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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패션지, 배우들과 작업하는 한국인 헤어 디자이너 '숀주'
  • 최은혜
  • 승인 2018.09.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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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보그>를 비롯해 패션 광고에서 세계적인 배우들의 헤어를 연출하는 숀주. 그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인정받기까지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한다.

미국 <바자> 촬영을 위해 도착한 섬. 그런데 짐이 하나도 안 왔다. 당장 촬영을 해야 하는데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해야 했기에 제품이며 도구를 구하러 섬을 뒤졌다. 그나마 메이크업 제품은 휴양지여도 매장이 있어 구할 수 있지만 섬에는 미용실도 없고 겨우 헤어스프레이 하나와 실핀을 구했다. 모델의 머리를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 스타일리스트의 비니를 뺏어서 머리에 씌우고 욕실에 스팀을 만들어 머리에 쐬게 한 뒤 풀어서 웨이브를 완성했다. 그렇게 첫날 메인 컷을 찍는데 성공했다. 마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미션을 수행한 도전자처럼.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게 더 재밌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겠죠. 머리를 하루 종일 땋았다가 풀었을 때 어떤 텍스처가 나온다든가, 머리를 말아서 풀었을 때 웨이브는 어떻게 나온다든지 말이죠”

숀주(본명 주형선)의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화보와 셀러브리티의 사진으로 넘쳐난다. 케이티 페리, 비요크, 틸다 스윈턴,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까지 그의 손끝에서 완성한 헤어가 콧대 높은 <보그> 표지와 화보, 유명 패션 브랜드의 광고에서 빛나고 있다. 프리랜스 헤어 디자이너인 그가 주로 하는 작업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판 <보그>를 비롯한 각종 패션지의 화보, 패션 광고, 뮤직비디오이다. “촬영장에선 혼자 작업해요. 자영업 같은 개념이죠. 영화처럼 호흡이 긴 작업은 하지 않고요”

런던을 가기 전 그는 국내에서도 프리랜스로 활동했다. 1990년대 후반 청춘 아이콘이었던 차태현, 김정은이 출연해 히트를 친 이동통신사 광고인 018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1990년 후반 배우 김현주가 모델로 출연한 아시아나 항공의 CF는 그의 첫 작품이다. <쎄씨> <키키> 등 영 패션지가 붐이었던 시절 지금은 톱스타가 된 송혜교, 이나영과 함께 촬영을 했다.

굵직한 CF 작업을 많이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공포 영화 <얼굴 없는 미녀>의 포스터에 나온 김 혜수의 헤어스타일이다. “구불구불한 머리를 앞으로 조금 내려 눈을 약간 가렸는데 굉장히 임팩트 있었죠. 촬영은 4시간도 안되어 끝났던 걸로 기억해요. 이런게 <그라피> 표지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웃음)”

2001년 사진작가협회에서 ‘올해의 헤어드레서상’을 받고 “내년에는 더 잘하겠습니다”라고 했던 그는 2002년 1월 런던으로 갔다. 처음부터 런던에 정착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일하다 보면 외국 모델도 만나고 외국 촬영도 잦았는데 영어를 못 하는 제 모습이 너무 바보 같더라고요.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미국으로 갈지 영국으로 갈지 고민했어요. 영국에는 유명한 미용인이 많이 나온 나라니까 영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정한 거죠” 그렇게 어학연수로 떠났지만 점차 현지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메일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500통의 이력서를 우편으로 에이전시, 미용실 등으로 보냈다. 그리고 딱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는 톱 디자이너였지만 영국에서는 미용실 보조부터 해야 했다. 한국에서 작업한 그의 포트폴리오를 본 미용실에서는 ‘이건 당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촬영 에이전시를 찾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그렇게 촬영 현장으로 가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다. 내가 돕는 이가 잘되어야 자신도 잘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한국에서는 촬영할 때 스태프에게 다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은 그렇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 디자이너가 직접 다해야 해요.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촬영이니까요. 어시스턴트는 모델이 2명이거나 잠깐 자리를 비울 때 도와줄 뿐이에요” 그가 이름을 알린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곳인지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크게 좌우했다.

어시스턴트로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에이전시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리고 패션 잡지 <아이디>의 4페이지짜리 작업으로 본 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모두 다 실력이 뛰어나고 잘하고 싶어 하죠. 자신의 작품이 유명 잡지에 들어가기 위해 이름을 걸고 열심히 해요. 경쟁도 심해요” 촬영장에서 헤어 디자이너는 머리를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계획과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론드 헤어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색이 어둡게 나왔다면 익스텐션으로든 가발로든 빠르게 그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

 

초기에 촬영 현장에서 당황스러웠던 건 연도별 헤어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0년대는 어떤 스타일이 유행했고, 60년대는 어떤 특징이 있고 시대별 헤어스타일을 꿰뚫어야 일하기 수월했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의 헤어스타일을 총망라한 관련 서적을 찾아 공부하며 촬영에 대비했다. “요즘 친구들은 쉽게 포기해버려요. 이 스타일을 위해 이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며 안 하려고 해요. 만약 컬링 아이론이 필요하지만 없으면 매직기로라도 대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경험이 많아지면 대처 능력이 생겨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똑같은 걸까? 유명인들과의 작업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고 시기하는 사람도 있다. ‘저건 나도 할 수 있는데 왜 네가 하니?’라며 자신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한다고.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데는 그만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사람과 일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이 확실히 있으니까 부르는 거죠. 케이티 페리의 경우 가발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꼭 저를 불러요. 뮤직비디오에서 커다란 헤어스타일을 요구하면 저는 더더욱 크게 만들어주죠.(웃음) 연예인은 항상 스타일리시하고 자신이 돋보이기를 바라는데 제가 그걸 해줘요. 그걸 못한 다면 부르지 않겠죠” 영국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적은 월급으로 살롱워크와 촬영 일을 병행했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빨리 성공해서 자리 잡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결국 인내심에서 판가름 난다.

1991년 미용을 시작한 그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음악, 미술 등의 예체능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용이 더 수월했는지 모른다. 명동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단계별로 이뤄갔다. 바라는 목표가 있다면 그걸 무작정 쫓기보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고 시작했다. 광주의 미용실에서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많이 배웠다. 선생마다 개인기도 달랐는데 한 분은 가위로 면도한 듯 커트를 기가 막히게 했고, 또 다른 분은 펌을 잘했으며 또 다른 분은 대부분의 컬링을 드라이로 할 정도로 블로우 드라이를 잘했다.

(왼쪽) 그에게 자주 헤어를 맡기는 팝 가수 케이티 페리 (오른쪽) 그의 작업 사진, 출처: 숀주 인스타그램 @shonju
(왼쪽) 그에게 자주 헤어를 맡기는 팝 가수 케이티 페리 (오른쪽) 그의 작업 사진, 출처: 숀주 인스타그램 @shonju

명동의 미용실에서 일했을 때도 한국의 비달사순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트를 잘하는 원장님 밑에서 일을 했다. 그에게 핑거 웨이브를 배우며 물집이 다 잡힐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끝까지 해내야 했다. 보조일 때는 ‘이 미용실에서 제일 잘하는 선생님의 보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목표로, 디자이너가 되어서는 ‘미용실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 되겠다’며 단계마다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정을 건너뛰고 빨리 이루려고 해요. 헤어는 정말 기초부터 잘해야 하는데 그걸 모르면 나중에 한계가 올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누구나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예쁘다, 멋있다 하고 그냥 넘어가요. 왜 멋있을까? 생각해보지도 않고요. 헤어스타일을 크게 연출한 사진을 봤을 때 비율 같은 것도 보면서 왜 머리가 큰데 과하게 안 보이고 멋있게 보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야 해요. 스타일링이 기대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사이즈나 비율에 대해 공부를 안 한 거죠”

간혹 한국에서 일하는 미용인들에게 그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면 그는 자신은 몇 년간 어떻게 일을 했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 말한 후 한국에서의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결과보다 과정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변수가 많은 촬영장에서는 경험 이상의 것이 없다.

“머리에 관한 어떤 요구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만 잘해서는 다음에 돌아올 유행 스타일을 맞추기 힘들어요. 거의 모든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이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 제가 한국에서 여러 경험을 안 했으면 영국에서 이렇게 일하지 못했을 거예요. 언어도 서툰 그곳에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실력뿐이 었기 때문이죠”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사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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