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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하늘 날았던 '이카로스'의 추락, 그걸 본 구경꾼들 반응은 어땠을까?
  • 최은혜
  • 승인 2020.04.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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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이카로스 ② 

지난 글에 이어서 이카로스의 추락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반응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알아봅시다.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허공의 다이달로스, 이카로스와 함께 있는 무장한 3인의 선장들, 1562년.

위 그림을 보면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범선(돛단배)이 자리 잡고 있네요. 이카로스는 어디에 있나 찾아보니 오른쪽 위에 자그맣게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이카로스가 아니라 범선인 것 같아요.

브뤼헐은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농민들의 풍속을 담은 사실적 풍경화로 유명하죠. 그가 활동하던 시절은 대항해시대였습니다. 무적함대를 이끄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 끝까지 활보하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던 때였지요.

그리고 네덜란드도 곧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바닷길을 통해 무역과 전투를 수행하며 신대륙과 아프리카 등을 약탈해서 유럽에 막강한 부를 가져다주는 첨병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범선이었습니다.

즉 범선은 이 시대 유럽의 힘과 물질만능주의를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죠. 이카로스라는 신화적 인물보다 범선이 그림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당시의 유럽, 특히 네덜란드인들이 대단히 현실적인, 때로는 속물적이기도 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인의 과오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당장의 부귀영화를 더 선호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하나 더 그렸네요. 위 두개의 그림에 범선이 등장하고 그림 전면에 이카로스가 아닌 다른 인물이 부각되어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브뤼헐,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1558년.
브뤼헐,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부분.

아래 그림 오른쪽 아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사람의 두 다리가 보이네요! 이카로스는 이미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 충격적이죠. 그런데 그 누구도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아요.

당시 유럽에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인쇄술이 발달하여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격언집이 많이 출판되어 팔려나갔어요. 이 책에는 이성적이지 못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후회하거나 고통받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겠죠. 유럽인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그리스 신화나 성서 속 인물들이 등장했을 테고요.

이카로스의 추락이 격언집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무모한 행동에 대해 비난을 받거나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그림이 일종의 사회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브뤼헐은 풍속화를 많이 그렸고 그림 속에 농민들을 괴롭히는 지배층들에 대한 풍자적 시선을 깔아놓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관점을 바꿔서 이 그림을 본다면, 누군가 죽어가는 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세태를 풍자하고 오히려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연민의 정서를 표현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카로스가 어리석은 인물이 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각자 자기 할일만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물인 거죠.

 사라체니(Carlo Saraceni, 1579~1620), 이카로스의 추락, 연도 미상.

이번에는 같은 시대 이탈리아로 가볼까요. 위 그림에서도 구경꾼들이 등장하는데, 당나귀를 탄 여인이 옆의 낚시꾼에게 “어떡해 저것 좀 봐” 하며 호들갑스럽게 말을 건네고, 낚시꾼 역시 놀란 듯 한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감성적이고 액션이 강한 남부 유럽이라 그런지,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의 무덤덤함과는 달리 인물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네요.

 알레그리니 (Francesco Allegrini) 이카로스의 추락, 연도 미상.

위 그림도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인데요. 여기에 그려진 인물들 의 반응은 좀 더 요란합니다. 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구경꾼들이 사건 당사자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 다. 유럽 북부와 남부라는 지리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북유럽은 강력한 왕정체제와 가톨릭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대신 개신교의 영향을 받고 상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이 중남부 유럽보다 더 빨리 형성되었습니다. 그만큼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이기적인 문화적 특징이 나타나는 거죠.

반면 중부나 남부 유럽은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황의 힘이 강했고 농업이 오랫 동안 주된 산업 기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보니 보수적이지만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었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큰 힘을 발휘했고요. 그래서인지 타인의 불행에 대해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정도도 컸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이카로스를 위한 탄식, 1898년.

드레이퍼의 그림은 19세기 말 영국 화가의 작품인데요. 물의 정령들이 죽은 이카로스의 몸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19세기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비현실적이며 이국적인 소재, 내면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가득한 그림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이카로스 그림 중 내면의 깊은 슬픔이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이카로스 몸의 구도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다룬 수많은 작품과 유사해 보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한 도전을 했다가 끝내 좌절한 청춘.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기를 소망하다 목숨을 잃었고, 예수 또한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인류의 해방과 구원을 추구했지만 반역죄로 처형당하고 말지요.

이카로스를 예수와 동일시했다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카로스가 어리석은 도전을 하다가 제풀에 죽어버린 존재로 보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300년 전만 해도 이카로스의 파멸에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용기 있게 도전했다가 좌절한 천재로 격상된 것이죠. 

지혜만 대표(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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