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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 영화 리뷰 '아무르'
  • 성재희
  • 승인 2019.05.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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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 포스터
웰다잉(Well-Dying)
“요새 노년에 대해 걱정이 많으신가 봐?” 매달 저의 졸고를 흔쾌히 받아주시는 그라피 편집장님께서 이렇게 운을 떼셨습니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근래 무비앤톡에서 다룬 영화가 노인들이 등장하는 영화였네요. 이제 우리도 웰빙보다 웰다잉(Well-Dying)에 주목해야 될 때라고 대강 얼버무리긴 했지만, 사실 저도 당황했습니다. 은연 중에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요.
 
이따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생의 소멸. 누려온 것들과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과의 영원한 작별. 찬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 같은 표정으로 종일 우울해하기도 하죠. 늙고 병들어 죽는 건 재벌 회장이나 서울역 노숙자나 똑같다고 씁쓸한 자위도 해보지만, 역시 죽는다는 건 생각할 수록 애잔하고 피하고 싶은 미래입니다. 나 혼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하지만 내 곁의 누군가가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건 굉장한 고통일 겁니다. 평생을 함께 한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말할 나위가 없겠죠. 서로 사랑하다가 한날한시에 함께 세상을 떠나자던 촌스러운 맹세가 사뭇 비감하게 다가옵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닫고 있는 요즘인 거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는 제목이 의미하듯 기본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얘기입니다. 동시에 죽음이란 이름의 땅거미가 사랑을 어떻게 집어삼키는지에 대한 잔혹한 보고서이기도 하죠. 주인공인 80대 노부부는 한평생 예술가로서 고고한 삶을 살아왔지만,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유약하고 서글픈 존재일 뿐입니다. 죽음은 단지 육체의 소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까지 잿빛으로 시들어버렸으니까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예술가란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합니다. “상처에 손가락을 넣고 영원히 소금을 발라대는 존재”라고 말이죠. 이 가학적인 예술가의 손끝이 노부부의 삶을 후벼 팔 때마다 저 또한 고통에 몸을 뒤채야 했습니다. 머지않아 죽음이란 냉엄한 현실이 사랑을 고된 노동과 의무로 바꿔놓을 때, 과연 감당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결말로 끝이 나지만 칸느가 특별히 애정하는 감독답게 <아무르>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생애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됐죠. 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까지 석권하며 사랑과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습니다.
 
영화 '아무르' 스크린 샷
하나의 사랑, 두 개의 죽음
예술가 부부인 조르주와 안느의 삶은 클래식이 흐르는 정오의 테라스처럼 평화롭고 화사합니다. 부부라는 연을 맺고 살아온 지 반평생.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단 노래 가사는 그들의 사랑을 두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안느에게 병마가 덮쳐오기 전까지 말이죠. 일상적인 물음에도 대답을 안 하고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 먼 곳만 응시하는 안느.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조르주의 눈가를 불길한 바람 한 줄기가 긋고 지나갑니다.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 막힌 경동맥을 뚫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예후가 썩 좋질 않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나쁜 케이스에 속하는 5%에 껴버렸죠. 하지만 그녀에게 절망은 아직 먼 얘기입니다. 입원치료까지 마다하고 그녀다운 고고함을 유지하려 애씁니다. 안느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병원 복도를 가득 매운 죽음의 냄새였을 겁니다. 아무리 환기를 시키고 소독약을 뿌려도 지워지지 않는 절망의 냄새. 그녀는 조르주에게 애원합니다. 다시는 자신을 병원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아직은 저 백색의 카타콤에 눕고 싶지 않다고.
 
비록 반신불수의 몸이 됐지만 안느는 예술가로서, 귀부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그러니 조르주가 자신을 환자처럼 대하는 게 영 못마땅합니다. 남편 없인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걸 알지만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복잡한 심정은 필연적으로 비참함을 낳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슬픔,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고통. 안느는 제 안의 설움에 몸이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영화 '아무르' 스크린 샷

속이 숯처럼 바싹 타는 건 조르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게 고용한 간병인마저 불성실한 태도로 노부부를 절망과 분노에 빠뜨리죠. 하나뿐인 딸조차 조르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친 어깨를 기댈 존재 하나 없는 현실. 이런 마음은 몰라주고 미운 네 살처럼 떼만 쓰는 아내가 한순간 너무나 미웠겠죠. 투정과 고집을 참다 못해 안느의 뺨을 후려갈긴 순간 때린 사람도, 맞은 사람도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었습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안느를 지켜보던 조르주는 이제 안느에게 평온을 안겨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건 의사도, 신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있는 자격이라고 말이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조르주의 마지막 결단을 두고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합니다. 다만 언젠가 우리에게도 조르주처럼 비극적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고 예고할 뿐이죠.
 
조르주·안느 부부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있는 딸 에바를 비추며 끝나는 열린 결말도 의미심장합니다. 조르주가 안나를 직접 떠나보낸 후 집에 들어온 비둘기를 껴안고 한참을 그대로 있는 장면은 가슴에 거센 풍랑을 일으으키지요.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아내의 체온, 사랑의 두근거림, 애정 가득한 손길. 품 안에서 퍼득거리는 작은 생명에게서라도 느끼고 싶었던 조르주의 슬픔은
사랑이란, 그리고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직도 해주지 못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럼에도 떠나보낼 때가 다가오는 것. 그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르
Amour, 2012
감독 미카엘 하네케
주연 장-루이 트린티냥, 엠마누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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