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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해 - 영화 리뷰 '케이크메이커' The Cakemaker
  • 성재희
  • 승인 2020.03.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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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이크메이커' The Cakemaker 포스터

상실과 슬픔의 치유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은 상실과 회복의 연속입니다. 많은 것을 잃었다가 또 채우면서 삶은 조금씩 성장하죠.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 이 상실감만큼은 강물 같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습니다. 사진 한 장, 노래 한 소절, 비슷한 말투와 몸짓, 체취만 느껴도 그와의 추억이 빵처럼 부풀어 올라 삶을 짓누르죠. 남겨진 이들에게 산다는 건, 그의 부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겁니다.

하지만 떠나간 이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은 가족의 삶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합니다. 슬픔과 침묵만이 그를 추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깨진 유리처럼 뒤틀린 삶의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이스라엘 출신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감독의 <케이크메이커>(2017)입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장편 데뷔작인데요. 얼핏 제목과 사랑스러운 느낌의 포스터만 보면 맛있는 음식이 등장하는 힐링 무비인가 싶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진중한 분위기가 러닝타임 내내 이어집니다.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유해가는 과정을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편, 각각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인 독일과 이스라엘의 민감한 관계, 음식에 따른 문화와 관습의 차이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죠.

그래서 유대교가 음식에 적용하는 엄격한 종교적 기준인 ‘코셔(Kosher)’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요구합니다. 이 까다로운 율법은 한낱 개인이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거대한 문화적 장벽이란 점에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흥미진진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는 데 무려 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죠. 공들여 치대고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좋은 맛을 내는 반죽처럼,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상실과 허무를 이겨낸 사랑을 완성도 높은 영상으로 세상이란 식탁 위에 내놓았습니다.

인생은 케이크처럼 

토마스와 오렌. 두 사람은 파티시에와 손님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업무차 독일 방문이 잦은 오렌이 토마스가 운영하는 카페를 방앗간처럼 드나들면서 점차 친근해졌죠. 그리고 두 남자는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됐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말입니다.

이미 가정이 있는 오렌이기에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기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라니. 토마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오렌이 교통사고로 이스라엘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토마스의 세상은 그대로 멈춰버립니다. 견디기 힘든 상실감은 결국 토마스를 이스라엘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정처없이 오렌의 아스라한 자취를 찾아다니던 중, 그의 아내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를 슬며시 기웃거립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주방 보조로 그녀와 함께 일할 기회까지 잡게 되죠. 연인을 잃은 남자와 남편을 잃은 여자.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비밀을 뒤춤에 감춘 채, 차츰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토마스는 자신이 오렌의 연인임을 숨기고, 아나트는 남편에게 애인이 있음을 알고 있었단 사실을 말하지 않죠. 더구나 독일인 남자와 유대인 여자의 미묘한 관계를 축복할 사람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 기막힌 사랑의 굴레가 필연적으로 아픔을 동반하게 될 거라는 걸 그들도, 지켜보는 우리도 잘 알고 있죠.

당연한 결과처럼 두 사람은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겪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아나트가 독일로 토마스를 찾아가며 열린 결말로 이어지죠. 그녀는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남편의 허망한 죽음, 그의 비밀이 안겨준 충격,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 어떤 면에서 보면 인생은 케이크를 닮았습니다. 겹겹이 층을 이루고 달콤함과 쌉싸래함이 교차하듯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니까요.

부디 아나트의 슬픔은 이제 끝났기를, 접시까지 핥아먹게 만드는 달콤함만 기다리고 있기를, 토마스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케이크메이커 The Cakemaker, 2017
감독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배우 사라 애들러, 팀 칼코프, 로이 밀러

| 씨네쿠리
영화, 음악, 자전거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잡식남. 물적 가난과 심적 풍요 사이에서 아빠 카드 긁듯 별 고민 없이 문장과 기억들을 소비 중이다. 

에디터 성재희(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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