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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③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 최은혜
  • 승인 2019.07.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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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예술 2 오르페우스와 디오니소스  

미셸-마르탱 드롤랭(Michel-Martin Drolling, 1786~1851),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1820년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리고 돌아오려 했으나 저승왕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두 사람이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 오르페우스는 절대로 고개를 돌려 아 내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가 앞서고 에우리디체는 뒤따르며 어 둠과 적막으로 가득한 오르막길을 한없이 올라 어느덧 지상으로 통하는 곳까지 올라왔다. 출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내가 혹시나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 던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잊은 채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에 우리디체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들어갔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손을 붙잡으려 팔을 내밀었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싸늘한 바람뿐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구하려 다시 저승으로 내려가 스튁스 강의 뱃사공 카론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오르페우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내를 또다시 저승으로 보낸 후 오르페우스는 7일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암흑 세계 신들의 무자비함을 통렬히 비난하면서, 노래로 바위와 산에 호소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도 감동하고, 참나무도 감동하여 큰 줄기를 흔들었다.

신화나 전설에는 많은 금기 모티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도망치면서 뒤 를 돌아본 대가로 소금기둥이 된 것, 그 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가 열지 말라 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 세상에 각종 불행이 침투하도록해 버린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시각 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서양의 합리주의적 시선으로 볼 때, 보지도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메시지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적인 요소는 그리스 신화의 근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앞의 글에서 다루었던 아폴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상징한다면, 오늘 살펴볼 디오니소스는 비이성적인 미신과 감정, 광기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광기라고 해서 뭔가 미친 것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극단적 행위뿐만 아니라 금지된 것에 대해 반항하고 싶다거나 이유 없이 일이 하기 싫어지는 등 넓은 의미의 광기도 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그 후 여자를 멀리하고 그의 슬픈 불행의 추억을 끊임없이 되씹으며 살았다. 트라키아 지방의 처녀들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그는 그들의 구혼을 물리쳤다. 그러나 어느 날 디오니소스 제전에 다녀온 처녀들 중 하나가 흥분 상태에서 “저기 우리를 모욕한 사내가 있다!”고 소리치며 오르페우스에게 창을 던졌다. 그러나 수금 가까이 창이 도달하자, 힘을 잃고 그대로 그의 발밑에 떨어지고 말았다. 처녀들이 던진 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처녀들은 소리를 질러 수금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후 창과 돌을 던졌다. 오르페 우스는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축제 중 하나가 디오니소스 제전입니다. 술의 신을 기념하는 이 축제는 가부장적 분위기에 눌려지내던 여성들이 술과 음악과 춤으로 한바탕 떠들썩하게 난장을 벌이는 행사입니다. 고도의 흥분 상태에서 이들은 환상을 보기도 하고 평소 이들을 적대시하던 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디오니소스 제전을 조롱하던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살해됐는데, 그녀는 아들을 자신의 밭을 헤집어놓은 멧돼지로 여겼다고 합니다.

오르페우스를 사모하던 여인들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모욕감과 복수심에 불타 그를 살해하려 하죠. 하지만 오르페우스를 향해 날아오던 창은 그의 음악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소리를 질러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후 오르페우스를 죽이게 됩니다. 이성과 조화의 음악이 야성과 광기의 고함에 꺾여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무력화된 최초의 사례가 되겠네요. 저승의 왕마저도 감동하게 했던 음악인데 디오니소스와 그 신도들 앞에서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인데 친모 세멜레가 죽자 제우스는 그녀의 배속에서 달이 덜 찬 아이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고 합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가 술의 신이 된 건 상징적입니다. 술에 취한 상태야말로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산 사람의 몸으로 저승을 다녀왔던 오르페우스와도 유사한 점이 많 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죽음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스토킹 살인에 해당합니다.

연인에게 집착하고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살해하는 행위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화적 상상력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존재의 치유나 재생, 공동체의 화합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화의 시대가 아니라 문명사회입니다. 문명사회에는 예전과는 다른 가치관과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적응해야 하는 거죠. 신화적 상상력을 이어가고 싶다면 사람의 목숨 대신 다른 합리적인 수단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고민해 볼 일입니다.

귀스타프 모로 (Gustave Moreau, 1826~1898), 오르 페우스, 1865년

광분한 처녀들은 그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고 그의 머리와 수금을 헤브로스 강에 다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그것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며 흘러내려갔고 양쪽 강변에서도 이에 맞추어 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뮤즈 여신들은 갈기갈기 찢어진 오르페우스의 몸을 모아 레이베트라에 묻어주었습니다. 제우스는 오르페우스의 수금을 별자리(거문고자리)로 박아 주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저승을 다녀왔던 오르페우스는 시인이자 음악가이면서 영적인 치유 능력을 가진 의사이기도 하니 어쩌면 무당의 원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상징적 의미는 중세의 마리아 숭배, 근대 오페라의 탄생, 현대의 히피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그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혜만 대표-(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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