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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디자인 이야기 ① 비달 사순 디자인과 바우하우스의 만남
  • 김미소 에디터
  • 승인 2019.11.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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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디자인 이야기 ① 비달 사순 디자인과 바우하우스의 만남
영국 사순 스쿨로 유학을 가서 도형을 접목한 커트 표현 방식을 처음 접했다. 커트 디자인이 원래 그런 것인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최근 도형으로 헤어 디자인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조형이론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알게 됐고 비달 사순과 바우하우스의 연관성에 관심이 생겼다. 1919년에 설립된 바우하우스와 1960년대를 풍미했던 비달 사순의 이야기를 헤어 디자이너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바우하우스 외관(출처: pixabay)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 봤을 이름이다. 독일의 한 도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세워졌던 디자인 학교로 바우하우스의 활동이 십몇 년에 불과하지만 현대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디자인은 오랜 시간 숙련된 수공예가들이 만들었던 디자인으로, 대부분의 조각과 수공예로 이루어진 작품은 오직 소수의 왕과 귀족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디자인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받게 되었다. 증기, 전기, 방직 등 산업화되면서 기계를 발명하게 되었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기계가 주로 사용됐다. 산업화 초기에 기계로 생산된 물건은 박람회에서 공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기계로 인해 최소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미(美)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대량 생산된 제품에는 미적인 요소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 바실리 의자(출처: flickr)
같은 시대에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면서 대중을 위한 봉사와 실천적 모색이 이루어졌고, 아울러 보다 실용적이고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기능주의적 디자인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에 바우하우스와 같은 시대에 일어난 독일 공작 연맹, 아르데코, 데스틸, 러시아 전위미술 등의 조형 활동이 바우하우스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실용적이고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 디자인이 탄생했다.
 
단순화되고 기능적인 디자인의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당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건축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독자적인 교육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로피우스는 1919년부터 1928년까지 교장으로 재직했으며,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요하네스 이텐 등이 교수진으로 참여했다. 바우하우스의 공방은 교육의 장인 동시에 생산을 독려하는 공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아카데미적이고 수직적인 예술의 교육 체계에서 벗어나 산업을 위한 실용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이렇게 예술과 기술의 통합 과정에서 나타난 기능주의적인 이념에서 기계 생산 산업 현실에 적합한 근대적 이념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로피우스에서 출발한 교육 과정인 예비 과정은 이후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요하네스 이텐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정립하게 된다.
 
바우하우스의 조형이론
바우하우스의 조형이론을 다룬 대표 인물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요하네스 이텐을 꼽는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이론을 세웠는데, 점·선·면으로 형태를 단순화해서 분석하고 통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점·선·면(출처: 위키피디아)
원, 삼각형, 사각형 기하학적 디자인(사진: flickr)
파울 클레는 입체를 구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 요소인 점에서 출발한다고 보았으며, 점으로부터 1차원적으로 획득된 것이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어 2차원을 구성하고 면이 입체를 만들어 3차원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점·선·면으로 형태가 결합하면서 1차원, 2차원, 3차원으로 변화해 입체 형태 이론을 이룬다.
 
대량 생산에 적합한 기계화가 이뤄지면서 단순화되고 기하학적인 양식이 자리 잡았다. 기하학은 원초적인 형태인 삼각형, 사각형, 원형을 말하고 이 도형의 형태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배치해서 다양하게 조형할 수 있었다. 요하네스 이텐은 사물을 단순화시켜 이 세 가지 기초 도형으로 형태를 분할하는 방법을 체계화했고, 이 단순화되고 분할된 형태 연구를 한 후 입체로 그 범위를 확장해서 구(sphere), 입방체(cubes), 각뿔(pyramids), 원추(cones) 및 원기둥(cylinder) 등의 입체 형태 연구로 확장했다. 단순한 형태를 입체적인 형태로 만드는 조형 원리를 설립한 것이다. 
 
요하네스 이텐의 이와 같은 연구는 3차원 공간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현대 디자인의 기본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특히 이런 조형 원리는 비달 사순의 헤어 디자인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헤어와 머리 전체의 디자인을 위한 입체적 형태 분할과 3차원적 변형에 관한 이론의 기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우하우스 해산과 비달 사순의 접점
1933년 4월 나치의 정치적 압력으로 바우하우스가 해체되면서 결국 독일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졌고 바우하우스 교수들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바우하우스(New Bauhaus)’라는 이름으로 정착해 현대 디자인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1961년 뉴욕의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사무실에서 비달 사순을 만났다.
 
시그램 빌딩(출처: flickr)
바우하우스 물결의 선두주자였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주창한 ‘Less is more(적을수록 좋다)’는 구시대 디자인에서 불필요한 장식적인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단순함의 미학이 디자인 세계를 선도할 것을 예견했다. 그의 생각은 새로운 디자인을 찾고 있던 비달 사순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두 사람의 만남은 비달 사순이 바우하우스의 이론적 계승을 이루는 전환점이 되었다.
 
1938년 바우하우스 뉴욕 전시 카탈로그(출처: flickr)
바우하우스를 접하게 된 이후에 비달 사순은 건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건축 디자인과 얼굴을 위한 형태 디자인의 유사성을 끌어냈다. 그는 기존의 헤어 디자인에서 지배적이었던 인위적이고 장식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모발의 특성인 움직임을 고려해 기하학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비달 사순 스타일을 완성했다.
 
1964년에는 바우하우스 원리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의 완성체인 ‘파이브 포인트 커트(Five Point cut)’를 완성하게 되었으며, 파이브 포인트 커트뿐만 아니라 디자인 이론과 교육 시스템에서도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다음 칼럼에서는 현대 디자인의 기초가 되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비달 사순이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 그들만의 헤어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에디터 김미소(beautygraphy@naver.com)  제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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