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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표현력을 가진 아르카익 미술의 매력,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⑧ 
  • 최은혜
  • 승인 2019.11.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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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미술 '아르카익 미술'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해상 교역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예술 작품도 점차 생동감을 갖기 시작하고, 사람의 눈으로 본 시점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관습적인 추상성에서 현실적인 구체성으로 전환되는 이 시기를 ‘아르카익(archaic) 시기’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고졸기(古拙期, 고졸: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음)’라고 하는데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7~6세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는 앞서 살펴본 대로 이집트 양식과 그리스만의 독자적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절정기 그리스 미술로 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장기를 두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 기원전 540년경.(흑색상) 출처 http://www.rubricadiarte.it
장기를 두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 기원전 540년경.(흑색상) 출처 http://www.rubricadiarte.it
트로이 목마를 만드는 에페우스. 기원전 480년경.(적색상) 출처 https:// upload.wikimedia.org
아르카익의 대표적인 예술품인 항아리 그림은 시대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항아리 그림이 그려진 초창기에는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대상을 묘사하고 흰색 윤곽선을 새겨 넣은 형태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흑색상 (黑色像)’이라 부릅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러다가 조금 뒤에 ‘적색상(赤色像)’ 이 등장했습니다. 흑색상과 반대로 검정 바탕에 붉은색으로 대상을 칠한 후 검정 윤곽선으로 디테일을 표현합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발달하면서 훨씬 더 세밀하고 다채로운 묘사가 가능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흑색상에 비해 적색상에 드러난 표정이 더 풍부하고 뭔가 내면적인 표현도 가능해진 것 같지 않나요? 마치 펜으로 슥슥 그린 것처럼 우아하고 섬세한 필체가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파고드는 듯합니다. 그리고 옷의 주름이나 장식, 손가락 등 세부 묘사가 필요한 작업도 한결 편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번에 봤듯이 단축법의 사용으로 이집트의 전통과 단절하기 시작한 것도 적색상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조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르카익 시기의 대표적인 조각상으로 코우로스(kouros)와 코레(kore)가 있습니다. 코우로스는 청년의 누드상, 코레는 옷을 입은 소녀상을 의미합니다. 기원 전 5세기 중반 코우로스상과 기원전 510년경 코레상을 보면 남자는 차렷 자세에 주먹을 쥔 채 왼발을 앞으로 조금 내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왼발을 앞으로 내밀기도 하지만 두 발을 가지런히 하여 똑바로 서 있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코우로스상의 포즈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조각상인 미세리누스 왕과 왕비의 입상(기원전 2600년경)과 그림인 아누비스와 그의 아내라는 작품을 보면 왼발을 앞으로 내민 자세가 이집트 인물 표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아르카익 시기의 조각상은 이런 전통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차이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얼굴 표정, 바로 입가의 은은한 미소입니다. 이집트 조각상은 무표정이지만 그리스 조각상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아르카익 미소’라고도 할 만큼 특징적입니다.
 
코우로스상. 왼쪽 기원전 525년경, 오 른쪽 기원전 600년경. 출처 https://swh-826d.kxcdn. com
위에 두 조각상 중 오른쪽이 더 먼저 제작된 것인데요. 얼굴 표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봅시다. 초창기의 코우로스상에는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표현 되어 있지만 후대로 갈수록 미소는 더 또렷해지고 인체의 근육도 더 섬세해졌습니다.
 
그런데 입가의 미소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죠?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모나리자, 1503년.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로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눈꼬리와 입꼬리에 그늘을 주어서 표정을 풍부하게 만든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게 어떤 표정일까 상상하면서 미묘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다 빈치가 활동했던 15~16세기를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합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재발견을 통해 인본주의를 추구하려는 문화적 경향을 의미하는데요. 인간의 다채로운 생동감을 인간의 시각으로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코레 두상. 기원전 530년경. 출처 https://i.ytimg.com
위에 코레 두상의 입꼬리와 보조개의 섬세함을 보세요. 눈동자도 아마 처음에는 또렷하게 채색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고자 했던 점에서 아르카익 시기의 미술 작품은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어넣어주었을 것입니다. 비록 아르카익 시기의 미술은 그 직후에 펼쳐진 전성기 그리스 미술에 비하면 완성도가 낮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오랜 관습인 이집트의 영향을 벗어나 사람의 생생함을 과감히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 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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