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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20인의 사물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5.08.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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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20인의 사물

꼬박 10년을 기록한 캘린더와 다이어리, 해외 출장길에 구입한 브러시, 스승이 선물한 가위, 20년 지기
메이크업 박스, 행운을 선물하는 목걸이, 틈날 때마다 들춰 보는 아트북, 위로와 희망과 영감을 선사하는
애니메이션 컬렉션, 즐겨 쓰는 레드 립스틱, 취미로 그린 민화, 헤어 디자인의 철학이 된 레고 등 아티스트
20인의 지극히 사적인 사물을 소개하고 이야기합니다.

에디터 윤태홍 포토그래퍼 한용만


1. 20년 지기 메이크업 박스와 친구의 응원, 그리고 배우 고현정의 선물
20년 전 로망처럼 생각하던 이 박스 안에 색조 아이템을 진열하듯 정돈하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
대기실이나 촬영장에서 메이크업 박스를 활짝 펼쳤을 때 이 안에 담긴 색조 제품의
브랜드, 종류, 개수로 내가 작아지고 커지는 자존감이기도 했다. 희붐한 미래를 무작정 희망하며
이 박스를 갖고,품 고, 안고 다녔던 그때. 20년 지기 메이크업 박스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추억도 빼곡하다. 다섯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꼬박 모은 돈으로 샀던 기억, 노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오르면 늘 품에 안은 채로 잠들었고, 하도 많이 들고 다녀 손가락에
굳은살까지 박이게 한 기특한 물건이다. 한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만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는데도 이 소중한박 스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차비가 없어 박스를 든 채 경찰서까지 돌아가
천원을 빌려 집으로 오던 길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박스에 아이템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손아귀의
물집과 굳은살은 단단해졌고 아티스트로서의 무게감까지 더해졌다. 영예로운 첫 순간도
모두 함께했다. 첫 해외 촬영, 첫 영화, 첫 드라마, 첫 화보…. 그리고 난 성장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20년된 메이크업 박스 앞에 놓인 프티 사이즈의 메이크업 박스는 친구가 선물해준 것. ‘넌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거야!’ 라고 응원하면서. 비록 크기는 작지만 소중한 기억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 그리고 5년 전, 광고 촬영지였던 크로아티아에서 배우 고현정에게 선물
받은 동화책도 의미 깊다. 반복되는 일상에 판타지와 창의적인 에너지를 얻고자 할 때 이 책을 본다.
관성적인 생각을 전환하거나 동심을 찾고 싶을 때도 이 책을 편다. 내 인생의 전환기를
선사했던 그때가 그리워 지난해 다시, 크로아티아를 찾았다. 모든 건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진 것 같았다.
이 책을또 한번 꺼내야 할 것 같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현증 by 메르시뷰티하우스


2. 그레이스 리 선생님의 유품
2011년 작고하신 그레이스 리 선생님의 유품을 간직하고 있다. 해외에서 취득한
헤어 디자이너 라이선스, 손잡이 부분에 보석이 장식된 아주 오래된 왼손잡이용
가위, 테가 가늘고 렌즈가 둥근 안경 몇 개, 선생님이 매일 쓰셨던 챙이 넓은 짙은
녹색 모자, 자서전 <오늘이 내 삶의 클라이맥스다>의 표지에도 등장하는 지금 봐도
감각적인 컷아웃 디자인의 스웨이드 샌들, 커트를 할 때 의복처럼 착용하시던 외투
등이 그것. 미용계의 대모이신 선생님은 참으로 멋있는 분이셨다. 국내에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선생님과 대화하기를 즐겼고 담화를 나누거나 조언을 듣게
되면 가슴이 뻥 뚫리는 ‘힐링’을 주셨다. 외국어도 두루두루 섭렵하셨으며 문화 예술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보셨고 감탄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어
내면을 채우고 그걸 손으로 표현하신 분이다. 암 투병으로 파리하게 마른 선생님을
내 손으로 곱게 단장시켜드린 날, “프리지어로 병실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꽃을 한아름 사와 선사했던 날도 기억난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독자적인 커팅 테크닉을 책으로 남기길 소원하셨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앞으로도 영원히 선생님 같은 헤어 디자이너는 나올 수 없을 거다 .
- 헤어 아티스트 이희 by 이희헤어앤메이크업


3.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살아 생전 마지막 선물로 주신 목걸이. 지금
까지 한 번도 몸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다. 환희에
차 내가 크게 느껴질 때도 힘에 부쳐 나약해질
때도 내게 미용인의 길을 열어주신 어머니
를 떠올린다. 목걸이 이상의 의미.
끝없는 사랑의 징표다.
- 헤어 아티스트 서일라
by W퓨리피


4. 과거의 증거물
교육 일지와 예약 장부는 치열했던 과거의
증거물이다. 10년 전에는 예약 장부를 수기로
작성했다. 시술 희망 날짜, 예약자 이름, 연락처
등을 적었다. 장부에 예약자 이름을 빼곡히 올릴 때마다 어찌나
뭉클했던지. 교육 일지도 이제와 들춰 보니 감회가 새롭다. 텅 빈
살롱에 혼자 남아 안 되면 될 때까지 수백 번 연습하고 밤낮 없이
몰두하다 어려운 숙제를 내준 선생님께 최종 점검을 받던 그때가
조금은 그립다. 이번 기회에 고객 카드도 꺼내봤다. 어떠한 헤어
스타일로 응대했는지 그림까지 그렸더라. 피식 웃음이 났다.
- 헤어 아티스트 범호 by 아쥬레


5. 고미술 아트북
평소 고미술에 관심이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동 일대와 고미술품 전시회를 다닌다. 애타게 찾던 이 책을
만난 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된 간송미술전. 풍문으로 듣고 이 책을 구매하러 찾아가 끝내 입수했다.
책을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열어 보니 고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그리고 당시의
삶을, 시대의 여인을 상상해본다. 희고 말간 얼굴에 눈썹은 가느다랗게 입술은 붉게 단장한 규수, 흑단 같은 머리를 땋아 올려
풍성하게 틀어 올린 아낙의 생김새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규정할 수 없는 풍부한 영감을 얻는다. 인테리어 아이디어도이 책에서
얻었다. 에이바이봄이 그렇게 탄생됐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보미 by A.by BOM
.


6. 2015 F/W 트렌드북 그리고 레드 립스틱
메이크업 아티스트지만 외려 난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선크림 바른
맨 얼굴에 레드 립은 사수한다. 내가 꼽는 베스트 립 컬러는 나스의 드래곤
걸과 맥의 올 파이어드 업. 쫀득한 래커 제형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립
마에스트로 404호도 즐겨 바른다. 나만의 레드 립 연출법은 단순하다.
브러시로 그러데이션을 주거나 립밤처럼 톡톡 찍어 바르지 않는다. 립스틱을
입술에 가득 채워 바른다. 립 컬러는 그날 의상에 따라 고르는 편. 눈에 확 띄는
네온 컬러 의상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거나 무채색으로 차려입고 입술은 붉게
마무리하는 식.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교과서, 맥 트렌드 북은 언제 봐도
무한한 영감을 준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무진 by 제니하우스


7. 디올 메이크업 박스,
더블랙 코스메틱

나는 크리스찬 디올의 아시아
최초 인터내셔널 아티스트다.
이 모던한 블랙 캐리어는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에게만 지급되는 것인데다
자랑스럽게도 ‘메이크업 프로팀 승원김’이라
새겨져 있어 유일무이한 나만의 것이다.
전 세계 곳곳으로 해외 출장을 갈 때도 파리
컬렉션의 백스테이지와 칸 영화제 등을 누비며
늘 나와 함께 작업한 까닭에 다소 낡고 색도
바랬지만 메이크업에 모든 걸 쏟아부었던
당시를 회상시키는 매우 소중한 물건이다. 현재
나는 브랜드에서 독립한 이후 프리랜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독자적인 커리어를
개척하고 있다. 또한 프리미엄 코스메틱 브랜드
에포라코스메틱의 대표이기도 하다. 앞으로
브랜드를 더욱 성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의 시그너처
룩인 화이트 셔츠, 블랙 타이, 블랙 슈트를
그대로 입고서.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 by
에스킴프로페셔널뷰티


8. 캘린더와 다이어리에 남긴
13년이라는 시간

올해로 메이크업을 시작한 지 20여년이
되었다. 본래 계획한 걸 반드시 지키려
노력하는 성격이라 캘린더와 다이어리에
아무리 작은 약속이나 이벤트도 매번 적어
둔다. 김활란뮤제네프 도산라벨르점 안쪽
깊숙이 위치한 내 방 책상 한쪽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모아보니
벌써 10권이 넘었다. 일상의 기록이 어느새
역사가 된 것. 그동안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출산도 했으며 교수로 임용됐다.
13년 전 단독 부티크를 열어 현재 4개의
살롱을 운영하며, 제품 개발에도 나선다.
제자 양성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치열하게
노력했던 수 많은 일과는 일이든 가정이든
사람이든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성격을 대변한다. 캘린더와 다이어리는 내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이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활란 by
김활란뮤제네프


9. 스승의 선물,
9인치 장가위

미국 비벌리힐즈 가버트
아틀리에 근무 당시 태양
선생님께 받은 선물이다.
이렇게 긴 9인치 가위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에
굉장히 낯설다. 또한
컨트롤하기도 힘들어 자칫
흉기처럼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내겐 부적과 같다.
커다란 장가위를 마치
비달사순에서 사용하던 4
인치 가위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감각과
감성을 키울 수 있었으니.
장가위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손끝을 연마해 전
세계인들의 헤어를 이 가위
하나로 평정하라는 스승님의
뜻에 비로소 다가서게 된
것. 이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커트를 할 때 이
가위를 꺼낸다. 신중하고
과감하게 아티스트 무진의
감성이 실린 커트를
장가위로 실현하고 있다.
- 헤어 아티스트 무진 by
살롱다티스트


10. 메이크업 비밀 병기
1분 1초 단위로 긴박하게 움직이는 백스테이지에서는
빠른 손놀림이 메이크업 완성도의 절대적인 관건. 시즌
주요 아이템을 한눈에 파악하고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찾아낸 터치업 패드는 제품을 일렬로
나열한 뒤 밴드로 고정할 수 있어 파우치 형태의 가방보다
시간 절약에 효율적이다. 또 하나의 비밀 병기는 12년째
믿고 쓰는 맥(MAC) 브러쉬 109호. 페이스 차트를 그릴
때, 파운데이션을 넓게 펴 바를 때, 얼굴 윤곽에 셰이딩을
넣을 때, 심지어 보디 메이크업을 할 때도 이 멀티
브러시를 사용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 손때가 묻은
소장품. 손잡이 부분 디자인이 지금과 달라 오직 나만의
브러시 같은 존재. - 메이크업 아티스트 변명숙 by 맥


11.온라인 아카이브
, , , 등 해외
유명 매거진의 웹사이트를 수시로 방문한다. 최신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감각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로 편집된
영상을 몇 번이나 감상할 수 있으며 심지어 스크랩을 할 때도
저장만 하면 끝이라 무척이나 편리하기 때문. 그래서 이 작고
가벼운 온라인 아카이브에 웬만한 자료는 모두 빼곡히 저장되어
있다. 스타일링에 참고할 만한 화보 시안, 셀러브리티의
동시대적인 헤어 룩, 중국 유학 시절의 작품 사진, 꼭 읽어봐야
할 교육 자료,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든 희귀한 사진 자료 등.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아카이브를 이제서야
공개한다. - 헤어 아티스트 정석 by 작은차이


12. 애니메이션 컬렉션
어릴 적 만화만 나오면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들어갈 듯 몰입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허구한 날 공부는 안
하고 만화만 본다고 부모님께 야단맞곤 했었다. 한번은 꿈에서 만화가가 되는 꿈도 꿨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는 걸! 남들은 성인이 되면 만화에 관심이 줄거나 아예 끊는다고
하던데 나는 다르다. 일부러 종종 만화를 챙겨 본다. 만화는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미용을 시작하면서 누구든
힘들고 지칠 때가 있듯 내게도 혹독한 시기가 참으로 많았다. 그때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 이를테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빨강머리 앤> 등 내가 편애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보면 위로가 됐고 행복해졌으며 영감도
얻었다. 그렇게 하나, 둘 사 모으다 보니 지금의 컬렉션이 되었다. - 헤어 아티스트 임진옥 by 스타일플로어


13. 조립, 해체, 창작의 연속 ‘레고’
나는 자타 공인 레고 마니아다. 나도 처음엔 레고를 사촌 조카의 장난감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낱개의 브릭 조각이 모여 정교한 전체를 이루는 과정에 온전히
매료됐다. 덴마크의 목수 출신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4명의 아들을 위해 만든 것이
레고의 시초. 이는 ‘잘 논다’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조립한다’라는 의미다. 지금도 덴마크
빌룬트에 위치한 레고 본사에서는 1백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급변하는 장난감 시장에
적합한 최신 레고 시리즈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 이념도 확고하다. ‘오직
최고만이 최고다’라고. 이 믿음직한 이들이 고심하며 설계한 레고는 참으로 정교하다.
레고에 빠진 일반적인 키덜트의 목표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다양한 시리즈의 레고를 여러
개 소장하는 것.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레고의 진짜 매력은 이거다. 바로 기성품을
분리하여 새롭게 조합하는 과정, 좀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그 과정에 끌린다. 이는 헤어 디자이너의 기술적인 지점과 연결된다. 레고를
조립하다 보면 무엇을 만들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색으로 구성할지 숱한 고민에
빠지는데 이는 헤어 디자인과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레고 브릭을 여러 개 모아 다시
임의대로 창작한 뒤 ‘작품명’을 붙이면 매우 고차원적인 쾌감이 든다. 헤어 디자이너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아티스트로 성장하듯 레고의 해체, 조립, 창작 역시 굉장한
내공의 산물이다. 레고는 기성 작품의 재해석, 새로운 형태의 발견,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에 영향을 줬다. 결과적으로 현재 아스카다 디자인 코리아의 살롱 디자인 마스터
8 수업의 바탕이 되었고. 참고로 이 작품들 ‘경주용카’, ‘탐험용 SUV’, ‘전투용 비행기’는
새벽 3시까지 만들었다. - 헤어 아티스트 아스카다 by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이수역점


14.편지 그리고 책
제자의 부모님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의무는 아니었다. 물론 답장도 기대하지
않았고. 어느 날 살롱으로 회신이 날아왔다. 부모님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한가득 담긴 답신. 그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차홍아르더 대표님이자 스승님이 써주신 손 편지도
무척 소중하다. 아마 연애편지보다 한필수 대표님께 받은
편지가 더 많을 거다. 특별한 날 의례처럼 받는 땡큐 카드가
아니다. 몇 번이나 고심했을 예쁜 디자인의 편지지에 그때 그
사연이 빼곡히 담겨 있다.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표님의
제자가 된 나의 일상이 낱낱이 기록된 손 편지라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7년 전 대표님이 선물해주신 책 <배려>도 몇 번이나
읽었다. 아직도 문득 생각나면 읽게 되는 책과 편지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 헤어 아티스트 김경민 by 차홍아르더



15. 나만의 공부 방식 스크랩북
스크랩북만 한 40여 권 있다. 1백 권 정도 매거진을 봐야 한 권의 스크랩북이
완성되니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자부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다. 강성우식
스크랩북은 대개 이런 식으로 제작된다. 먼저 카테고리를 세부적으로 나눈다.
커트, 펌, 컬러링, 컬러링, 맨즈 헤어, 스트리트 헤어, 컬렉션 룩 등으로. 국내에
없는 매우 전위적인 헤어스타일부터 대중적인 룩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헤어
스타일만 수집하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 패션, 오브제 등등 나의 관심 분야를
모두 분류해 주제별로 하나로 묶어 정리한다. 스크랩북 한 권이 완성되는 절차도
엄격하다. 원하는 이미지를 가위로 오려 검은색 종이에 붙인 뒤 어느 정도 분량이
갖춰지면 이 페이지 전체를 컬러 프린트해 스크랩북으로 묶고 원본은 따로
보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크랩북을 마치 시험을 앞두고 요점 정리 노트를
검토하듯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꺼내 본다. 10여 년 전부터 해외
매거진을 꾸준히 구독하며 미리 준비해뒀다. 다소 편집증적인 이 오랜 습관
덕분에 트렌드 발표나 화보 시안 등을 논의할 때 한두 시간이면 거뜬히 끝난다.
- 헤어 아티스트 강성우 by 3story강성우


16. 영원히 빛나는 카네이션
8년 전 스승의 날, 영원히 시들지
않는 카네이션을 선물 받았다.
스태프를 거쳐 디자이너가 되고
원장이 된 제자이자 후배인 강미
원장과 상민 원장이 순수를 오픈
한 첫해를 기념하고자 선물한
도금 카네이션은 언제 봐도
영롱한 빛과 그윽한 향기를
전한다. 두 사람은 나와 함께
참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강미
원장은 올해로 9년을, 상민
원장은 12년을 함께했으니까.
우리는 굳건한 믿음과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가족과 같은
존재다. ‘평생 간직했으면 좋겠다’
는 의미의 이 카네이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순수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에도
몇 차례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선물 받았지만 내겐 이 선물이
유독 가치 있다. 아마 10여 년을
동고동락한 이들의 변치 않는
마음이 담겨서 그럴 거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경 by 순수


17. 깊은 인연
12년 전 여름, 영국 비달사순 연수 중에 그곳에 거주하던
절친한 언니의 권유로 구입한 메이슨 피어슨 브러시. 영국
귀족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브러시로 일명 ‘엉킴 머리 해결사’
로 불리기도. 국내외 유명 헤어 아티스트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명품 브러시로 당시2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멧돼지 털을 특수 가공해 장인이 수공으로 브러시
모를 하나하나 심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구입 후 지금까지 수
많은 셀러브리티의 글래머러스한 헤어 스타일링을 전담한 기특한
빗이다. 주로 모발의 결을 매끈하게 살리거나 볼륨을 넣어
부풀리고 싶을 때 쓴다. 또 하나 내게 소중한 인연은 조성아
스승님과의 만남이다.“ 불가능이란 없다. 해보자.
아이디어를 내라”며 늘 새로운 걸 추구하신 스승님 덕분에 창조의
기쁨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가슴이ㅡ뛰는 일을 예나 지금이나 하고
있다. 칭찬과 용기와 지지를 담은 이 말씀도 또렷이 기억한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했지. 그게 바로 너야!” - 헤어 아티스트
서언미 by 보보리스


18. 시그너처 퍼퓸
몇 해 전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오로지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감행했다. 보통
아끼는 책을 읽으며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무엇에 홀린 듯 면세점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때 처음으로 에르메스 오 드 메르베이를 시향하게 됐다. 평소
달콤하고 상쾌한 향보다 깊고 묵직한 어코드를 선호하던 터라 이 향을 맡는 순간 ‘이
향수라면 누구나 나를 기억해줄 수 있겠구나’라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에르메스 오 드 메르베이를 편애한다. 향수를 뿌리면 일순 시공간을 초월해
기분이 전환되면서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차오른다. 언제
어디서나 고객을 만날 때면 오 드 메르베이로 나를 가꾸고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니 오크, 베티버, 그레이 앰버 등이 조화로운 이 세련되고
관능적인 향으로 모두가 나를 기억해준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주미 by 디바이수성


19. 아티스트 한젬마의 선물
설치미술가 한젬마는 나의 오랜 고객이다. 서양화를 전공한
한젬마와는 취향이나 예술적 관점 등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친구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위해 직접 만든 ‘수공예
작품’을 선물 받고 무척 행복했고 감격스러웠다. 단순화된
십자가 형태의 은 목걸이로 주로 일할 때 착용하면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온다. 멋진 아티스트와 이렇게 오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고.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정남 by 끌로에본점


20. 처음 그린 민화
늘 바쁘고 할 일이 많아 자는 시간도 부족했던 스태프 시절을 지나
아티스트로 입봉하고 몇 년 동안은 의욕과 열정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만
하고 살았다. 그렇게 일터와 집만 오가다 작년 여름 즈음부터 슬럼프에 빠져
힘들 때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을 조금 더 발전시켜 슬럼프를 벗어나겠다는 굳은 의지와 나를
위한 작은 취미가 필요하단 생각에 스스로 선물하는 휴식 시간인 셈이다. 쉬면서도 일을 놓고 싶지 않았던
그때, 제일 처음 완성한 작품이다. 지금 보면 서툴고 부족한 면만 눈에 띄지만 가끔씩 그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슬며시 웃게 되는 내 인생의 첫 작품. 애틋하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윤기 by 포레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