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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헤어 조현의 고전머리 도전기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8.05.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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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고전머리 부문 금상 수상자 조현 원장. 그가 고전머리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에디터 김미소

포토그래퍼 사재성





2018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고전공모전(창작트레머리) 부문 금상을 축하드립니다. 고전머리에 도전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현재 4개의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적인 미를 살린 저희만의 개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전머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박경화 고전머리 기술강사님에게 전수받았고요. 이번에 수상한 작품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트레머리로 높고 화려하게 쌓아 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가체의 사치가 심해지면서 1788년 금지령이 내려졌고 그 이후로 트레머리의 풍습이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현재까지도 상당 부분 고증이 되지 않아 창작으로 재창조한 작품입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고전머리에 사용하는 가체는 인모가 아니기 때문에 한번 엉키면 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가체를 땋을 때는 한 번에 정확하게 땋아야 합니다.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죠. 머리에 고정할 때도 탄탄하게 고정하면서 전체적인 균형도 맞아야 하는데 가체가 워낙 무겁다 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광주지역에서 4개의 살롱을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리안헤어 계림동 홈플러스점과 매곡점, 430헤어 일곡점과 수완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 지 올해로 12년째가 됐네요. 군 제대 후 미용을 시작해 호남대학교 뷰티미용학과와 미용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2013년 11월 4일 첫 살롱을 오픈하면서 경영을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는 경험을 더 쌓고 살롱을 오픈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준비했기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하셨나요?
학부 시절부터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군 제대 후 호남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미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늦은 편이었죠.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미용실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호남대학교 미용교육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나갔습니다. 미용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는 디자이너, 강사, 프랜차이즈 미용실 관리직과 본부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 한쪽에 소홀할 수 있는데 어땠나요?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생활을 했지만 학생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학교 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광주에서 꽤 유명한 미용실을 운영하셨는데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어요. 제 노력으로 쌓은 실력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미용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나요?
그렇습니다. 군 제대 후 방황하던 제게 어머니가 미용을 해보라고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그 품이 많이 그리웠기 때문에 미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여가시간 없이 일만 해야 하는 미용이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제안을 받고 거의 한 달을 고민했죠. 그러다가 내가 원장이 되면 미용실 근무 환경도 개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호남대학교 뷰티미용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살롱의 근무 환경이 궁금하네요.
리안헤어는 8시간, 430헤어는 7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요일 휴무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연장근무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한 번씩 원칙을 깨다 보면 서로에게 희생을 원하게 되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회사처럼 운영해 직원들의 여가시간만큼은 보장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점이 마음에 들어 입사한 디자이너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4개의 매장을 혼자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많은 어려움이 있죠. 미용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보다 직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입니다. 많이 고심하고 회의한 끝에 제 이름을 걸고 오픈한 미용실이었지만 오픈하는 순간까지도 손님이 한 명도 없을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첫 오픈 날 매장 문을 열기도 전에 10명 이상의 고객들이 대기하고 있었어요. 가장 마음고생이 컸지만 동시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죠.

멘토가 있다면?
단연 어머니입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명성이 부담도 되고 무겁게 느껴졌지만 훌륭한 어머니 덕분에 알게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늘 솔직하고 변함없이 고객들과 소통하고 서비스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십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100호점까지 오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스타일을 연구하며 실력과 경험을 쌓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대표가 되어 아직 부족한 면도 많지만 항상 배우면서 실천하는 대표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