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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을 거치는 패션쇼만 1년에 200여개! 국내 유일 뷰티 아트 디렉터 '오민'
  • 최은혜
  • 승인 2018.12.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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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 대표를 패션쇼에서 헤어를 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그는 수많은 편견과 싸우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뷰티 아트 디텍터이다.
 
뷰티 아트 디렉터 오민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헤라서울패션위크, 서울패션페스티벌을 마치고 베트남을 거점으로 한 아시아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또 내년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의 아트 디렉터도 맡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융합대학 문화예술학과의 새내기가 되었지요.
 
오민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저는 뷰티 아트 디렉터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제가 미용인 중에 지향하는 인물이 폴미첼이에요. 폴미첼은 헤어 디자이너지만 우산까지 만들 정도로 자신의 영역을 넓힌 사람이고요. 저도 오민의 이름으로 선글라스도 출시했고 점차 제품의 영역을 확장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헤어 시장이 테크닉 위주였다면, 이제는 기술이 평준화 되었고, 유튜브 등을 통해 어디에서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감성입니다. 제가 하는 일도 감성과 밀접하고요.
 
저는 서울패션위크 60여 개의 쇼에서 직접 헤어 스타일링을 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쇼의 의상과 쇼의 특성을 찾아내 쇼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패션 디자이너의 의상과 콘셉트 등을 보고 스타일을 결정합니다. 그 디자이너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옷을 입을 고객의 니즈까지 읽습니다. 일반적인 헤어 스타일링이 아니라 감성을 겸비해야 하는 일입니다. 역시 살롱 고객도 헤어 디자이너의 감성을 원합니다. 커트와 펌을 잘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게 아니에요. 팀원들에게는 항상 옷을 신경 써 입으라고 해요. 꾸준히 공부하고 트렌드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죠.

매년 패션쇼 일을 얼마나 맡고 있나요?
과거에는 1년에 300여 개 정도 했는데 지금은 조금 줄여서 150~200여 개 정도의 쇼에 참여합니다. 서울패션위크만 해도 총 60개 정도의 쇼를 했고, 올해는 서울패션위크, 하이서울까지 5일 동안 80여 개의 쇼를 연달아 했더라고요. 모든 쇼의 핵심은 라이브(live)입니다. 쇼가 크다고 해서 중요하고 작다고 해서 등한시하지 않아요. 제가 쇼를 해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존속’에서 ‘협약’으로 바뀌었 다는 것이죠(저희 팀에 한해서는요). 과거에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단순히 저희에게 기술을 의뢰했다면, 지금은 제가 그들의 의상을 보고 스타일을 정해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들이 원하는 어떤 이미지를 주면 우리가 카피를 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그 의상을 보고 콘셉트를 잡죠.
 
여전히 오민크리에이티브팀이 서울패션위크에서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존속에서 협약의 관계를 넘어서 우리가 자료나 트렌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모든 디자이너가 미팅하기 전에 쇼에서 선보일 의상을 저희에게 보내줘요. 콘셉트, 이 옷을 만든 이유, 어떤 소재의 옷이라는 것까지 보내주죠. 만약 옷을 보내주지 못하면 일러스트라도 보내줍니다. 굉장히 좋은 현상이죠. 저희가 전문가로서 제안하고 너무 과도한 것은 자제시키기도 해요. 일반 뷰티팀에서는 존속의 개념이라 트렌드를 제시할 수가 없죠.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가야 하니까요. 

이렇게 많은 쇼를 하는데 모두 기억하나요?
시스템이 탄탄해서 문제없어요. 제가 일일이 모든 패션 디자이너와 미팅을 다하고 팀원들과 함께 결정된 부분을 자료로 만들어놓죠. 그 자료 안에는 어떤 스타일, 어떤 소품을 사용할 것인가까지 세세하게 적혀있어요. 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하나씩 날리게 하고 싶은 스타일을 한다고 하면 정전기를 일으켜야 하니까 ‘고무풍선이 필요하다’라고 적는 거죠. 이 디자이너는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궁금하면 저희가 기록한 자료 하나면 모두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쇼에 대해서는 거의 외우는 편이에요.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 디자이너와의 미팅 기간이 한 20일 정도인데 60여명의 디자이너를 제가 일일이 만나요.
 
서울패션위크의 헤어는 저희가 도맡아하니까 쇼가 열리는 각 관마다 서로 인원이 필요하면 바로 지원이 되고, 한 모델이 이 쇼를 마치면 다음 쇼는 어떤 곳이고 어떤 스타일을 할지를 미리 파악하면서 일을 해요. 예를 들어 다음 쇼에 대한 배려 없이 스타일 고정을 위해 모델의 헤어에 스프레이를 과도하게 뿌린다면 다음 쇼에서 이 모델을 맡은 팀원은 힘들어집니다. 이런 부분까지 원활한 소통과 협조가 가능하다는 거죠. 사실 저보다는 팀원들이 훌륭합니다. 저와 20여년을 함께한 동지 같은 스태프들이 대부분으로, 각 살롱의 오너들로서 평소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다가 쇼가 있으면 모입니다. 살롱을 하는 이들은 살롱 문을 아예 닫고 오기도 해요.
 
헤어 디자이너가 서울패션위크에서 스타일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부재중이면 고객은 ‘그럼 다른 곳에서 하지’보다 ‘그래 우리 디자이너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구나. 다음에 와서 머리하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살롱의 퀄리티도 올라가고 신뢰도 생기고요. 과거에 커트 고객이 저에게 “선생님에게 한 커트를 친구가 이상하다고 한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더니 10년 후에는 제 앞에서 그 친구 흉을 보더라고요. “자기는 1년에 머리도 몇 번 안 하면서 감히 선생님이 커트해준 머리를 가지고 뭐라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기분 나쁘다”라고 하더라고요. 믿음이 생긴 거죠.
 
저는 고객과 헤어 디자이너가 미용실에서 머리 몇 cm를 자를까 하는 대화를 한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올해 트렌드는 뭐예요? 그럼 제가 뭘해야 하죠?”라고 고객이 물어보는 환경이 되어야 해요. 헤어 디자이너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는 믿음을 쌓는 게 중요해요. 
 
(맨 위)런던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와 함께 (아래 왼쪽)청주비엔날레에서 한글을 주제로 선보인 이상봉 디자이너의 작품. 가발이 아닌 고서로 마네킹의 머리를 장식했다. (아래 오른쪽) 런던 이상봉 디자이너의 쇼. 단청에 영감을 얻은 헤어 장식이 돋보인다. 사진: 오민.
(왼쪽, 위-아래) 헤라서울패션위크 백스테이지에서의 오민 대표, (위 오른쪽) 2019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기획을 맡았던 패션 브랜드 ‘두칸’. 사진: 오민
쇼는 화려하지만 그 뒤에 힘든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많았죠. 존속의 개념이다 보니 패션 디자이너의 요구대로 스타일을 해야 했어요. 간혹 모델이 자신만 튀고 싶어 할 때가 있어요. 메이크업을 살짝 바꾼다든지 말이죠. 이럴 때 모델에게 말도 잘 못했고요. 지금은 모든 부분에서 저희를 존중하기 때문에 백스테이지에 가면 연출, 모델, 디자이너보다 저희가 더 우월한 대우를 받죠. 그래서 지금은 특별히 힘든 점이 없어요. 반대로 부작용이라면 저와 일하는 스태프가 모든 곳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거라는 생각을 갖는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활동을 할 때는 또 다르니까요. 우리가 오민크리에이티브팀으로 일할 때는 좋은 대우를 해주는데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오버하다 걸리면 퇴사다”라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항상 “우리가 최고가 아니다. 노력해라”라고 말하죠. 
 
쇼에서 자리 잡고, 편견을 깨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무척 힘들었죠. 심지어 저에게 ‘새끼 낳은 진돗개’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무대 뒤의 악마,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 (웃음) 저는 ‘새끼 낳은 진돗개’라는 별명이 제일 좋아요. 제 스태프를 누군가가 건드리거나 폄하한다면 가만 안 뒀어요. 어떤 쇼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라 고 묻는다면 김종월 디자이너의 브랜드 뻬띠앙뜨가 서울패션위크에서 쇼를 했을 때예요. “오민팀은 쇼가 너무 많아서 식사도 할 시간이 없을거야”하면서 저희 스태프 한명 한명 입에다 떡을 넣어주셨어요. 저는 그 쇼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런던에서 한 이상봉 디자이너 쇼와 2002년 전 세계가 지켜본 월드컵 전야제 등 멋진 쇼들도 잊을 수 없고요.
 
예전에는 저에게 ‘미용계 이단아’ ‘미용계 아웃사이더’ ‘미용계 정신 이상자’라며 폄 하하는 이들도 많았죠. 다들 프랜차이즈를 만들 때 저는 오직 쇼에 집중했으니까 요. “저 사람 왜 저러지? 자기가 패션 쪽 사람도 아닌데” 그랬던 이들이 서울패션 위크에서 자신들도 스타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간혹 헤어 브랜드에서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해 일을 하면 오히려 개런티를 받아야 하는데 무료로 해주고 있더라고요. 그러면 과연 쇼에 참여한 그 제자들은 앞으로 이런 기회가 생기면 어디서 돈을 받고 일해야 하나요? 스승이 무료로 일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무료로 일을 하고 돌아가서는 우리도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했다고 자랑을 하죠. 제자들 김밥 먹여가면서 말이죠. 
 
가끔 어떤 패션 디자이너들은 “어디 살롱에서는 가발도 무료로 협찬해주던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럼 저는 “당신이 머리에 금을 달고 싶으면 내가 금을 사다 달아줘야 하나요?”라고 되물은 적이 있어요. 저희는 철저하게 소품의 금액도 다 받아요. 돈을 밝히는 게 아니라 그게 원칙이에요. 저희는 모든 시스템이 저희 위주로 되어야 해요. 심지어 헤어, 메이크업하는 자리에는 음료수 하나 못 놓게 해요. 그 자리에서 모델들이 식사라도 하면 저에게 혼났어요. 기획사나 에이전시에도 모델 관리 똑바로 하라고 따져요. 이런 것들이 저희에 대한 존중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쇼에서 아무렇게 제공해주는 의자나 테이블에서 일할 때, 저희가 일하는 자리는 사비를 들여 테이블을 만들고 세팅을 했어요. 중간중간 화병을 놓기도 했죠. 식사하는 자리도 스탠딩석으로 만들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보여줘야 우리를 인정하니까요. 제 팀원을 제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요. 이제는 연출팀, 디자이너, 모델, 행사 관계 주최 측 모두 저희에게 협조적이에요. 제일 행복한 팀이죠. 
 
시간에 쫓기기 마련인 백 스테이지를 통제하는 운영의 묘가 있겠지요? 
쇼는 늘 긴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을 수 밖에 없죠. 서울패션위크의 경우 늘 쇼가 겹치고 모델이나 저희나 쇼를 마치면 빨리 다음 쇼로 넘어가야 해서 불과 20~30분 내에 모든 걸 다 끝내야해요. 그런데 디자이너들이 욕심을 부려 앞의 쇼의 모델과 10명이나 겹치게 만들어버려요. 서로 좋은 모델을 쓰고 싶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디자이너가 우리에게 모델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이 모델이 앞의 쇼에서 넘어오는데 스타일링이 될까요?”라고 말이죠. 그럴 경우 대부분은 안 된다, 욕심을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뷰티 아트 디렉터 오민
쇼에 가면 패션, 모델 등 다른 분야의 이들과 함께 일하는데 어떤가요? 
배우 장동건, 이승연 씨 등은 오래전부터 함께 일을 해와서 많이 친해졌죠. 또 모델 출신인 배우 차승원, 배정남 씨도 쇼를 통해 친숙한 분들이고요. 제자로는 모델학과와 모델 아카데미에서 만난 배우 김우빈 씨가 있고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박윤수 선생님, 이상봉 디자이너, 진태옥 선생님이세요. 특히 진태옥 선생님은 아직도 뵈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박윤수 선생님은 제가 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분이죠. 
 
저는 쇼에 참석하는 셀럽도 패션 모델과 똑같이 대우해요. 10년도 넘은 일인데 당시 국내 최고의 내셔널 브랜드가 있었어요. 그 브랜드의 쇼에 전속 모델이자 당시 톱 배우가 모델로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날이었어요. 그 배우가 도착하자 저는 순서대 로 준비를 해야 하니까 차례를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배우가 기분이 상했는지 호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왔더라고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그 브랜드 회장에게 말했는지, 그 회장이 저에게 와서 멱살을 잡았어요. 그런데 30분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쇼의 모델들이 보이콧을 선언했어요. “오민 선생님에게 사과해라”라고 말이죠. 정말 놀랍고 감사했어요. 작고하신 한 디자이너 선생님과 관 련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저는 “패션쇼의 꽃은 패션모델이다. 왜 연기자들이 와서 쇼를 하느냐. 그들이 주인공인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모델들도 꾀를 부리거나 요령을 피우면 예외없이 혼을 내요. 
 
매번 쇼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는데 스타일의 영감은 어디에서 찾나요? 
항상 팀원들에게도 말하는데 제발 뷰티를 한다고 뷰티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어쨌든 쇼를 준비 할 땐 세계 4대 컬렉션의 모티브를 가져와요. 그 정보를 구매하는 돈도 만만치 않 아요. 그걸 구해서 저희 것으로 재해석하고, 각 디자이너의 니즈에 맞춰가며 작업을 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4천여개의 쇼를 하다 보니 좀 힘들더라고요. 사실 이번에 패션 브랜드 ‘두칸’의 쇼를 기획하면서 “아, 언젠가 했던 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영감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이상봉 디자이너가 ‘창’이라는 주제로 의상을 만들어 청주비엔날레에서 전시했을때 참여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 ‘창’이라는 주제의 작품을 보고 창, 빛, 눈, 글라스가 연상되었고, 글라스라면 안경알이라는 영감이 떠올라 안경알을 구매해서 스타일을 만들었어요. 이와 함께 만들었던 단청 시리즈의 헤어 장식물은 영국에서도 선보여 현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영감은 단순한 것에서 출발해요. 
 
제품 출시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사실 헤어 제품을 먼저 출시하지 않은 건 제가 디렉터이기 때문이에요. 선글라스를 제일 먼저 출시한 건 어디에든 적용하기 쉽기 때문이었어요. 쇼를 하다 보니 옷에 가볍게 매치하기 좋은 것도 선글라스였고요. 이번 서울패션위크 오프닝쇼에서도 저의 선글라스를 쓴 모델들이 피날레를 장식했죠. 선글라스는 품절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뷰티 아트 디렉터 오민
개인 작업도 하고 있나요?
아트북을 만들려다가 안 좋은 일이 있어 중단했어요. 다만 내년에 전시 계획이 있습니다. 대부분 미용인들이 작업을 하면 너무 헤어 디자인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소품까지 직접 만들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이제는 디렉터의 개념으로 가야 해요. 스타일링만 보지 말고 종합 예술가, 디렉터의 개념으로 전체적인 걸 보길 바라요. 그렇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해요. 고객의 니즈는 점점 높아지는데, 스타일 그 이상을 뛰어넘어야 해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세상을 살면서 여러 고통이 있어요. 그중 미용사로서의 고통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반복의 고통이에요. 출근해서 바닥 쓸고, 고객들에게 커피 가져다주고, 커트와 펌하고 매일 지겹겠죠. 그런데 그 반복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이 반복은 정체가 아니라 발전이에요. 그래서 어떤 이는 발전이 없다며 못 견디고 포기를 하죠.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일어나 움직이면 꿈을 이룬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내가 이룬 꿈은 누군가의 또 다른 꿈이 된다’란 말도 좋아하고요. 과거에 저는 미용계 이단아란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죠.
 
저는 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라”라고 말해요. 해외 출장을 가도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스태프를 데려가기보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가능한 이를 데려가는 게 더 효과적이죠. 저희 팀의 70~80%는 멀티플레이어입니다. 두루 할 줄 알아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너희는 항상 전쟁터에 나와 있다고 말해요. 1년에 배출되는 미용사가 몇 명인가요? 그 확률과 함께 싸워야 해요. “상대도 나와 같은 총과 총알을 가졌을 때 너의 주머니에는 돌이 하나라도 더 들어 있어야 한다. 전쟁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해라. 한 가지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이죠.  
 
아모스프로페셔널 락킹 스프레이
it item! 아모스프로페셔널 락킹 스프레이 평소 아모스의 스타일링 제품을 즐겨 쓰는데, 그중에서도 락킹 스프레이는 가장 애정하는 제품입니다. 미세한 분사감과 부담 없는 향으로 스타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손이 갑니다. 특히 의상 교환이 잦은 패션쇼에선 헤어스타일의 고정력이 가장 중요한데, 그때 락킹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스타일이 잘 유지됩니다.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사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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