으니 타이밍이 좋았죠.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포기는 안 해요. 남들처럼 ‘성취하겠다’고 작정하는 대신 왜 이 일이 나에게 주어졌을까를 생각하고 ‘할 수 있으니 주어졌겠지’ 하면서 시작하는 편이죠. 그래서 시간이 걸려도 결국은 해내지요. 이번 전시가 2018년 8월 일주일 간 연 전시에 불과해 보여도 38년의 세월이 집약된 것입니다. 시도, 실수, 실패가 쌓여 여기까지 온 거예요. 물론 어느 작품을 봐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그러니 새로운 디자인에 도전할 거예요. 욕심을 낸다면 헤어아트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을까요? 작업을 오래하다 보면 경향이 나타날 텐데요. 천경자 선생이 집안 먼 친척이에요. 고인이 된 아버지가 천경자 선생의 귀국 첫 전시회를 도와준 인연이 있지요. 처음에는 머리카락으로 꽃 만드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공예 이상의 작품성에 대한 욕심이 생겨 회화로 넘어갔지요. 현대인의 고독, 절망을 표현한 초현실주의까지 시도하고 있어요.

김진숙 명장은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예술로, 학문으로, 미술로 만들었다.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꿈이 묻혀갈 무렵 바닥에 툭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것이 꽃이 될 수 없을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머리카락을 재활용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염색했다. 스프레이를 뿌려 만든 꽃이 비만 오면 시든 풀잎처럼 눅눅해져 망가져버렸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의 시간이 억울했다. 그러한 힘든 과정을 통해 머리카락이 비로소 예술이 되고 학문이 되고 미술이 됐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실험과 도전정신만으로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술이 문외한인 나에게는 난해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는 작은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오늘의 이 시작이 평생을 바쳐온 미용과 머리카락의 역사가 되고 가치 있는 내 삶의 여정이기를 희망해 본다. - <도록> ‘미용에서 예술을 보며’ 중.  

김 명장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미래는 열어보지 않은 축복의 선물이다’이다. 김 명장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열고 싶은 것일까. 아니, 또 어떤 미래를 준비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에디터 성재희(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사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