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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와 아카데미, 그 파노라마와 같은 순간들
  • 그라피매거진
  • 승인 2011.06.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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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Myself  미용계의 이단아, 패션쇼의 마스터, 신념의 교육자. 오민 원장을 둘러싼 수식어들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꿋꿋이 믿고 걸어온 길. 많은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프로페셔널이 되기까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 SFAA 컬렉션 취재를 다녀온 기자가 뜬금없이 오민 원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백스테이지 분위기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스태프와 대조적으로 한 쪽에서 묵묵히 아빠 미소를 짓고 계시던데요.”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그를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깔끔하게 꾸며진 오민 코삽스 아카데미 내부는 그간의 작업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패션 디자이너, 모델, 연예인 등 그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메시지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공지사항을 알리는 게시판에는 각종 정보와 대회 일정, 무료 수강 이벤트 등의 공지가 붙어 있다. 얼마 뒤 짧은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의 그가 들어왔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꾸벅 인사를 건네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민 원장 하면 백스테이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많은 패션쇼를 진 행하는 데 힘들진 않나? 지인들 하는 말이 일을 좀 걸러가면서 하라는 거에요. 하지만 당사자인 디자이너들에게는 모든 쇼가 귀중하죠. 그 쇼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열정을 쏟아낸 사람들의 노고는 그 무게를 비교하며 잴 수 없을 만큼 동등하니까요. 그게 또 라이브 무대의 멋 아닐까요?

굉장히 오랫동안 백스테이지를 담당했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MBC 문화체육관에서 우연히 패션쇼를 보았어요. 관객으로 들어갔는 데 무대 위의 모델들을 보며 깜짝 놀랐죠. 처음 패션쇼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없어서 모델들 개개인이 서로 좋아하는 미용실에 찾아가 각기 다른 스타일을 하고선 무대에 섰어요. 호기심에 백스테이지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괴한이나 스토커로 치부 받기도 했고 경비원에게 끌려나가기도 했어요. 그 당시 헤어 디자이너의 위치는 모델이나 연예인에게 등한시되고 무시당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더구나 남자니까 오죽했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연출자를 설득했나? 셀 수 없이 찾아갔어요. 정말 여러 번 갔죠. 지금은 많은 살롱들이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는데. 기쁘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해요. 국내에 내로라하는 대형 살롱들마저 모두 협찬의 개념으로 작업하고 있거든요. 저는 개런티가 필수예요. 미용인에 대한 위상이 걸린 문제잖아요. 스타일리스트에게 작품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가치와 직결돼요. 어쨌거나 기술을 파는 직업이니까요. 스타일링을 해내는 데 많은 적든 그 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죠. 제일 가슴이 아픈 이유는 새벽밥 먹고 나와 일하면서 모델들에게 무시당하는 어린 스태프 때문이에요.

오민 코삽스 아카데미 스태프들은 어떤가? 음료수까지도 우리 식구들 먼저 안 챙기면 쇼장이 발칵 뒤짚혀요. 스타일을 만드느라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를 먼저 챙기는 건 당연하죠. 제 별명이 새끼 나은 진돗개예요. 내 새끼를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죠.

그래도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 쇼장에 투입하는 게 불안하지는 않나? 전 항상 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와 함께 일하는 모든 스태프들도 최고라고 생각해요. 결국 모두가 최고이기 때문에 최고의 사람들과 일하는 거죠. 철저한 준비와 테스트를 통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컴플레인이 쉽게 안 걸려요. 오히려 학생들의 자신감이 넘쳐나서 문제죠.

 

백스테이지, 살롱, 아카데미. 이 세 가지 중 가장 애착이 가고 보람찬 일을 하나만 꼽자면? / 저는 교육자로 남는 게 꿈이예요. 교육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거라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시골에서 데려와 가르쳤던 어린 제자들이 어느새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요. 어린 스태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생일 선물로 건강검진권을 끊어주더라고요. 전 그런게 너무 행복해요. 나중엔 오로지 미용만을 가르치는 사관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아카데미 홍보를 거의 안 한다고 들었는데.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학생들이 찾아와요. 심지어 호주에서 이곳으로 유학 온 학생도 있죠. 교육에 대한 제 진심이 통했는지“이곳은 진짜다”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어요. 살롱에 실습을 내보낼 때도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가르쳐줘요. 어설픈 커리큘럼이 아니라 살롱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제 수업엔 가발이 없어요. 동료와 친구가 아니라 손님과 디자이너의 입장이 되어 수업하는 거죠. 마네킹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마네킹과 대화를 하면서 말이 터져야 해요. 그런 점에서 살롱을 경영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입에서 입으로 홍보가 되는 것 같아요. 

백스테이지 전체를 후배에게 맡길 때도 있다는데. 우리 아이들의 슬로건이 원장님을 뛰어넘어 더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거예요. 제자들과 경쟁하며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는 거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직원들을 믿어요. 가 하루에 5~6개 쇼를 할 수 있는 이유도 패션 디자이너나 연출자들이 오민 원장 팀 전체를 신뢰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제 스태프들은 저를 떠나서도 인정받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하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알고 할 수 있다라는 강한 신념을 가졌으면 싶어요.

앞으로 살롱 계획은? 당연히 있죠. 매출을 위한 일은 싫어요. 미용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중요하죠.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하는 거잖아요. 디자이너들에게 각자의 연구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작은 공간이라도 작업대가 아닌 책상을 놓는 거죠. 연구를 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 한마디. 미용의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백스테이지 협찬 제도가 고쳐졌음 싶어요. 어린 새싹들을 몰아 넣고 마치 굉장한 일을 하는 것처럼 혹사시키는 게 너무 안타깝죠. 저희는 한번 쇼를 하면 의상의 소재, 컬러, 질감, 디자이너의 성향, 그 브랜드의 타깃,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 등 철저하고 완벽한 콘셉트를 잡아요. 심지어 모델이나 의상 교체, 무대의 조명이나 연출까지 총괄 디렉팅을 하고 있죠. 단순히 사진 한 장 들고 와서 시안이랍시고 똑같이 해 달라는 풍토 자체를 후배들이 나서서 고쳤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프로의식을 심어주는 거예요. 일의 대가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갖추는 것. 그것이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정확히 94분, 오민 원장과의 인터뷰가 끝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들 중 가장 아끼는 작업을 소년 같은 얼굴로 보여주었다. 어떤 작품을 하든 100명 중 10명만이라도 공감하고 감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진정한 아티스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 말의 억양까지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에디터 최진아 I 포토그래퍼 한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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