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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 영화 리뷰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 성재희
  • 승인 2018.12.2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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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포스터
본격 MTV 서부액션의 탄생
사실 말이죠. 저는 옛날부터 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그토록 쉽게 끌리는 건가요? <나인 하프 위크>의 존 그레이(미키 루크)가 그랬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우식(이정진)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악하고 야비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욕망꾸러기들에게 왜 여자들은 자꾸 마음을 주느냐 이겁니다.
 
사실 뭐 나쁜 남자들이 유독 키 크고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 편이긴 한데요. 단지 그것만으론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그들에겐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야생마 같은 매력이라든가, 나쁜 남자와 강한 남자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경향도 아예 없진 않겠죠. 어쩔 땐 자존감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한편, 난생처음 모멸감을 안겨준 나쁜 남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을 느끼기도 하나 봅니다. 여자란 존재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어요.

어쨌든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 쪽이 훨씬 강한 페로몬을 발산하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착한 남자가 모두 유약하고 의외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면적 존재인 것은 아니에요. 세상 모든 여자가 나쁜 남자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스크린 샷. 젊은 시절 윌렘 데포. 
나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 중에서 오락성만 따지고 보면 월터 힐 감독의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1984)가 원톱이 아닐까 싶어요.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연출, 개성 만점 캐릭터, 미모의 여주인공, 간단명료한 플롯, 신나는 음악까지 재미있는 영화가 갖춰야 할 모든 걸 구비했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같은 것도 없어요. 그냥 빼앗고 되찾고 싸우고 떠나는 게 전부. 시티액션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MTV의 탈을 쓴 서부극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변두리 동시 상영관을 전전하던 B급 영화치고는 출연진도 훌륭합니다. 단 한 편의 임팩트로는 우주 최강인 마이클 파레를 시작으로, 요염함과 청순미를 고루 갖춘 다이안 레인, 성격파 배우의 일인자 윌렘 데포의 리즈 시절까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죠.
 
특히 라이 쿠더가 맡은 음악은 제3의 주연입니다. 아드레날린의 대홍수를 예감하게 만드는 오프닝 테마 ‘Nowhere Fast’를 시작으로 경쾌한 로큰롤의 향연이 펼쳐지는데요. 주연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라이 쿠더 역시 이 영화를 계기로 세계적인 영화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죠. 비록 엄청난 흥행작은 아니지만, 20세기 할리우드 액션 영화사에서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괴작입니다.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스크린 샷
나쁜 남자는 아무나 하나
인기 여가수 엘렌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리치몬드 거리. 폭발할 듯 뜨거운 공연장의 열기를 뚫고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내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엘렌을 납치합니다. 그리곤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서 어디론가 사라지죠.

그들은 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레이븐이 이끄는 오토바이 갱단이었는데요. 그 광경을 지켜본 레바는 자신의 동생 톰에게 급히 전보를 보냅니다. 지금 당장 고향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이죠. 사실 톰 역시 레이븐 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개차반 인생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년원을 드나들며 산전수전 다 겪은 구제불능 인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엘렌을 구해내려면 톰밖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톰과 엘렌은 한때 뜨거웠던 사이였거든요.
 
하루도 사고가 끊일 날 없는 변두리 마을, 악당의 등장, 탕아의 귀환. 금발 미녀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격돌. 시대와 무대만 다를 뿐, 이건 서부극의 전형적인 패턴이죠. 심지어 엘렌을 구하러 가는 톰이 선택한 무기는 옛날 서부영화에나 등장했음직한 구형 라이플입니다.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스크린 샷
아무튼 무직에 전과자, 성질 더럽고 싸움 좋아하는 건달에게 엘렌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물론 엘렌의 매니저 빌리에게 돈을 받고 착수한 일이지만 과거의 연인에게 느끼는 애틋함이 아예 눈꼽만큼도 없다곤 말 못 하겠죠. 대활약을 펼치며 톰은 레이븐의 아지트를 불바다로 만들고 엘렌을 구출해냅니다.
 
그런데 이 남자, 흘러간 세월이 몇 년인데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요. 너를 구한 건 단지 돈 때문이었다는 톰의 시니컬한 반응에 엘렌은 크게 실망합니다. 천하의 나쁜 자식, 이제 영원히 잊을 거라 맹세하며 엘렌도 마음을 다잡죠. 하지만 남녀 사이란 게 평생 안 볼 것처럼 굴다가도 다시 뜨겁게 부둥켜안는 실수의 반복 아니던가요. 그래서 나쁜 남자들이 늘 위풍당당 자신감에 차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스크린 샷
어쨌든 사랑은 사랑이고 승부는 승부. 레이븐을 완전히 꺾지 않는 한 마을의 평화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톰은 엘렌을 잠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놓은 뒤 레이븐이 복수를 기다리고 있는 마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액션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오함마’ 결투신이 여기서 탄생하죠. 당연한 결과지만 처절한 사투 끝에 남은 마지막 승자는 톰. 비록 악당이지만 레이븐도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타운 밖으로 물러갑니다.
 
내가 돌아온 건 다시 떠나기 위해서라는 듯, 사건을 모두 해결한 톰은 머나먼 방랑길에 오릅니다. 엘렌은 잠시 이별의 슬픔에 눈물 짓겠지만, 그녀에겐 몰두할 음악이 있고 기억해야 할 진심이 있으니까요. 말없이 떠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나쁜 남자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고 이젠 믿으니까요.

아 그런데 말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혹시라도 영화의 흥분에 고무되어 나도 오늘부터 나쁜 남자가 되겠노라 헛된 다짐 같은 건 하지 마세요. 그것도 원빈, 정우성 급이 하니까
‘나쁜 남자’라도 멋있어 보이는 거지, 우리가 그런 짓 하면 그냥 ‘나쁜 새끼’가 될 뿐이랍니다.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스크린 샷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Street of Fire, 1984
감독 월터 힐
주연 마이클 파레, 다이안 레인, 윌렘 데포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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