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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의 지금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6.01.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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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의 지금


한오 원장은 분명 인생의 정점에 있다.
맨몸으로 정상의 자리를 일궈낸 자부심 충만한
직업인과 미용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가 사이를 오가며.

에디터 윤태홍
포토그래퍼 한용만



지금 리모컨을 손에 쥐고 TV 채널을 아무 데나 돌려보자. 시선
을 옮길 때마다 한오 원장이 등장할지 모른다. 뷰티 쇼 <팔로우
미 6> <화장대를 부탁해 2> <진짜 뷰티>까지 접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백스테이지를 책임졌고 연이어
‘2016 헤어 인 트렌드’에서 헤어 아티스트 그룹 티온즈와 함께
퓨트로 르네상스 무대를 올렸으며 그 사이에 아모스프로페셔널
과 함께 트렌드 컬러까지 발표했다. 살롱 워크도 미루지 않았다.
성수대교 남단에 위치한 ‘에이치샵’의 경영을 살피고 아윤채 콘
셉트 살롱 ‘더세컨드’를 열어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교육
을 진행했다. 그 덕분인지 오픈 이후 더세컨드는 손님이 끊이지
않기로 강남권에서 유명하다. 인터뷰를 앞둔 이날도 <화장대를
부탁해 2>의 환상의 파트너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의 머
리를 직접 수습하던 참이었다.
한오 원장은 분명 지금 인생의 정점에 있다. 그런 특별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끼가 많았다. 영화
배우, 웨이터, 헤어 디자이너를 꿈꿀 정도로. 지금도 표현하고
싶은 게 되게 많다. 내 안의 꿈틀대는 끼를 탁 풀어놓기 쉽지 않
았다. 수줍음도 많고. 근데 방송을 계기로 뿜어내는 것 같다. 과
거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 있던 것들을. 평소 감동도 잘 받고, 울
기도 잘 울고. 웃기도 잘 웃고 그런 편이다. 그래서 천천히 영감
을 얻기보다는 순간 집중력이 뛰어난 것 같다. 아직 경력이 적거
나 감성이 부족한 후배들보다는 그 점이 뛰어난 것 같다. 그 동
안 내가 못해서 안 했던 게 아니니까.”
그러나 한오 원장도 매번 성공했던 건 아니다. 프로페셔널이 되
기까지 짊어져야 할 성공의 무게는 그 누구와도 별반 다르지 않
은 듯하다. “스물셋, 인턴 때 가장 힘들었다. 앞을 몰랐을 때니
까. 내가 영세민 출신이다. 당시 살던 방에 장롱을 가운데 두고
공간을 둘로 나눠 밤새 연습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턴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학원을 여러 곳 다니느라 돈도
많이 썼고. 그때 다니던 미용학원에서 나이 많은 형과 어쩌다 싸
움이 붙었다. 내가 머리를 잘하니까 밉보였겠지. 가족들도 쌈박
질이나 하고 다닌다고 등한시하고 유지승 미용실도 퇴사할 수밖
에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참 암담했다.”
어차피 한오 원장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타입이 아
니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왔다. 남보다 일찍 스
물넷에 디자이너로 승격해 논현동에 살롱을 열었다 접고 스물일
곱부터 다시 청담동 뷰티 살롱을 누빈다. 조성아 뷰티폼, 라뷰티
코아, W퓨리피, 레드카펫까지. 그러다 지금의 에이치샵을 열었
고 더세컨드까지 운영한다. 확실히 화려한 디자이너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장 내일이면 뭐가 될 것 같고, 내년이면 뭐가 될 것 같은 생각
을 가진 후배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끼도 보이고. 그런 후배
들은 한곳에 오래 있지 않더라. 고생을 해봐야 스스로 깨우치는
게 있다. 어릴 때는 성장하면서 속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가끔 직원들한테도 얘기한다. ‘덜 논 것 같으면 놀아라.
낮에 살롱에 와서 힘들더라도 밤에 실컷 놀아’라고. 방황도 필요
하다. 재능은 있는데 말 안 듣는 후배들을 보면서 ‘내 뜻대로 모
든 게 움직인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라고 체념할 때도 있다. 그
래서 내 젊은 시절과 닮은 후배들은 그냥 둔다. 집중할 때 되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조금 전까지 유쾌한 얼굴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오 원장은 맨
몸으로 정상의 자리를 일궈낸 자부심 충만한 직업인과 미용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가 사이를 오갔
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한오 원장이 있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를 초월한 인물처럼 다가왔다.
“프라이드가 있느냐 없느냐가 일류와 삼류의 차이인 것 같다. 또
한 무대에 올랐을 때 자연인이 아닌 스태프 생활부터 수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파 디자이너로서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디
자이너들이나 스태프들이 착각하는 게 바로 그거다. 본연의 자
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교정된 자아
를 고객에게 보여야 한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한오 원장은 경영인과 미용인의 경계에서 안
착할 어느 지점을 향할 때다. 그러나 한오 원장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언제까지 머리를 할
거냐고. 옛날에는 미용의 흐름이 빨리 손 떼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원장 타이틀이 더 좋다. 대표라는 직함으로
부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표는 뭐 뻔하다. 나이 먹으면 대표가
되는 거지. 사실 나처럼 압구정동에서 혼자서 살롱을 두 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교수가 되고 싶다. 혼자 유학도 갈 생각이다.
나중에 큰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미용의 사회적 인식이 격
상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세상의 엄격한 잣대에 속하고 싶
다. 일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고. 뭐랄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용에 대한 인식을 ‘언제까지 미용할 거냐’가 아니라 시간이 흘
러 나이 들수록 진가를 보이는 멋진 길을 열고 싶다.”
한오 원장은 변화가 두렵지 않다. 어디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관습적인 인생은 지루하다. 위험을 조금만 감수하면 기회는 계
속 온다고, 찬란한 꿈을 꾸지 않는 건 나태한 거라고 말했다 .
“가끔 리셋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더세컨드는 다시 시작하자
는 뜻도 품고 있다. 나를 어디에 가둬두고 생각하면 스스로 발전
하지 않더라. 내가 각오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
이나 태도가 사람의 지위를 만들어버리지 않나. 나름 개인 살롱
도 오픈하고 논현동에서 매출도 높았는데 이런 배경을 하나도
밝히지 않고 조성아 뷰티폼에 찾아갔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먼저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는 확실히 다르다. 그
래서 나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경계심 가득한 시선에 맞춰 무
조건 열심히 했다. 끊임없이 가고 싶은 길이나 지점이 있으면 닿
으려 애쓴다. 한오로 존재할 때는 한오를 의식을 해야 하고. 작
은 관심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로.”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헤어 디자이너는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창조하기 때문에 한오 원장은 이 세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
다. 그래서 타인에게 기억되는 게 아니라 항상 여기에 존재할 거
다. “누구를 만나도 이 직업처럼 고객이 행복한 기분으로 찾아와
서 더 행복해져서 돌아가는 경우는 없더라. 거기다 스킨십까지
있고. 비주얼도 확 띄게 좋아지고. 무엇보다 헤어는 눈 앞에서
바로 반응을 보이니까. 미용인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직업이
다. 그래서 내 삶은 매 순간 감동이다."

"가끔 리셋하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살롱 ‘더세컨드’의 의미도 다시 시작하자는 뜻도 품고 있다.
나를 어디에 가둬두고 생각하면 스스로 발전하지 않더라.
주변의 시선이나 태도가 사람의 지위를 만들어버리지 않나.
그래서 나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
끊임 없이 가고 싶은 길이나 지점이 있으면 닿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