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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신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프리티스킨' 정병섭 대표
  • 김도현 에디터
  • 승인 2019.12.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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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연한 기회의 연속이었다.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고,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고, 명동에 매장을 내고, 화장품 브랜드를 만든 일이 다 그랬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애초 그가 계획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이를 '운명'이라 했다.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 정병섭 대표의 이야기다.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 정병섭 대표
남산타워를 배경 삼아 명동 거리에 선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 정병섭 대표

끝물 명동에서 나홀로 사업 확대
볼 곳 많고 할 것 많은 서울이라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서울을 여행하는 이라면 ' 명동'을 빼놓아선 곤란하다. 한때 '문화의 거리' 혹은 '금융의 거리'로 불렸던 명동 은 시대가 바뀌어 이제 서울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자 '쇼핑의 거리'가 됐다. 골목골목까지 즐비한 로드숍이 주야장천 불을 밝혀 쇼핑객을 유혹하고 거리 엔 휩쓸릴 듯 인파가 넘친다. 비록 오랜 경기 침체와 상권 분화로 인해 예전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명동은 명동이다.

 

명동이 세계적인 쇼핑 명소로 거듭난 건 다름 아닌 '화장품' 덕이었다. 이른바 'K-뷰티'가 뜨기 시작하면서 화장품 쇼핑을 위해 일본인이, 중국인이 명동으로 몰려들었다. 명동의 화장품 매장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임대료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래도 화장품 회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상권 규모임에도 한창 전성기에는 150개가 족히 넘는 화장품 매장이 명동에서 성업했다.

 

물론 이 또한 몇 년 전까지의 얘기다. 화장품 상권으로서 명동의 매력은 퇴색한 지 오래다. 관광객 수는 이슈가 생길 때마다 출렁거리길 거듭했고 그나마 오는 관광객들도 더 이상 명동에서 화장품을 사지 않는다. 매출은 떨어졌건만 한번 오른 임대료는 좀체 내려갈 줄 모른다. 버티다 못한 화장품 매장이 하나둘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를 신발 멀티숍이, 식료품 할인점이 채웠거나 공실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브랜드의 매장들이 슬금슬금 없어지던 최근 몇 년 새 반대로 계속해서 매장이 늘어난 브랜드가 있다. '프리티스킨'이 그 주인공으로, 어느새 명동 상권 내 매장 수가 7개다. 프리티스킨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프리티스킨 매장 제품
프리티스킨 매장 제품

소중한 꿈을 지키고 싶었다
프리티스킨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리티스킨인터내셔 널 정병섭 대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웃음까지 지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원래 그는 명동에서 다른 브랜드숍 매장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명동 특성상 일반적인 가맹점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저 본사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매장주일 뿐이었다. 그런데 명동 상황이 악화되자 본사에서는 매장을 접길 원했다.

 

그 역시 다급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 브랜드, 저 브랜드로 바꾸면서까지 버텼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급기야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어 팔아 보자 결심했다. 그렇게 2014년 '프리티스킨'이 탄생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브랜드 숍의 본사가 계약 갱신을 주저하면 그는 매장 간판을 '프리티스킨'으로 바꿔 달았다. 이런 식으로 매장이 7개까지 늘었다.

 

"과거 명동에서의 가공할 매출이 전설처럼 업계에, 유통가에 회자됐었잖아요. 당시 저는 광주에서 조그맣게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소매점주들 에게도 명동이 선망의 대상이었죠. 저 역시 언젠가는 꼭 명동에 매장을 내리라 늘 생각했습니다." 명동은 그에게 꿈이었다. 어렵게 이룬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결과가 어찌 됐든 명동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다.

 

근성과 인내로 버티니 '언젠간' 이뤄졌다
정병섭 대표는 2001년 나드리화장품에 입사하면서 화장품업계에 몸담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딱히 화장품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취업을 하고 보니 화장품 회사였을 뿐이다. 당시는 이른바 '전문점'이 화장품 유통의 대세였다. 그가 맡은 일 또한 전문점을 상대하는 영업 업무였다.

 

그렇게 전문점을 누비면서 직접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고픈 꿈이 생겼다. 전문점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인터넷과 브랜드숍이 그 자리를 메워가던 즈음 그는 소망하던 꿈을 이뤘다. 광주광역시에 작은 화장품 매장을 낸 것이다. 장사는 순탄치 않았다. 주변에 경쟁 상대는 많고 그의 매장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리 밑에 있었다.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그는 과감한 할인 정책을 썼다.

 

주변의 견제는 심했고 그 역시 마음이 불편했지만 가만있다간 꿈을 접을 판이었 다. 버티고 버티며 매장 운영을 본 궤도에 올렸고 다른 지역으로 매장을 늘리는 데도 성공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인내'는 그의 타고난 기질이었다.

 

명동에 와서도 사업이 술술 풀린 건 아니었다. 그가 첫 매장을 냈을 땐 이미 명동 특수가 끝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까지 터졌다.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고 매출은 80%까지 떨어졌다. 그의 선택은 역시나 인내였다.

 

"사실 제가 명동의 전성기를 직접 겪은 것도 아니어서 매출이 떨어져도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마냥 기쁘기만 했죠. 그래도 임대료 내겠다고 당시까지 유지하고 있던 지방 매장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여기서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었죠."

 

메르스 사태가 잦아든 후에도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을 땐 메르스 때보다 더한 위기였고 지금도 그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정 대표는 매장을 늘렸고 자체 브랜드 사업까지 벌였다.

 

"주변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렸습니다. 심지어 명동에서 제일 먼저 폭삭 망해 나 갈 사람이 저라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찌 됐든 가장 먼저 망하진 않았으니 성공한 거 아닌가요?" 정 대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리티스킨을 론칭한 것도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의 '언젠가'에 포함돼 있었던 꿈이었다.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 정병섭 대표
프리티스킨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정병섭 대표

꿈의 종착역에 달콤한 결실이
프리티스킨은 정 대표가 매일 명동에서 숱하게 접하는 전 세계 고객들을 관찰하고 소통하며 얻은 깨달음과 노하우를 녹인 브랜드다. 그들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호와 취향이 어떤지를 면밀하게 파악해 반영했고 피부 데이터를 분석해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성분만 활용해 제품을 만들었다.

 

정 대표가 비관적인 명동 상황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매장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것도 해외 고객들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국내 마케팅을 본격화하고 명동을 벗어나 해외시장 진출에도 팔을 걷어붙이며 일본,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오만 등 20여 개국에 직간접 수출망을 확보했다.

 

"지난해까진 명동 매장에서 올린 매출이 다였어요. 온라인도, 정식 수출 매출도 아예 없었죠. 예상대로 버거웠고 매 순간이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떨 어질 곳이 있을까요? 국내 마케팅을 시작했고 해외시장 곳곳에 수출 네트워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셈이죠."

 

무엇보다 고무적인 점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과다. 그는 지난 11월 초 중대 사안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전 세계 최대 규모 도소매 시장인 이우시장이 있는 이우시가 목적지로, 중국 국영기업인 이우상성그룹 및 온라인 유통업체인 상해진운기업과 3자 계약을 체결하기 위함이었다.

 

계약은 조용한 회의실이 아닌 성대한 행사장에서 이뤄졌다.이우상성그룹은 중국 정부 및 알리바바그룹과의 전략적 협의를 통해 이른바 'IC몰'을 중국 전역에 1000개 이상 개설한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연계해 상해진운그룹은 티몰, 카올라 등 중국의 주요 온라인 플랫폼 에 브랜드관 입점을 진행 중이다. 프리티스킨이 이들 사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간 많은 국내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들고나기를 거듭했는데 저는 일단 국 내 기반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명동 매장을 늘리고 유지한 것도, 국내 마케팅 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죠.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그동안 때를 기다리며 아끼고 아꼈는데 두 회사의 사업 비전과 목표가 저희와 일치해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20년에 가까운 정 대표의 화장품업(業) 역사는 녹록지 않았지만 근성과 인내로 버티며 따낸 결실은 달콤할 듯하다.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은 11월 2일 중국 이우시의 보세창고에서 이우상성그룹 및 상해진운기업과 한중 합작 계약식을 가졌다.
프리티스킨인터내셔널은 11월 2일 중국 이우시의 보세창고에서 이우상성그룹 및 상해진운기업과 한중 합작 계약식을 가졌다.

에디터 김도현(cos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사재성(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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