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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철저한 현지화로 비상하라, 키쉬너 '파올로 레자라' 사장
  • 김도현 에디터
  • 승인 2019.12.0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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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화장품 유통사 키쉬너그룹의 파올로 레자라 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전 세계 화장품 트렌드를 이끄는 ‘K-뷰티’의 나라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왔다는 그를 만났다. 
 
키쉬너그룹 파올로 레자라 사장
키쉬너그룹 파올로 레자라 사장
키쉬너그룹(THE KIRSCHNER GROUP, INC.)은 화장품을 판매하는 미국 회사다. 자사 브랜드는 없다. 자체 유통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의 브랜드를 남의 유통망에서 영업한다. 제조 분야에 흔히 ‘OEM·ODM’이라 불리는 전문 제조사가 있듯 유통 분야의 ‘전문 유통사’ 혹은 ‘전문 영업사’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기능의 총판이나 에이전시 업체들이 있지만 키쉬너그룹의 사업 영역과 방식은 보다 국제적이고 전문적이다. 전 세계 수많은 브랜드를, 수많은 유통망에 네트워킹하고 각각의 브랜드와 유통망에 맞는 판매 전략을 수립해 실행한다. 
 
30여 년에 걸쳐 미주와 유럽 화장품 시장을 누벼온 키쉬너그룹은 최근 몇 년간 부쩍 아시아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최우선 타깃 시장이다. 키쉬너그룹의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파올로 레자라(Paolo Rezzara) 사장이 직접 내한한 이유도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올지, 어떤 브랜드를 한국에서 들고 나갈지 중요한 선택이 그에게 남았다.
 
키쉬너그룹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화장품 유통 회사로 꼽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미국 내 2개의 오피스를 운영하며 50개 주 전체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세일즈 매니저만 35명에 이르고 별도의 유통 섹션을 담당하는 7개의 팀도 있지요. 유수의 브랜드와 유수의 유통업체가 모두 우리 파트너입니다. 
 
해외 각 지역 세일즈 매니저도 25명에 이릅니다. 인접국인 캐나다는 물론 중남미와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102개국에 진출해 있습니다. 지역 세일즈 매니저와는 별도로 주요국마다 지사장이 있고요. 
 
미국이나 유럽 각 나라마다 우리와 같은 사업을 하는 업체들이 많지만 우리만큼 국제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하는 곳은 없습니다. 대부분 한 국가, 한 지역 내에 한정돼 있지요. 키쉬너그룹이 사실상 세계 유일의 ‘국제 뷰티 세일즈 회사’인 셈입니다. 35년 이 넘는 역사며 매출 규모로도 단연 1위라고 자부합니다.
 
한국에선 다소 낯선 비즈니스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전개하는 건가요? 
우리는 브랜드사가 만든 제품에 가장 적절한 유통망을 찾아주고 영업과 판매에 관련된 모든 것을 대행합니다. 총판권을 판매하기도 하고 브랜드와 총판 간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브랜드를 대표해 마케팅도 진행합니다. 
 
해외에선 더더욱 우리의 역할이 커집니다. 많은 브랜드가 충분한 조사 없이 해외시장에 섣불리 진출했다가 실패합니다. 우리는 그 리스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요. 각 나라에 지사를 설치해 경험 많은 스태프를 고용하고 생생한 시장 정보를 얻음으로써 고객사를 위한 최적의 전략을 제안합니다. 
 
키쉬너그룹 기업 로고(왼쪽)과 미국 캘리 포니아주 발렌시아시의 키쉬너그룹 본사 (사진 : 키쉬너그룹)
키쉬너그룹 기업 로고(왼쪽)과 미국 캘리 포니아주 발렌시아시의 키쉬너그룹 본사 (사진 : 키쉬너그룹)
어떤 인연으로 키쉬너그룹에서 일하게 됐나요? 
저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정유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에 어렸을 때부터 국제무역에 관심이 있었죠. 이전 회사에서도 국제무역 비즈니스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0여 년 전 키쉬너 회장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당시에도 키쉬너그룹은 미국에서 가장 큰 화장품 유통사였지만 국내 사업만 하고 있어서 해외에서도 제품을 팔아보자고 설득했지요. 새로운 유통망을 발굴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부지런히 드나들었어요.
 
해외 사업을 하는 화장품 유통사는 없던 터라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었지요. 초반에는 아주 작은 브랜드만 연계하다가 점차 큰 브랜드로 확장돼 사업 규모가 커지는 선순환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저 혼자가 아닌 많은 직원들이 해외 사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뷰티 비즈니스는 키쉬너그룹에서 처음 경험했는데 단지 화장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각 나라의 뷰티 문화를 선도하고 개개인의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일조하니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에서의 사업 성과는 어떤가요? 
한국 지사는 3년 전에 설립했습니다. 한국 화장품 시장의 규모와 중요성, K-뷰티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뷰티 비즈니스는 매우 유동적이어서 언제든 기회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한국 문화와 시장, 소비자를 조사하고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나라를 모르면 화장품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 세계적인 헤어빗 브랜드인 웻브러시(Wetbrush)를 비롯해 모로칸오일, 리빙푸르프, 웰라, 레브론 등과 한국 내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한국 브랜드와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 실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통할 만한 독특한 아이템이 있다면 언제든 한국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9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프로프' 키쉬너그룹 부스(왼쪽)와 키쉬너그룹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아메리칸 인플루언서 어워즈' 홈페이지 (사진 : 키쉬너그룹)
'2019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프로프' 키쉬너그룹 부스(왼쪽)와 키쉬너그룹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아메리칸 인플루언서 어워즈' 홈페이지 (사진 : 키쉬너그룹)
미국 화장품 시장의 최신 트렌드나 인기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건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유기농’ ‘천연’이 대세입니다. K-뷰티에 대한 관심 또한 여전합니다. 또 비교적 다양한 성분이 허용되면서 ‘이너뷰티’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고 화장품 매장 어디를 가든 관련 제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진열돼 있습니다. 대마초의 일종인 헴프(hemp)에서 향정신성 효과가 없는 칸나비디올(cannabidiol)을 추출해 만든 화장품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인디 뷰티’의 부상입니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화장품마저 기존에 익숙한 브랜드가 아닌 새로운 것을 찾아 쓰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들은 SNS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성을 모색하고 인플루언서를 통해 소비하죠.
 
키쉬너그룹에서도 밀레니얼 세대 공략을 위해 지난해부터 ‘아메리칸 인플루언서 어워즈(American Influencer Awards)’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주요한 뷰티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행사인데 앞으로 이를 뷰티업계의 오스카상으로 키울 계획입니다. 실제 올해 행사도 오스카 상이 열리는 할리우드의 돌비극장에서 개최하고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함께했어요.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세계에 진출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각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탐색하고 연구하는 것처럼 한국 브랜드도 진출하려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하얀 피부를 가진 유럽 여성들에게 미백 화장품을 판매할 수 있을까요? 심한 곱슬머리의 남미 사람들에게 컬링 헤어 제품이 먹힐까요? 
 
그동안 한국 지사를 통해 많은 브랜드를 접촉하고 제품을 테스트해봤습니다. 80%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품질의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지 시장에서 마케팅까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브랜드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제품 설명서나 프레젠테이션에 사용하는 영어가 어색하고 대충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떤 나라든 일단 진출할 순 있지만 잘못된 첫발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인식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한국적이라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현지화가 중요합니다. 그 나라를 상세히 파악하고 면밀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세요. 
 
키쉬너그룹 파올로 레자라 사장
키쉬너그룹 파올로 레자라 사장
에디터 김도현(cos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사재성(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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