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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그리스 미술 기법,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⑦
  • 최은혜
  • 승인 2019.10.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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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⑦

그리스 미술 1 항아리 그림 
고대 그리스는 조각과 건축의 성과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잘 알려진 회화 작품이 딱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리스 회화의 대부분은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에 오히려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항아리에는 누군가의 장례식을 애도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디필론 양식의 항아리, 기원전 8세 기경.  출처: https:// dereksarthistorytimeline. weebly.com
 

아테네와 가까운 아티카 지역에서 발 달한 디필론(Dipylon) 양식을 따라 만들어진 항아리입니다. 디필론 양식은 그리스에 본격적으로 도시국 가가 건설되기 전 농경사회 무렵에 만들어졌습니다. 선거 때 흔히 나오는 말 중 하나는 “농촌 지역은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농사는 자연의 규칙 적인 순환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작업인데, 자연재해나 토지 개발 등으로 이 규칙적 흐름이 깨지게 되면 농산물을 제대로 수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농경사회는 자연이 보여주는 일정한 법칙에 순응하게 되고, 변칙적이거나 독자적인 요소들에 민감하며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이집트 예술은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양식을 오랜 세월 유지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집트가 나일강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기름지고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농업 생산량이 풍부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왕권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사후세계가 그려진 벽화, 기원전 1380년경

이집트와 그리스의 장례식 묘사가 어떻게 다른지 볼까요? 이집트는 왕의 무덤이 워낙 커서 벽화의 규모도 거대합니다. 사후세계에 존재 하는 신들과 무덤의 주인인 왕족들은 크고 위엄 있게 그려졌고, 하인들은 작게 그려져 있죠. 이집트는 사후세계를 중시하여 절대적인 가 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장례식 절차와 사후세계를 함께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의 디필론 항아리 문양을 보면 기하학적 무늬와 추상 화된 형태의 사람, 동물들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의 추상적인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하지만 이집트와 달리 그리 스인들은 사후세계가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대체로 생각이나 감정도 인간과 많이 닮아 있고, 불완전한 면도 있죠. 그래서인지 신에 대한 권위도 이집트 에 비하면 훨씬 정도가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토지의 상당 부분이 산악지형이라 농업이 주요 산업은 아니었고, 기원전 10~8세기 무렵에는 작은 부족국가들이 흩어져 있어서 왕권이 크게 발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디필론 항아리가 만들어질 무렵인 기원전 8세기 그리스는 교역이 발달하고 부족국가 간의 전쟁도 잦아짐에 따라 이들이 연합해 도시국가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그리스의 한정된 토지와 분쟁은 자연스럽게 바다 건너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고, 해상 활 동이 활발해지면서 식민지를 넓혀가고 여러 국가에 무역 중심지를 건설하게 됩니다.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는 그리스의 항아리 그림도 점차 이집트의 경 직된 양식에서 벗어나 생동감과 개성을 갖게 됩니다. 기원전 500년 경의 복싱 경기 훈련 모습이 담긴 항아리를 보면 공격하는 사람과 방어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강렬한 사선 구도가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몸의 어느 부분에 힘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근육 묘사가 간결하면서도 정확합니다.

기원전 330년경에 판테나이 제전의 달리기 경주 모습이 그려진 항아리에서도 선수들의 섬세한 근육의 윤곽과 머 릿결의 묘사가 돋보입니다. 얼굴과 다리는 옆모습, 상체는 거의 앞모습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정면성의 원리를 여전히 따르고 있지만, 육체의 생생함은 이집트와 차원이 다릅니다.

기원전 500년경, 에우티미데스의 서명이 있는 항아리 <전사의 작별>에서는 드디어 이집트의 전통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흔적을 보게 됩니다. 가운데 갑옷 을 착용하고 있는 전사의 왼발, 5개의 발가락이 정면을 향해 그려진 건 아마 이 그림이 최초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이집트 양식이나 단순히 ‘알고 있는 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고 자 하는 시도이며,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렇게 인체를 그림의 표면이 펼쳐진 방향과 어 긋나게 묘사해 원근감을 주는 기법을 단축법(foreshortening)이라 고 합니다. 만화영화 <마징가 Z>을 보면 거대한 몸집으로 하늘을 날며 위력적인 주먹을 자랑하는 슈퍼로봇의 장쾌한 모습이 특징인데, 단축법을 사용해 마징가의 오른손을 크게 그리면 우리는 마징가가 내 앞에 있는 뭔가를 움켜쥐고 때려부수려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날아다니는 마징가의 손을 크게 그리고 다리 아랫부분을 생략하면 마징가가 나를 향해 수평으로 날아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즉 단축법은 평평한 화면인데도 그림을 보는 사람이 실제 3차원 공간처럼 느끼도록 묘사하는 기법입니다. 단축법을 통한 원근감은 서양의 미술이 신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변화해간다는, 아주 중요한 징후를 보여줍니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의 그림에 전부 그려 넣으려는 시도는 그만큼 완벽한 세계, 신과 가까운 곳을 추구하여 불멸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내 눈에 보이는 공간의 모습 그 대로 그리려는 것은 내가 바라보고 지각하는 세계가 진짜이며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인본 주의(人本主義)는 신이 아닌 인간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단축법은 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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