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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이자 엄마로서의 삶, 일본 헤어 아티스트 '준코 코바야시'
  • 김수정 에디터
  • 승인 2018.10.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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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인의 손은 ‘창조’하는 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소중하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이자 사진가인 김세호가 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기록한 창조하는 손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 이번 호는 일본 SHIMA의 점장을 거쳐 살롱 b.a.l.a.n.c.e의 오너가 된 준코 코바야시의 미용사로서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담았다.
 
도쿄 중심가의 유명 헤어 살롱에서 ‘카리스마 미용사’로 불리던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는 고객과 좀 더 나만의 미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개인 살롱을 오픈했다는 준코 코바야시. 머리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아닌,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하며 아름다워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살롱 b.a.l.a.n.c.e의 오너, 준코 코바야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b.a.l.a.n.c.e의 오너, 준코 코바야시
 
어떠한 계기로 헤어 아티스트가 되었나요?
어머니가 미용사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주변에서 당연히 어머니가 미용사이니 그 길을 따라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어린 시절 저의 눈에 어머니는 매일 즐겁게 고객과 함께 하셨어요. 왜,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내 자신이 미용사가 되어 그 즐거움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향 니가타에서 도쿄로 상경해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어릴 때 미용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예를 들어 어머니가 만든 주먹밥에는 펌 약의 냄새가 났죠. 당연히 어머니는 손을 깨끗이 씻고 만드셨지만 그 독특한 냄새가 음식에까지 밴 것 같았어요. 또 주말에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많이 외로웠어요. 또한 학교 수업 참관일 때,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미용사라는 직업이 너무 두드러져 보여서, 어린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죠.
 
가장 싫었던 것은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 친구나 친척으로부터 “어차피 엄마의 뒤를 이어 미용사가 될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어요. 내 인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항상 어머니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이렇게 싫은데 어머니는 왜 그토록 즐겁게 미용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하루 종일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적도 있어요.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시 롯폰기의 디스코장에 다니며 밤늦게까지 놀았어요. 이 때문에 식비를 줄여서라도 옷을 사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죠.(웃음) 거기서 알게 된 패션 관계자와 함께 패션이나, 헤어, 메이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사실 이건 지방에서 상경한 제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상적인 미용사 상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한 반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노는 감각은 없어진 것 같아요.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튀는 사람이 많아서 노는 문화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였어요.
 
준코 코바야시 프로필 사진
 
SHIMA를 퇴사한 후 살롱 b.a.l.a.n.c.e를 오픈한 스토리가 궁금해요.
사실 저는 평생 SHIMA에서 근무할 생각이었어요. 오너가 되고 싶거나 많은 부를 쌓기 위해 미용을 한다기보다는, 일생을 현역 미용사로 일하고 싶었던 것뿐이죠. 이를 위해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바로 SHIMA였고요. 그래서 미용을 그만둘 때까지 SHIMA에서 일할 것이라고 주위에 단언했죠. 그런데 서서히 SHIMA의 시스템이 저의 이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퇴사를 결심했어요. 이곳을 나가도 후회 없을까, 여러번 제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내가 되고 싶은 미용사란 무엇인가를 어머니의 모습에서 재확인했어요. 실은 퇴직 후 바로 살롱을 열게 되면 SHIMA를 카피할 것 같아서 약 1년간을 재정비하는 기간으로 삼고 많은 걸 하며 보냈어요.
 
그 중 본가에 돌아가서 재밌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내 고객과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구나’라는 걸 느꼈죠. 지금까지의 살롱워크는 늘 예약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손님들과 여유롭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일해왔던 다이칸야마에서 살롱 할 곳을 찾고 있을 무렵, 전에 잘 가던 카페가 있었어요. 그 카페를 보며 ‘이런 나무로 지어진 집이 살롱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음 달, 놀랍게도 그곳에 임대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거예요. 덕분에 이 나무 구조 건물에 외관도 시스템도 가정적인 살롱을 오픈하게 됐죠. 한동안은 SHIMA 시절 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공간으로 주목받았어요. 그즈음 결혼과 함께 아이를 출산했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경험했어요. 라이프 워크로 일생을 함께 걸어갈 새로운 미용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b.a.l.a.n.c.e는 어떤 살롱인가요?
저는 스태프를 고용할 때 전과 다른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된 경력자들로만 채용을 했어요. 또한 매뉴얼은 최소한으로 줄였죠. 살롱의 입지 환경은 역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가정집 같은 곳이었어요. 살롱을 열기 전, 가정적이면서도 커피나 음료를 내주는 카운터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강아지가 있어서 힐링이 되는 공간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전에 카페였던 이 장소예요. 저는 손님과 함께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살롱명 ‘Balance’는 일반적인 균형의 의미가 아니고, 극단적인 두 개를 합쳐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세련된 분위기와 따뜻한 인간미가 공존하는 곳.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극단을 겸하고 있는 살롱. 그것이 제가 지향하고 있는 인생관이기도 합니다. 제가 살롱을 오픈한 이래, 모토로 삼는 것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말자’예요. 보통은 ‘공과 사를 구분하자’가 맞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미용사가 평생 해나갈 라이프 워크라고 생각하는 만큼, 일을 할 때 인간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친구의 결혼식에 가고 싶어도, 주말은 쉽게 쉴 수 없는 게 이 직업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녀 오라고 해요.(웃음)
 
또한 지각에 관해서도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벌금이란 것도 없습니다. 연인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때도 있고, 조금 괜찮아질 때까지 옆에 있어줄 수도 있고, 출근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길을 물어보면 안내하느라 좀 늦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인간적인 미용인이 되었으면 해요. 단,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절대 안 돼요. 다행히 우리 살롱의 스태프들은 늘 일찍 와주고 있죠.(웃음) 사회인으로서 알아서 잘 판단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준코 코바야시의 살롱’이 아닌 ‘본인들의 살롱’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줬으면 좋겠어요.
 
준코 코바야시 작업물
 
당신의 교육 방식은 어떤가요?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요. 또 오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도록 지도하고 있죠. 지금은 제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교육하고 있어요. 자기주장을 하기에 앞서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라고 하죠. 그리고 그 사람이 생각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줄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3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3명 모두 한 살까지는 제가 키웠고 그 후에는 유아원에 맡겼죠. 신기하게도 일을 하는 시간에는 일적인 생각만 하게 되고, 6시가 되면 아이들 생각만 하게 돼요. 마치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처럼요.

이는 스태프와 가족 모두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듣는 질문으로 여성으로서 살롱을 경영하며 일과 육아, 가정을 양립시키는 비결이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항상 머릿속에 이미지화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해요. 일을 하며 생기는 에너지와 파장은 남성보다 여성이 넓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미용사로서 똑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도 ‘꼭 할 수 있다’라고 응원하고 싶어요.
 
남성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여성들에게 ‘마음의 서포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고마워’라는 한마디로도 좋아요. 그게 여성에게는 큰 비타민제가 될 테니까요. 저는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미용사들이 좀 더 편하게 말을 걸어올 수 있는 살롱을 운영하고 있어요.

SHIMA와 같은 체인 살롱과 현재 운영하고 있는 b.a.l.a.n.c.e처럼 개인 살롱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대형 살롱과 개인 살롱의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를 꼽자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b.a.l.a.n.c.e 쪽이 좀 더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간에 서로 의논해 결정하고 즉시 실행하죠. 반대로 단점은 유행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직원 간의 건전한 경쟁의식이 퇴색되기 쉽다는 점도 있겠네요.
 
살롱에 아이를 데려와 돌보면서 일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고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입니다.
일본에서도 특히 도쿄에서는 정말 보기 드물죠. 아이가 살롱에 있는 동안에는 운다든지 분유를 마신다든지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해요. 때로는 고객에게 불편을 끼쳐드릴 수도 있죠. 그러나 육아를 경험한 고객들이나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고객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저 역시도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고민을 나눌 수 있었고요. 심지어 저를 롤모델로 생각하며 제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어떻게 워킹맘을 할 수 있는지 흥미를 가지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어요.(웃음) 일과 육아의 병행이 가능한지는 그 전에 ‘내가 어떻게 고객들과 함께 살롱워크를 해왔나’라는 생각에 달려 있어요. 이 마인드를 많은 이들께 전하고 싶네요.
 
준코 코바야시 작업물
 
여성 미용인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였나요?
제가 살롱을 오픈하고, 결혼 후 임신, 출산, 거기에 육아까지 경험하면서 지인들에게 힘든 점들을 얘기했죠. 그때 저 외에도 많은 여성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중에는 동기나 다른 남자 스태프보다 매출이 좋았던 여성 미용사들이 결혼이나 출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었죠. 여성 미용사로서 또 살롱의 경영자로서 ‘그녀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출산을 앞둔 여성 미용사들도 준비와 각오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경영자들도 출산 휴가, 육아 휴직에 대한 방법을 잘 몰랐을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먼저 겪은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또 조금이나마 용기를 북돋아줌으로써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잘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여성 미용사들의 ‘선구자’가 되고 싶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육아로 인해 살롱워크를 줄이는 것이 고객에게 정말 죄송스러운 일이죠. 사실 제 남편은 결혼 전에 굳이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아이를 원했지만,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기로 했죠. 그런데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날 남편과 와인을 마셨어요. 남편은 “이런 집이라면 아이를 가져도 되겠네”라고 말했고, 운 좋게도 곧 아이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살롱 내에서 육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반대했지만, 제 살롱의 스태프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고맙게도 모두가 이해를 해주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도 잘 해오고 있고, 다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잘 협력해주고 있어요.(웃음) 우유를 타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같은 거죠. 때로는 고객들이 도와주기도 해요. 
 
처음에는 영업시간을 꽉 채워 근무했기 때문에 귀가 시간이 밤 10시에서 11시 정도였어요. 그것은 아이에게는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아이를 위해 6시에 일을 끝내기로 스태프들과 상의를 했죠. 업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 손님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죠. 그 선택은 지금까지 미용 인생 중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가장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도 손님들이 잘 이해해주셨기 때문에 아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죠.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어요. 자기중심적인 행동이 아닌, 스태프와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미용사와 엄마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하죠. 이를 위해 주변 사람과 항상 많은 얘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미용지 <신비요>에 게재된 화보.
 
한국 미용을 접해본 적이 있나요?
아주 오래전 SHIMA에서 근무할 때 한국에서 헤어쇼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짧은 시간 한국에 와서 쇼를 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네요.
 
한국 미용을 접해 본 느낌이 어땠나요?
2018년 3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몇 군데 살롱 투어를 했었어요. 큰 살롱의 경우 살롱 메이크업 룸이 있었고, 고객의 메이크업에 대한 수준이 높았죠. 또한 네일 부스도 따로 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경향이 높다고 느꼈습니다. 헤어 시술 공간도 마찬가지로 트여 있는 구조보다는 섹션이 나뉘어 고객 개개인을 케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는데 꽤 흥미로웠어요. 한국 미용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네요.
 
한국 미용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단순히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고객 응대가 필요해요. 그리고 평상시 고객들이 제대로 손질을 할 수 있도록 미용사로서 조언이 필요하죠. 헤어와 패션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전반적인 부분에서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는 뷰티 어드바이저가 된다면 어떨까요. 다른 하나는 여성 미용사들을 위한 저의 응원이에요. 미용사 인생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해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미용사라는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와 이점을 앞으로도 같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나가고 싶어요.
 
첫 아이 임신 때 1호 사원 ‘초코’와 함께
한국 미용인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미용사’라는 직업 자체를 즐기세요. 그리고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일하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헤어 아티스트란 무엇인가요?
고객 혹은 그 헤어를 보는 어떤 사람이든, 제가 하는 헤어 스타일링을 보며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는 아티스트 자신이 항상 자유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자신이 정형화되어 있거나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미용인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요.
멋진 헤어스타일을 실현시켜주는 일! 저는 언제나 미용사로서 헤어스타일을 생각하고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있어요. 고객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제안하고 멋지게 연출해주는 것이 미용사의 일이죠. 그래서 항상 헤어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합니다.
 
당신을 대변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슈퍼 미용사!(하하) 결혼, 출산, 육아 등을 완벽하게 대처하면서 미용사로서의 인생을 더욱 즐기고 있죠.
 
당신의 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디자인을 창조하는 손, 행복을 주는 손, 희망을 붙잡아주는 손이요.
 
2004년 세 아이와의 여행

에디터 김수정(beautygraphy@naver.com) 사진, 인터뷰 김세호(사진가, 헤어 스타일리스트) 번역 카이(라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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