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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UZZ CUT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6.01.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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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uzz Cut

머리를 빡빡 미는 순간 여성미의
극치를 뽐내는 아이러니! 버즈
커트 군단이 런웨이를 점령했다.
짜릿한 해방감은 덤이다.


에디터 윤태홍
도움말 재현(디바이수성) 영란(더제이레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조니 요한슨
의 아크네 스튜디오, 리카르도 티시의 지방시 그리고 알렉산더 왕을 제치
고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이 된 뎀나 즈바살리아의 베트멍까지. 나열만
으로도 가슴 벅찬 컬렉션의 공통점은? 아마 쉽게 예상치 못했을 거다. 정답
은 바로 삭발처럼 짧게 깎은 이른바 스포츠 머리, 버즈 커트(Buzz Cut)를
장착한 모델을 기용했다는 것. 이뿐만이 아니다. 랑방, 생 로랑, 베르사체,
릭 오웬스 등은 군 입대를 앞둔 젊은 남성처럼 머리를 빡빡 민 낯선 얼굴의
모델들이 점령했다.
특히 플래티넘 블론드를 짧게 쳐낸 모델 루스 벨(Ruth Bell)은 버즈 커트를
한 모델 중 최다 런웨이 등장 기록을 세웠다. 밤톨처럼 깎아낸 듯한 두상은
루스 벨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패
션 디자이너가 온 힘을 다해 창작한 뉴 룩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루이 비통
쇼에 선 타미 글라우저(Tamy Glauser)와 리나 호스(Lina Hoss), 아크네
스튜디오의 포문을 연 수키 그라븐호르스트(Soekie Gravenhorst)와 애호
크 마작(Achok Majak), 지방시의 아약 뎅(Ajak Deng)도 빼놓을 수 없는
버즈 커트 군단 중 하나. 특히 아약 뎅이나 애호크 마작처럼 흑인 모델의
경우 머리카락을 매우 짧게 쳐내자 눈부신 검은 육체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는 마치 잘 다듬은 조각상 또는 마네킹처럼 인조적인 뉘앙스를 주며 신
선한 충격을 안겼다.
일찍이 마일리 사이러스, 제시 제이 등 팝 가수들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머
리를 밀었다. 다소 청승맞게 보이던 길고 까만 생머리의 제시 제이는 노랗
게 탈색을 하고 버즈 커트를 한 뒤 섹시하고 파워풀한 여가수로 거듭났다.
팝 월드의 악동이라 불리며 기행을 일삼는 마일리 사이러스에게 삭발은 극
도의 일탈처럼 여겨졌다. 여배우도 예외는 아니다. 데미 무어, 엠마 왓슨,
샤를리즈 테론, 나탈리 포트만, 앤 해서웨이 등도 영화를 위한 ‘삭발 투혼’
경험이 있다. 비교적 최근 머리를 깎은 샤를리즈 테론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여전사 퓨리오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 버즈 커트를
결심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 나는 무척 강인한
여전사가 되고 싶었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흩트릴까? 아니다. 버즈 커트가
옳다고 생각했다. 첫째, 캐릭터를 위해 둘째, 배역에 전념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꽤 괜찮은 두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전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를 밀고 완벽하다 생각했다. 매우 놀라운 순간이었다.
나는 이런 순간을 사랑한다.”



사를리즈 테론의 발언처럼 온라인도 버즈 커트 후일담으로 뜨겁다. 버즈
커트를 하게 된 이유, 그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과 쾌감을 에세이처럼 써내
려 가기도. “사람들은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긴다. 분
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예를 들어 연인과 결별을
했거나 섭식 장애를 겪고 있거나 암 투병 중이거나 또는 극단적인 페미니
스트라는 상징처럼 여긴다. 하지만 난 달랐다. 분명히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해 머리를 밀었다.” <뉴욕 타임스>와 <허핑턴 포스트> 등에 기고를 하는
칼럼니스트 케이트 프리드키스(Kate Fridkis)의 버즈 커트 후기는 심지어
숭고하게 들린다.
업계의 디자이너들은 버즈 커트 열풍을 어떻게 바라볼까? “젠더리스 트렌
드의 영향이 큽니다. 앤드로지니, 젠더 뉴트럴, 유니섹스도 그렇고 남녀 구
별이 모호한 시대가 된 거죠. 헤어스타일도 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성의
이분법이 불필요해진 것 같아요.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강한 자의식을 갖
고 있고요.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까요? 다소 중성적인 콘셉트
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버즈 커트에 도전하는 거죠.” 디바이수성 재현은
말한다. 이어 더제이의 영란이 덧붙였다. “비슷하게 얼굴을 매만진 성형 미
인들은 거리에 넘쳐나요. 하지만 삭발은 개성의 표출 그 자체죠. 일반인과
다른 굉장한 권력을 지닌 것처럼 당당해 보여요. 일단 버즈 커트는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어요. 잔상도 강렬해요. 저만 해도 머리를 짧
게 자른 여성을 보면 멋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버즈 커트도 깎는 방향이나 길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남성적인 스포츠머리 형태의 민머리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이
페이드와 로우 페이드를 섞어 얼굴형에 딱 맞는 길이를 찾아볼 것. 물론 이
목구비가 또렷하고 두상이 작고 동그랗게 생겨야 이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에 동참할 수 있다. 선뜻 나서기 두렵다면 옆머리만 클리퍼로 살짝 미는 방
법을 추천한다. 평상시에는 짧게 깎은 부분을 긴 머리로 덮어서 티 안 나게
속이는 거다. 그러다 옆머리를 넘기는 순간 파격적인 본색이 드러나는 걸
즐겨보시길.



과연 버즈 커트 신드롬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분하는 사회적 기준을 훼손
하는가? 그렇지 않다. 버즈 커트는 사회 운동이 아니다. 머리를 빡빡 미는
순간 여성미의 극치를 뽐내는 아이러니! 하나같이 길고 가는 목이 드러나
면서 고유한 매력은 강조된다. 이는 여성이 남성을 모방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아니라는 데 의미가 있다. 게다가 타인과 구별되는 경쟁력을 제공
하니 버즈 커트를 마다할 리 없다. 짜릿한 해방감은 덤이다. “머리를 빡빡
깎은 이후로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새로운 종류의 일
을 하게 됐고 개방적인 태도도 갖게 됐다.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삭발은 또 다른 나의 피부다.” 모델 크리스 고트샬크(Kris
Gottschalk)는 말한다. 머리를 길렀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