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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살롱의 그레이드를 높이다, 더민헤어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7.10.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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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살롱의 그레이드를 높이다, 더민헤어
부산의 부촌을 중심으로 성장한 더민헤어는 포화된 살롱 환경 속에서도 미용인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성공을 위한 기술, 경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경화 원장과 자매들이 있다.
에디터 최은혜
포토그래퍼 사재성


<더민헤어, THE MINHAIR> 설립 31년. 현재 5개 지점을 직영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각 매장에 10년 이상 근무 경력의 점장을 중심으로 관리가 이루 어지고 있다. 30년 전통답게 지점마다 10~18년 근무한 디자이너 가 많으며 인재 이탈이 거의 없다. 전 지점 직원수는 100여 명. 5성급 호텔과 고급 고층 아파트가 많은 부산의 부촌 중 가장 화려 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마린시티에 위치한 본점은 프라이빗한 VIP룸이 있는 약 100평 규모로 더민헤어의 가장 큰 지점이다. 매 주 플라워 데커레이션으로 편안함과 휴식의 공간을 연출하고 있 는 것도 매력이다. 이외에도 문화, 쇼핑센터, 종합전시장, 고급 고층 아파트까지 결합된 부산 신중심 도시인 센텀시티에 위치한 센텀시티점, 센텀트럼프점, 벡스코점 3지점과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점은 젊은 분위기의 공간 연출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더민헤어 아카데미> 자신의 자질, 역량, 가능성을 바탕으로 장래의 목표를 본인 스스 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인재 양성의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있 다. 2014년부터 주5일 인턴 근무제로 바꾸면서 주 1회 교육, 월 1회 테스트로 구성된 체계적인 기초 3단계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커리큘럼과 대표원장의 직강 프로그램까지 차별화된 기술과 훈련으로 실력 향상은 물론 매주 교육 후 봉사활동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의 중요함과 재능기부를 통한 보람과 성취 감을 알게 함으로써 전문성과 미용의 가치까지 갖추도록 트레이닝 하고 있다.

<이경화 대표의 미용인생>
미용계 입문과 계기
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단발머리만 해야 했던 시기라서 긴 헤어스타일, 웨이브 헤어,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어 느 날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큰언니와 광복동의 당시 유명한 미용실 에 따라 갔는데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헤어 디자이너의 화려한 모습과 드라이기로 마술 같은 웨이브 스타일을 연출하는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대학을 안 가는 친구들도 많았고 가더라도 전문대를 입 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미용사가 되고 원장이 되고 싶어서 졸업 후 인 19세에 언니와 갔던 광복동 미용실에 취업했다. 그 당시 특별한 미용전문학원도 없어서 그곳에서 생활하며 궂은일까지 해야 했지만 성공 하고 싶다는 꿈과 목표를 위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였다.
힘들었던 시기
24세에 혼자 미용실을 오픈했을 때. 결혼한 언니가 인턴 겸 계산대까지 맡아주었다. 당시 오픈 3개월부터 입소문으로 고객이 밀 려왔지만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고객 불평이 이어졌고 지나친 업무와 피 곤함으로 언니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여기에 입·퇴사를 반복하는 인턴 들 때문에 좌절감까지 들었다. 그러다 오래 근무한 톱 디자이너와 직원들이 불만을 품고 집단 퇴사하는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원장 중심의 고 객 유치로 인해 디자이너들의 성장이 어려워지면서 갈등과 인재 이탈 현상이 반복됐고 영업 운영 관리까지 다 잘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으로 전문적인 운영 관리와 체계적인 교육에 대해 고민했다.
극복
기술만 좋으면 미용실 사업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어 려운 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각종 미용 세미나를 참석하며 귀를 열고, 눈을 뜨는 연습을 시작했다. 내 기술만 최고다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기술 세미나, 특히 해외 기술 세미나에는 빠지지 않고 무조건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영업 운영 관리를 언니에 게 맡겼고 나는 오로지 기술 개발과 교육에만 힘을 쏟았다. 채용, 인력 관리, 운영관리 모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언니(이경숙 사장)와 플로리 스트인 동생(이성미 이사)이 도맡았고 각자의 일에 책임감 있게 잘해 나가면서 안정화됐다.

먼저 웨이팅 시간이 40분에서 2시간이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 예약제로 변경했다(아마도 부산에서 최초로 예약제를 시행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보통 원장님들이 카운터에서 계산만 많이하던 시기 였지만 예약과 계산, 고객 상담을 맡을 매니저를 배치했다. 또 운영의 매뉴얼 표준화를 위해 회의를 진행했고 직원들과 매달 업무 상담과 개 개인의 상담 시간을 만들었다. 외국에서 배운 교육방식으로 영업 후 기 술교육도 실행했더니 인재 이탈이 줄어들었고 입사하고자 하는 인턴들 이 몰려 입사 대기자까지 생겼다.
최고의 시기
부촌이었던 남천점에서 유명해져서 부산에서 가장 머리 잘 하는 미용실로 인정받았고, 남다른 기술력으로 미스 부산 지정 미용실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서면에 생기면서 더민헤어 서면 2호점을 오픈했고 지점 확장이 시작됐다. 기술과 브랜드 퀄리티를 위해 입사하고 싶어 하는 인턴들이 늘었고 남천동 본 점을 4층 규모의 사옥으로 이전 확장했다. 지점마다 상가를 구입해 미용실을 오픈할 수 있는 규모와 매출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의 위치 공격적 매장 수와 독식을 하는 성장보다 미용의 가치를 알 고 직원들과 함께 가치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는 더민헤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30년 브랜드답게 고객의 협력과 부산의 대표 헤어 살롱으로 사랑받기 위해 재능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더민헤어 이경화 대표원장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해운대에 위치한 마린시티 본점이었다. 높은 천장 에 생화로 장식된 내부, 유명 일본 화가인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 이 곳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경화 원장 전용 룸은 살롱 안의 또 다른 살롱이 있는 것처럼 고풍스럽고, 차분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이렇 게 더민헤어는 고급스러움으로 그만의 색을 입히며 롱런해오고 있었다.

부산에서 ‘더민헤어’는 어떤 이미지인가 부촌인 해운대 쪽에만 4개 지점이 밀집되어 있을 만큼 고급 헤어살롱으 로 알려져 있다. 86년에 처음 남천동에 오픈했으니 벌써 30년이다. 20 대에 부촌에 ‘민머리방’이라는 이름으로 작게 오픈했다. 그 당시 또래였 고 지금은 엄마가 된 단골 고객들의 말을 빌리자면 ‘머리 잘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후 민머리방에서 민헤어, 민헤어&메이크업, 더민헤어로 상호가 변화해왔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세 자매가 지금까지 함께 운영 해오고 있고 친오빠가 시스템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민톡이라는 매출 관리 프로그램, 앱 운영)

예전부터 유명한 살롱이었다고 들었다. 이유는 30년 전부터 우리만의 기술력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커트는 일반 숍보다 비싼 편이었고 예약제로 운영했다. 웨이팅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미국 레드켄 회사를 방문했는데 내추럴한 겉말음 과 부드러운 에어 커트를 보는 순간 “아! 저걸 해야겠다”고 생 각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겉말음 스타일을 무척 딱딱하게 했는데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비자도 받기 힘든 시절 미국 폴미첼에서 교육을 받고 와서 고객들에게 색다른 기술을 선보 일 수 있었고 그것이 고객들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에서는 시크하면서 내추럴하고, 클래식하면서 모던 한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색을 넣어 지나가다가 봐도 “우리 머리인데?”라는 느낌이 들도록했다. 무엇보다 다른 매장과 다르게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또 부산이 습하다 보니 스타일이 무너지기 쉬운 환경도 고려해시술 했다. 특이한 기술도 여럿 갖고 있는데 특히 나만의 뿌리펌 기법은 거의 15년 동안 인기를 끌었다. 요즘은 흔하지만 과거에는 흔치 않는 기술이었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커트만으로도 볼륨 이 되니까 하지 않는다.

이렇듯 나는 미국의 미용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 유럽이나 국내에서는 과장된 볼륨 스타일이 많았지만 미국은 내가 바라던 내추럴한 스타일이 많았다. 나는 남들과 다른 걸 좋아한다. 같은 보브라도 다른 느낌이 없을까 연구한다. 기술, 경영 등과 관련해 세미나도 많이 다니고, 제자들에게도 배운다.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기술이다. 더민헤어만의 세련된 기술력과 ‘사람이 미래다’라는 철학으로 한 사람 중심 경영,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 걸어온 직원들의 역할이 크 다. 또 하나 더민헤어를 긴 세월 사랑해주시는 고객님 덕분이다.

현재 실무는 어느 정도 하는지 오전 10반부터 오후 5시. 주 4회 일하고 그중 1회는 교육, 월 1회 교육을 한다. 오늘도 오전에 교육이 있어서 너무 피 곤하다.(웃음) 대부분 고정 고객이고 평균 20년 된 고객들이 다. 같이 늙어가는 가족 같은 고객들이다. 신규 고객 3~5 는 입소문이나 소개 고객이다. 고객의 임신했던 자녀가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온다. 스타일 패키지처럼 추가나 옵션 이 없이 고객 개개인에게 맞게 시술하고 있는데 옵션이나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 상류층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또 연세가 많고 건강을 중요시하는 고객이 많다.


경영을 담당하는 이성미 이사

살롱만의 문화가 있다면 신입 스타일리스트로 성장하기 위해 선배와 일대일 멘토를 만들어 기술적 공유와 문제점을 돕고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 한다. 더민헤어만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직원들 중심으로 선 후배 관계가 연결되면서 서로 업무적 기술적 계발에 도움을주는 것이다. 미용인의 가치를 만드는 재능기부 외 대외적으로 더 민헤어를 알리는 그룹도 만드는 등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 다.

살롱 교육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신입 직원 입사 시 인턴장 중심으로 기본 업무 교육과 기초 기술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며, 지점 자체 기술 담당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구성해 실무에 필요한 기술 훈련까지 하고 있다. 기초 샴푸 교육부 터 더민헤어만의 차별화된 기술을 표준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 의 개성적인 기술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주체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주 3회, 기초 3단계, 월 1회 테스트로 구성해 자기개 발을 위한 트레이닝을 시킨다.

더민헤어는 자체 성장을 추구하므 로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 생각한다. ‘성장시키고 함께 가자’는 주의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평균 2년이 걸린다. 마지막 코스는 6 개월 정도 내 곁에서 서브하면서 기술을 보고 테스트를 받는다. 특히 스피치(소통)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제품의 설명, 고객의 질문 에 답하기, 말을 뚜렷하게 잘 전달하는지 등 실제 디자이너가 됐을 때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사람인가를 본다. 3번 떨어진 직원도 있다. 지금은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웃음).

살롱이 부산에 있어서 교육이나 교류에 힘든 점은 없는지 교육이 서울 중심으로 편중되다 보니 교육의 다양성과 선택이 쉽지 않고 교육에 참석하고 싶어도 거리가 멀어 시간을 내기 어렵다. 제 품 회사를 통해 다양한 세미나에 참석하지만 대형 브랜드와 대형 체인점 중심의 교육과 행사로 인해 남의 잔치에 구경꾼이 된 듯한 때도 있는데 이는 발전이나 교류에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이성미 이사의 경우 서울에서 진행되는 윤영화 교수의 인문학 교육을 통해 많은 미용 브랜드의 대표님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마린시티 본점에 있는 이경화 원장의 시술 공간

부산에서 살롱을 운영하는 장점이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역에서 최고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1차 목표이므로 서울보다 경쟁 업체가 많지 않은 점이 아닐까.
해운대 중심으로 살롱을 운영하는 이유는 남천동은 부산의 부촌이었다. 지금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생기면 서 그 부촌이 해운대로 이동했다. 부촌의 고객층이 많다 보니 자연 스레 해운대로 옮겨왔다.
봉사활동도 꾸준히 한다고 들었다 5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휴무에 진행되다보니 빠지는 인 원도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모든 직원이 참여한다. 처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자’라는 생각으 로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기술과 재능의 가치를 알아가 기도 한다. 물론 나눔을 통해 보람과 행복도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 더민헤어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얼마든지 더 오픈할 생각은 있지만 문어발식으로 늘리지는 않을 것 이다. 광복동에도 오픈했다가 단가가 안 맞아서 접었고 해운대 한곳 도 오픈했다가 접었다. 매장을 늘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 제대로 완성 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 이다. 저가 브랜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어서 확장해보자는 이야 기도 나왔지만 내부에 서 이대로 성장해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트럼프점은 직원들이 투자한 1호점이다. 벡스코, 센텀시티점까지 모두 직원들의 투자가 들어간 직영 매장이다. 젊은 원장님들이 생기면서 새로운 철학과 관점이 생겼다. 과거에는 우리를 숨기려고 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것을 자꾸 시도하고 우리를 보여주고 싶다. 젊은 원장들을 보며 과거 세대인 우리도 많이 달라졌 다. 더민헤어를 살리는 이들이 존경스럽고 기특하다.
더민헤어가 ‘이런 브랜드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미용인들에게는 미용인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 브랜드만으로도 자부심이 높아지는 함께 일하고 싶은 브랜드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객에게는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성을 느끼는 브랜드, 부산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표 헤어살롱 브랜드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