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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십니까 - 영화 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 성재희
  • 승인 2019.06.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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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포스터
뜨거운 연대 뒤에 남은 것들
중학교 때 얘기입니다. 같은 반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편의상 그를 K라고 할게요. K는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한쪽 다리가 새처럼 얇고 왜소했죠. 그런데 이 친구,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 K는 항상 철봉이 있는 모래사장으로 혼자 절뚝절뚝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축구나 짬뽕(주먹야구) 따위를 하며 신나게 내달리며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철봉에 매달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턱걸이만 했습니다. 덕분에 K의 상체는 중학생의 몸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우람했죠. 어쩌다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밥공기 뒤집은 것 같은 커다란 알통을 보여주면 우리는 “우와~!” 환호성을 내지르며 부러워했어요. 그런 아이들의 놀란 표정 앞에서 K의 얼굴은 득의양양,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를 완전히 잊은 듯했어요.
 
K와 함께 기억나는 또 한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편의상 P라고 하죠. P는 얼굴 한쪽이 목덜미까지 흉하게 일그러진 상처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화상으로 입은 흉터였죠. 모든 급우들과 사이가 좋았던 K와 달리 P는 말수가 적고 소위 말하는 ‘일진’ 아이들과 어울려 약간 삐딱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히 그의 얼굴 한 면을 차지한 상처. 우리에겐 마치 결투 중에 입은 칼자국처럼 두려움의 표식이었습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크린 샷
P는 누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눈이 마주치는 순간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면서 뭘 보냐고 윽박지르곤 했죠. 아마도 P는 자신에게 향한 관심을 괴물을 바라보듯 경박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이곤 했을 테니까요. 신기한 건요. 그런 P가 유일하게 표정을 누그러뜨리는 상대가 K란 사실이었습니다. K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달리 P를 어려워하지 않았죠.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되나. 상처가 있는 사람끼리의 끈끈한 연대라 불러야 할까? 통상적인 우정과는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어쩌면 K와 P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자신들처럼 장애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것만이 잔혹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임을, 그렇지 않으면 혈혈단신 모든 상처와 절망을 견뎌야 할 거란 걸 말입니다. 불편한 다리를 강인한 팔뚝으로 상쇄시키거나 자신을 두려워하게끔 폭력적으로 변한 것도 그들에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겠죠.
 
상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래된 기억 속의 인물들을 떠올린 건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 때문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2017).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판의 미로>(2006)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독특한 성인동화인데요. 판타지의 거장답게 미지의 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을 아름답고 감각적인 영상 속에 담아냈죠. 평가도 매우 좋았어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화려한 성적을 거뒀죠.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크린 샷
이 영화 속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합니다. 말 못하는 장애인, 흑인 여성, 성 소수자. 이들은 때로 사회로부터 괴물로 취급받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현재까지도 버젓이 횡행하고 있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말하고 싶은 주제는 명확합니다. 이렇게 소외된 자들이 행복할 수 있어야 진정 세상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K와 P처럼, 그들이 뜨거운 연대에만 의존하도록 놔두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때는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 항공우주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 입은 상처로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죠. 그녀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건 흑인 여성 젤다와 이웃집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 자일스뿐입니다. 어느 날 엘라이자가 일하는 실험실에 낯선 생명체가 들어옵니다.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신비로운 존재. 아마존에서 잡아왔다는 이 생명체는 매일같이 잔인한 고문을 당하며 생체실험의 대상이 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의 손가락을 단숨에 물어뜯어버리는 포악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엘라이자는 두려움 없이 그에게 다가가죠. 사람들 몰래 조금씩 그와 교감의 주파수를 맞춰가던 엘라이자는 급기야 이 생명체를 구해내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크린 샷
이미지의 마술사답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지점부터 색감의 변화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과 현실세계의 변화를 감각적인 영상 속에 담아냅니다.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까지 엘라이자의 일상은 청록색이었습니다. 안온하지만 깊은 강처럼 고요하고 바뀔 게 없는 삶. 하지만 그녀가 난생처음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세상은 타오를 듯 붉은 빛의 생기로 가득합니다. 삶은 달걀 하나로 시작된 비밀스러운 만남. 말도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빛과 손짓,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흩어져 흐르는 물방울이 하나로 이어지듯 그들은 서로를 강하게 삼투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사랑이란 이름의 거대한 압력이었죠. 하지만 애초에 그는 비좁은 욕조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결국 엘라이자는 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하죠. 떠나보내는 슬픔보다 함께여서 행복했음을 소중히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추격자들의 총구가 불을 뿜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는 환한 빛을 봅니다. 자신에게 장애를 안겨줬던 상처가 다시 그녀를 숨 쉬게 하는 기적의 빛. 야욕, 혐오, 편견, 차별 같은 지상의 모든 질서가 허물어지는 물의 세계에서 엘라이자는 새로 태어납니다. 마침내 행복해질 차례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주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옥타비아 스펜서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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