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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④ 헤르메스
  • 최은혜
  • 승인 2019.08.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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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와 예술 3 헤르메스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1635-1638년
이번에는 올림푸스의 12신 중 오르페우스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헤르메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마이아 사이에서 난 아들이었다. 새벽에 태어났지만 바로 그날 낮에 동굴 밖으로 몰래 빠져나와 아폴론의 소 50마리를 훔쳤다. 소들의 발굽을 모두 나무껍질로 싸매서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소꼬리에는 빗자루를 달아 소가 걸으면서 자연히 발자국이 쓸려 지워져 흔적이 남지 않도록 했다. 이 때문에 도둑질을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
 
현악기인 리라는 아폴론의 악기로 알려져 있지만 발명자는 헤르메스였다. 거북의 등껍데기 양쪽에 구멍을 뚫어 받침대를 만들고 그 사이에 실을 꿰어 리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폴론의 소를 훔친 것이 들통났을 때도 그 앞에서 리라를 연주하여 기분을 풀어주고 이 악기를 아폴론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대신 아폴론에게서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 케리케이온을 받았다고 한다. 헤르메스는 아버지 제우스의 심부름꾼이자 신들과 인간 사이의 전령으로, 날개 달린 모자와 날개 달린 신발을 착용했다.
 
헤르메스가 주관하는 분야는 도둑질 외에도 거짓말, 여행자, 상업, 운동 경기, 발명 등 숙련과 기민함, 교활함을 요구하는 일 및 소통과 전달에 관한 모든 일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전령으로서 지상과 저승을 자유롭게 통행하기 때문에 죽은 자를 저승에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헤르메스는 소문난 말썽꾸러기라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과 가장 닮은 신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올림푸스의 주요 신들이 갖는 냉혹함이나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과는 거리가 멀고,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지니며 두 세계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메스의 어원인 헤르마 (Herma)는 경계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뱀 두 마리가 엉켜 있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상징적입니다. 뱀은 겨울에는 땅속에 있다가 봄이 되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옛사람들은 땅속과 땅 위를 자유로이 오가는 뱀을 보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뱀 지팡이를 가진 헤르메스도 저승 출입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오르페우스도 아내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으로 내려갔고, 인간의 몸인 오르페우스를 저승으로 인도한 것도 뱀이었습니다. 따라서 신화 속의 뱀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며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병을 낫게 해주는 신성한 존재로 표현됩니다. 구약성서에도 모세가 뱀에 물린 백성들을 치료할 때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아놓고 쳐다보게 하여 상처를 낫게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역시 뱀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르페우스도 저승에 다녀왔으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고, 그 능력은 예술이었으며 신과 자연물을 감화시켜 괴로움을 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르메스가 리라의 발명자였으니 악기 연주 솜씨 또한 뛰어났겠죠. 눈이 백 개 달린 괴물 아르고스를 퇴치할 때도 악기 연주가 한몫합니다.
 
제우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를 유혹하다가 아내 헤라가 엿보고 있는 걸 알고는 이오를 암소로 변하게 한 후 시치미를 뗐다. 헤라는 이 아름다운 암소를 자신에게 선물로 달라하고 제우스는 거절하지 못한다. 헤라는 암소를 눈이 백개 달린 괴물 아르고스에게 맡기고 엄중히 감시하도록 했다. 제우스는 애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며 헤르메스를 불러 아르고스를 퇴치하도록 명령했다. 헤르메스는 발에는 날개 달린 신을 신고, 머리에는 비행 모자를 쓰고, 손에는 최면 지팡이를 들고 지상으로 뛰어 내렸다.
 
지상에 내려온 그는 날개를 떼어내고 지팡이만을 손에 들고서 양치기로 변장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양을 몰면서 피리를 불었다. 그것은 쉬링크스 또는 판이라고 하는 피리였다. 아르고스는 지금까지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피리 소리에 반해버렸다. 아르고스는 양치기가 헤르 메스인 줄도 모르고 말을 걸었다.
 
“젊은이, 이리 와서 바위에 앉게. 이 주변은 양 이 풀을 뜯기에 제일 좋은 곳일세. 게다가 시원한 그늘도 있네.” 헤르메스는 아르고스의 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자 그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만 불면서 아르고스를 재워보려 했다. 그러나 아르고스는 대부분의 눈을 감았으나 그중 몇 개는 여전히 크게 뜨고 있었다.
 
고민 끝에 헤르메스는 자기가 불고 있는 피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르고스에게 설명해 주었다.(중략) 헤르메스가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아르고스의 눈은 전부 감겼다. 아르고스가 조느라고 머리를 끄덕거릴 때, 헤르메스는 단칼에 그의 목을 베어 계곡 아래 던져버렸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들을 빼어 자기가 기르는 공작의 꼬리에 달아 주었다.
 
페터 파울 루벤스,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1636년-1638
오르페우스 이야기에서도 보았듯 음악이 가진 힘은 신비하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는데, 하나는 아폴론의 현악기로 표현되듯 이성적인 정신활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음악→ 도취→ 잠 → 죽음으로 잇는 음악은 비합리적인 광기라는 시각입니다. 오르페우스와 헤르메스의 음악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사용한 쉬링크스라는 악기는 오늘날의 팬플루트, 즉 관악기입니다. 관악기는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사용되어 비이성적인 광기를 상징합니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 마법사의 돌이 있는 곳의 입구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플러피가 등장합니다. 이 개는 음악을 들려주면 잠에 빠지죠. 플러피 옆에 마법에 걸려 계속 연주되는 하프가 있었기에 해리포터와 친구들은 잠든 개를 피해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플러피는 아르고스의 상징적 의미를 이어받은 동물입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체를 찾으러 갈 때도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리라 연주로 잠재우고 통과하지요. 이렇듯 음악은 꼭 해야만 할 의무를 완전히 망각하게 하는 점에서 위험한 예술이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나 봅니다. 그렇기에 철학자 플라톤은 건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했는지도 모르지요.   
 
지혜만 대표-(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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