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기
창조자의 손, 피터 그레이 The hands of the creator, Peter Grey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7.11.22 1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 d i t o r i a l D i r e c t o r , 피 터 그 레 이
전) Vidal Sassoon International Editorial Director, P&G International Editorial Consultant, Aveda International Editorial Consultant, Moroccan Oil International Editorial Consultant.
현) Editorial director(Home agency) Italian, American British Vogue, Harper’s Bazaar, Numero 헤어 스타일리스트. 
Armani, Yves Saint Laurent, Givenchy, Lanvin, Hugo Boss, Lancome, Moschino, Hermes, Ungaro, Paul Smith 쇼 디렉팅.
 
유년 시절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보냈다. 현재 당신의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짐바브웨에서 나고 자라면서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또한 삶의 경험이 물질적 소유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풍부한 상식과 학식을 갖춘 부모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훌륭한 분들이다.

비달사순에서 티처로 당신을 처음 만났다. 사순 이전의 미용사로서의 모습은 어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기숙학교 시절 학교 규정에 맞는 머리를 위해 친구들의 머리를 잘라주던 경험이 미용사로서의 첫 시작이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매주 토요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차지한 Hans Weinstraud의 살롱에서 샴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년 반 동안 그와 살롱 선배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창조 과정에 있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즈음 비달사순의 책을 접하고 2주 후 바로 런던으로 떠났지만 비달사순으로의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잠시 토니앤가이에서 근무하다 코벤트리 가든에 있는 Cazaly Co살롱에서 3년간 그레고리 카잘리와 데이비드 애덤스 밑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 후 살롱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게 됐는데 그때 그레고리가 사순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무래도 사순 시절 당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30대의 당신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성장시키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사순에서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사순 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진행하는 곳이 맨체스터에 있어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6개월의 재교육 기간을 3개월 반 만에 끝냈는데 그건 훌륭한 가르침과 함께 성공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기간 동안 리차드 애시포스를 비롯해 재능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때 인연으로 25년이 지난 현재, 리차드와 노이스 쇼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살롱워크만 하는 시간은 알 수 없는 불안과 좌절감을 느끼게 했는데, 마침 그 즈음 비달사순 티처스 트레이닝(비달사순 교육자 과정) 기회를 갖게 됐고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교육자로서 다시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수년간 비달사순에서 9개월 코스의 ‘비기너 디플로마 코스’를 맡아 진행했다. 훗날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길을 걷고 있는 졸업생들이 나를 기억하고 지지해주는 것을 보면 그 시기켰 얼마나 열정적으로 함께 했는지를 상기할 수 있다.
 
세션 헤어드레서로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다.
1980년대 후반 내가 있던 맨체스터는 음악적 부흥기였고 그 시절 나는 많은 밴드와 그들의 사진 및 비디오 촬영에 즐겁게 참여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몇몇 패션 포토그래퍼를 알게 됐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세션 헤어드레서인 유진 슐레이먼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사순을 통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육을 진행했는데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시기였다. 운 좋게도 나는 패션쇼와 클래스를 통해 한국, 일본, 중국 등을 수차례 갈 수 있었고, P&G가 진행했던 사순 이미지 작업, 광고 촬영, 패션위크를 위해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기회를 가졌다. 10년 전에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 제품 회사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포토그래퍼와 잡지, 광고 분야에서 일하게 됐고 지난 5년 동안 리차드 애시포스, X-pression과 함께 미용인들을 위해 독립적으로 노이즈 쇼를 발전시켰다. 노이즈의 취지는 상업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열정 있는 전 세계 미용인들이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지향한다. 나는 노이즈 쇼와 같이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표출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저버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인생은 정말이지 짧고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마사 혼다, 타카 시바타, 샤론 브레인 등의 다양한 헤어드레서와 공동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커트&스타일링 클래스의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들을 꾸준히 발전시켜 더 나은 콘텐츠를 전 세계 미용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당신과 작업해본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고자 한다. 피터 그레이의 추진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비달사순과 Horst를 포함해 부모님과 내 삶의 모든 멘토들은 공통적으로 ‛Live to work’라는 마인드가 삶의 바탕에 깔려있었다.(‘Live to work work to live 네 삶을 위해 일을 할 것인가, 먹고살기 위해 일할 것인가’) 바로 이 생각이 내가 접하는 모든 일에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또한 일에 대해 열정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진 역할과 범위에서 함께 하는 이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능력을 성장시켜줄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
 
‘PG Zoo’는 무엇인가?
하하. 그건 농담 식으로 나온 얘기인데, 당신(김세호)은 함께 일해봐서 알겠지만 어떤 쇼 준비를 하면서 정말 긴 시간까지 먹고 마시며 같은 공간에서 집중력 있게 일하는 그 모습이 흡사 일에 굶주린 야생동물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마디로 한 울타리 안 창조에 굶주린 아티스트들이랄까?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팀은 우리가 속한 문화에 새로운 방향과 아이디어를 제시해준다. PG Zoo팀은 사진작가,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 아티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각각의 개별 프로젝트에 특화된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 이름을 내세우기보다는 PG Zoo라는 팀의 형태로 하는 것이다.

환경 운동가로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내가 함께 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고자 항상 노력하며, 아이디어에 대한 협업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 환경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의 자율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사람들 간의 차별 등 많은 부분이 포함된다. 현재 아베다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 지구생태계에 대한 지속 가능한 접근 없이는 다른 문제들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피터 그레이는 헤어쇼를 진행함에 있어 환경 보존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헤어피스의 소재와 쇼의 형식에 있어 많은 부분을 신경 쓴다.)

한국의 미용인들에게 한마디.
한국에서는 사순과 모로칸 오일 쇼를 비롯해 다양한 세미나와 클래스, 패션쇼 및 잡지 화보를 진행해왔다. 광고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잘 알려진 이혜영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했고 그녀를 통해 한국의 관습과 전통을 접했다. 최근에는 20년 전 비달사순 디플로마 학생이었고 현재는 헤어드레서이자 사진가인 김세호와 협업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 미용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유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한국의 미용인들과 만나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
 
글/사진(피터그레이 프로필과 손 사진) 김세호 에디터 장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