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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 이야기 - 영화 리뷰 '마빈의 방'
  • 성재희
  • 승인 2019.11.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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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빈의 방' 포스터
최초의 타인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세 살 터울이라 까마득한 선배 대하듯 어렵지는 않고 그렇다고 동갑내기처럼 가깝지도 않은. 여느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땐 제일 가까운 친구였고 떡 한 조각을 놓고 누가 먹네 마네 다투고 싸우기 일쑤인 원수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서로에게 약간은 소원하면서 과묵해졌죠. 그래도 이 데면데면한 관계가 서로 편하고 좋습니다.

혹자는 형제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타인’이라고 했는데요. 언제 내 몫을 빼앗길지 몰라 불안해하고 나 혼자 사랑을 독차지하는 걸 용납 못 하는 경쟁자. 마치 카인과 아벨처럼 질투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란 점에서 형제를 바라본 예리한 분석인데요. 역사가 증명하듯 형제의 갈등만큼 잔혹하고 지저분한 관계의 파멸은 찾기 힘들죠.

그런데 형제지간 중에서도 자매는 형제와는 또 다른가 봅니다. 남매야 성별이 다르니 갈등은 피할 수 없다고 치고요. 자매 간에는 여자들만의 특별한 교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반면,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더욱 기피하고 원망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제리 작스 감독의 1996년 작, <마빈의 방>에 이런 자매의 복잡미묘한 관계가 잘 드러나 있는데요. 20년 동안 서로를 외면했던 두 자매가 모든 시련의 도화선이었던 아버지의 방 앞에 마주 서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에 감정을 쥐어짜지 않는 담백한 연출, 메릴 스트립과 다이안 키튼의 열연은 이 사연 많은 자매의 삶을 짠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들죠.

제목인 ‘마빈의 방’은 바로 두 자매의 아버지, 마빈을 가리킵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자매의 삶은 완전히 분열되기 시작하죠. 언니 베시는 아버지의 곁에서 고통과 절망의 냄새에 찌들어가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 동생 리는 삐뚤어진 사춘기 소녀에서 마음의 키가 멈춰버렸습니다. 어느 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집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백혈병에 걸린 언니가 보낸 20년 만의 전갈이었죠.

다시 아버지의 방에서
그렇게 두 자매가 20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반가움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뒤섞인 어색한 재회일 수밖에 없었죠. 홀로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여자로서의 행복은 느껴볼 겨를도 없이 덜컥 병에 걸린 언니가 리는 몹시 안쓰럽습니다. 아버지 마빈은 아버지대로 운신은커녕 정신마저 온전치 못했죠. 자신이 떠날 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언니가 혼자서 돌봐왔다는 사실에 리는 참담한 심정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모와 외할아버지가 낯설고 어색하기는 리의 두 아들 행크와 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베시 이모의 따뜻한 환대였죠. 그건 엄마로부터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온기였습니다. 리는 리대로 혼자 두 아들을 부양하느라 쐐기풀처럼 억척스러워져 있었으니까요. 늘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그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조차 까맣게 잊은 듯했습니다.

리가 끝까지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장면에서 탄식과 연민이 들숨과 날숨처럼 교차합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고통의 근원이었고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언니만 가여운 게 아닙니다. 리 자신도 부모 없이 자란 고아처럼 생계를 놓고 여전히 세상과 다투고 있는 중입니다.

원망의 시선은 아버지에서 다시 언니에게로 향합니다. 같은 여자이지만 정말 진절머리가 나도록 미련한 언니 때문에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이 딱한 여자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그녀의 가발을 다듬는 것뿐이라니. 이런 걸로 언니가 겪었을 지독한 고통과 절망을 위로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리는 밤새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기적처럼 베시에게 맞는 골수가 있으면 좋으련만. 단 한 사람도 그녀와 골수가 일치하지 않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죠. 그래도 베시에게 좌절은 없습니다. 누굴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서 바보처럼 웃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비로소 고통을 분담할 가족이 생겼으니까요. 먼 길을 돌고 돌아 진정한 내편,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까요.
 
마빈의 방 Marvin’s Room, 1996
감독 제리 작스
주연 메릴 스트립, 다이안 키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니로

글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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