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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급 뷰티의 성지 '청담'에서 미용을 한다는 것 ①
  • 최은혜
  • 승인 2019.03.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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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의 메카이자 고급 뷰티의 성지 청담동. 청담동에서 성장해 리더가 된 범호, 신후, 서일라 원장이 말하는 청담에서 미용하는 이야기. ①
 
컬처앤네이처 청담점 신후 원장, 라라피엠 서일라 원장, 아쥬레 범호 원장.
각자 미용을 한 계기와 청담동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신후(컬처앤네이처 청담점): 전주에서 고3 때 미용실에 처음 갔는데 당시 배용준 펌이 인기였어요. 펌을 하고 스타일이 바뀌는 순간 행복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미용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스무살 때 서울로 와서 처음에는 이대, 명동에서 시작했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 체계적이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배우기 위해 청담으로 왔 죠. 청담에서 일한 지는 14년이 되었네요.  
 
범호(아쥬레): 어릴 때 공부는 하지 않고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그러다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랑 친해져서 자주 놀러 다니다가 미용을 접했고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그만두려 했는 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미용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직업학교에 들어가 미용을 배 웠어요. 97년도에 미용을 시작했는데 당시 이대와 명동이 미용의 메카였고 청담과 압구정은 지금과 같이 유명한 곳은 아니었어요.
학교에서 취업을 준비하는데 선생님이 이대, 명동은 2년이면 디자이 너를 할 수 있지만 청담과 압구정은 5년이 걸린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반 친구들은 거의 이대와 명동으로 갔는데 저는 반대로 5년이 걸리는 건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청담으로 취업했죠. 그런데 정말 이유가 있더라고요. 스태프 생활을 7년 했어요.
대부분 스태프를 짧게 하고 싶어 하지만 스태프 시절은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아요. 그 시간의 경험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어요.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다행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청담과 압구정 고시원에 있는 사람들 중 미용실에 다니는 이들이 태반이었어요. 그 당시 미용은 미용사 한길뿐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분야가 생겼고 이 렇게 영향력이 커질 줄 몰랐어요.
 
일라(라라피엠): 저는 어머니가 미용실을 운영하셔서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미용을 접했어요. 그림이나 어학을 희망했지만 대학에 떨어졌고 어머니의 권유로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자격증을 따자마자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청담점에 입사했는데 그때 나이가 21세 였어요. 중간에 7년 일본 유학을 다녀왔죠.
박승철헤어스투디오에 있을 때 교육 파트를 맡았는데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미용대 학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당시의 커리큘럼이 실망스러워서 유학을 결심했어요. 일본에서 4년제 대학을 들어가 열심히 배우고 귀국해 32세에 라뷰티코아에 입사했고 제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왔어요. 일본에서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라라피엠 서일라 원장.
 
청담동에서 미용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요?
범호: 미용은 답이 명확하지 않아요. 외국처럼 커트, 컬러리스트 분 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살롱워크에 웨딩, 촬영까지 경 험할 수 있죠. 이 안에서 내게 잘 맞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일라: 저도 공감해요. 굳이 청담동이 아니어도 훌륭한 분들이 많은 데 청담이 다른 점은 엔터테인먼트, 트렌드 쇼 등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요. 감성적인 작업이 많다는 것이죠.
 
신후: 다양한 분들이 여러각지에서 찾아오세요. 해외에서 오는 분들도 많아요. 청담동의 고객층이 어느 정도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라는 점이 흥미롭죠. 또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도 많고요. 그래서 늘 트렌디함을 잃지 않아야 하죠.
 
범호: 맞아요.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자주 접할 수 있죠. 우리 보다 앞서 다음 트렌드나 컬러를 제안하는 분들도 있어요. 돈이 많은 분들도 있지만 커트 한번 하려고 두 번 자를 거 안 자르고 오는 고객도 있고, 멀리서 찾아오는 고객도 있죠.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의 머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큽니다. 그래서 가시방석이기도 해요. 정체되면 도태되니까요. 그런면에서 신후 원장님은 대단하세요. 쇼도 꾸준히 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니 압박이 어마어마할 것 같아요.
 
신후: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것도 고객과 만나는 일의 연장이지요.
 
범호: 맞아요. 트렌드를 공부하는 것이 부담이고 스트레스지만 결 과적으론 고객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얻는 것이 많아요.
 
일라: 요즘은 예전만큼 쇼가 많지 않네요.
 
범호: 직접 보지 못했지만 열정으로 뭉쳐 쇼를 만들어낸 홍대 컬렉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청담 컬렉션은 브랜드에서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시작된 것이잖아요. 처음에는 자기 것만 챙기는 느낌이었어요. 반면 홍대 컬렉션은 정말 미용인들이 원해서 모인 것이라 부럽더라고요.
청담동이 뷰티로 유명하고 막강하지만 홍대 컬렉션이나 또 다른 지역의 미용인이 뭉쳐서 그런 자리를 꾸준히 마련해간다면 이젠 청담동이 뷰티의 메인에서 밀리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 청담동도 청담연합회를 만들어서 한 달에 한 번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전에는 같은 쇼에 오를 때 무대 뒤에서 커튼으로 가리고 준비할 정도로 경계했다면 지금은 서로 박수를 보내주는 분위기라 좋아요. 
 
아쥬레 범호 원장.
청담동에서 일을 하면서 어떤 혜택(?)을 얻었다고 생각하나요? 반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일라: 어디에서 미용을 했어도 행복했겠지만 청담의 자부심, 차별 화, 긴장감이 좋았어요. 그러다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러 살롱을 차 려 오너가 되고 나니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지역상 많은 돈을 벌지 않으면 수익을 남기기 힘든 구조라 오너들은 지쳐버려요. 오픈이 후회될 정도로요. 저는 웨딩을 포기 못해서 청담동에 차렸고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즐거움도 크지만 정말 힘든 일이 겹칠 때는 차라리 신랑이랑 알콩달콩 일하는 숍을 오픈했다면 돈은 훨씬 더 많이 벌었겠다 싶더라고요. 사업과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길을 선택했어요. 힘들지만 후회는 없어요. 원하는 건 해보는게 맞으니까요.
 
범호: 잘했어요. 다른 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신후: 지방에서 올라와서 멋진 분들을 보며 동기부여도 됐고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저도 리더가 되고 일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젊은 시절에 청담동에서 일만 하다 보니까 만나는 사람은 미용인뿐이고 주변을 챙기지 못했어요. 친구들을 만나도 미용 이야기만 했어요.
 
범호: 어느 순간 미용인과 술먹기 싫어질 때가 있어요.
 
일라: 맞아요. 신후: 저도 요즘 좀 그래요.
 
범호: 근데 막상 다른 사람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어요.(웃음)
 
신후: 다른 분야 친구들을 만나도 미용 이야기만 하고 변했다는 이 야기를 들으면 좀 속상하더라고요.
 
범호: 반대로 비미용인을 만나 우리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되면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듣게 돼요. 미용실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곳이죠. 고객 중 회장님이 “나는 대통령도 만나는 사람인데 왜 선생님은 내가 예약을 몇 번이나 시도해야 볼 수 있냐”라고 할 정도로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춰서오죠. 열심히 하다 보니 돈도 벌게 됐고, 명예, 지위도 따라오고요. 이게 청담동의 메리트 같아요. 저는 아이 다섯명은 키워본 거 같아요. 출산부터 육아까지 여자 고객들이 하도 말해줘서 결혼생활도 이미 해본 것 같아요. 출산 앞둔 고객한테 이렇다더라 조언할 정도로요.(웃음)
 
컬처앤네이처 청담점 신후 원장.
청담동에서 성장하기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각자 자리 잡은 비결은 무엇인가요?
범호: 배우는 입장은 원래 힘들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나서 커트 연구하고 시술에 대해 연구하는 게 더 스트레스죠. 저는 머리보다 경영이 더 힘들었어요. 미용실은 미용하는 사람이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건물 주에게도 많이 당했어요.
미용실은 기본적인 세팅이 필요하니 비쌀 수밖에 없는데 인테리어만 억 단위로 들었어요. 10년간 냈던 월세를 모으면 건물 하나 샀을 거예요. 열심히 했는데 건물주를 잘못 만나 그 몇 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우리는 일할 공간이 필요하고 제자와 후배와 함께 하기 위해 오픈한 것인데 그 꿈이 건물 임대 문제 앞에서 무너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들에게는 단순히 돈 몇백이지만 우리에게는 큰 출혈이에요. 
1년 반만에 인테리어를 철거하고 나온 적도 있어요. 게다가 미용실은 모든 기자재가 그 환경에 맞춰 들어가는데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오지도 못한 채 철거해야 하죠.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면서 보증금과 월세가 오르고 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해요. 미용인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세계적인 미용인이 많이 배출될 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일에 집중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너무 상품화되어 있죠.
 
일라: 청담동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너무 좋았어요. 큰물에서 해보자는 생각에 일본 유학 후 라뷰티코아에 입사했는데 조회 문화가 정말 신선했어요. 조회 15분 내내 나는 꼭 여기서 성장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50명이 모두 서서 마치 자기의 숍처럼 문제점을 의논하고 칭찬 릴레이와 7대 선언문과 파이팅을 외쳤죠.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어서 지금도 아침마다 조회를 하고 있어요.
자리를 잡은 비결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청담에서 살롱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 힘든 건 매출 대비 지출이 많은 구조와 타 지역보다 디자이너 프로테이지가 높다는 것이죠.  
 
신후: 저는 디자이너 시절부터 실험적인 스타일을 많이 시도했고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했어요. 고객에게도 새로운 것을 제안했고요. 이런 부분에서 기대감을 갖고 고객이 이탈 없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들면서 점점 스스로가 열정이 사그러든 것 같은 생각에 집중과 몰입이 잘 안되더라고요. 작년에는 굵직한 헤어쇼 무대에 도전하고 개인적으로는 눈썹도 없애보며 외모에 변화도 줘봤지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 트렌드에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과제지요.  
 
범호: 신후 원장님이 했던 고민을 저도 2017년도에 겪었어요. 어느 순간 10년 고객이 제일 무섭더라고요. ‘10년간 하고도 더 할 머리가 있을까?’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하나?’ 심리적 압박이 커지면서 숍을 정리할 생각도 했어요. 고객이 무섭고 두려워 영국으로 갔죠. 그리고 ‘앞으로 20년이 더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돌아왔어요. 미용 20년 차지만 저보다 훨씬 어린 강사들 앞에서 저는 동양에서 온 학생일 뿐이었어요.
미용의 매력은 정상에 올라갔다고 생각한 순간 또 고비가 오고 이를 극복하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나요. 마치 도장깨기처럼 말이죠. 올해 8월에도 사순에 가는데, 또 무엇이 내게 자극이 될까하는 기대가 있어요. 가끔 문제에 직면할 때 사순 DVD 를 보고 있으면 뭔가가 샘솟듯 끓어올라요.  
 
신후: 행복한 스트레스죠. 가위 하나만 있으면 풀리죠.
 
범호: 신후 원장님이 쇼를 준비하는 거 보면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 같아요. 시세이도 세미나에서 신후 원장님을 본 적이 있는데 스케치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스케치하는 걸 좋아해요. 그림은 사진과 달리 내가 몰랐던 디테일을 캐치할 수 있거든요. 신후 원장은 아티스트에 가까운 분 같아요. 제대로 머리에 미쳐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신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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