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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기애의 상징 나르키소스와 자기중심적인 에코의 비극
  • 최은혜
  • 승인 2020.05.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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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나르키소스 ①
 
자아도취, 왕자병(공주 병), 자뻑. 전문용어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합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나르키소스에서 비롯됐습니다.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다 죽어서 수선화가 된 인물이죠. 수선화의 속명이 Narcissus인 이유를 아시겠지요? 나르키소스 신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던 요정 에코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나르키소스가 자기 모습을 사랑하여 괴로워하다 죽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전반부의 내용과 이와 관련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에코는 숲과 언덕에서 놀기 좋아하는 아름다운 님프였다. 그녀에 게는 하나의 결점이 있었으니, 말이 너무 많아서 어느 자리에서건 끝까지 지껄이는 것이었다. 어느 날 헤라 여신은 남편 제우스를 찾고 있었는데 혹시 님프들과 어울려 희롱하고 있지 않나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에코는 님프들이 달아 나기까지 헤라를 붙들어놓으려고 계속 수다를 떨었다. 이것이 님프들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임을 알아차리자, 헤라는 에코에게 남이 말한 뒤에는 말할 수 있지만, 절대 남보다 먼저 말할 수는 없는 벌을 내렸다.
 
에코는 어느 날 산에서 사냥을 하는 나르키소스를 보았다. 에코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먼저 말을 걸고 싶었지만 헤라의 저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는 함께 사냥하던 동료를 놓치게 되자, “이 근처에 누구 있나?” 하고 외쳤다. 에코는 “있어”라고 대답했다. 나르키소스는 “이쪽으로 와” 하고 불렀다. 에코는 “온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동료가 오지 않자 나르키소스는 “왜 나를 피하는가?”라고 외쳤다. 에코도 똑같은 말로 대답했다. 나르키소스가 “우리 같이 가자”라고 부르니, 에코는 사랑에 벅차서 “같이 가자”라며 뛰어나와 그를 껴안으려 했다. 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면서 “이거 놔. 자꾸 나를 붙잡는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너 따위가 나한테 안아달라고?” 하며 화를 냈다.
 
에코는 부끄러워 새빨개진 얼굴을 숲속 깊이 감추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동굴 속이나 깊은 산 절벽 가운데서 살게 되었다. 에코의 몸은 슬픔 때문에 여위고 결국 뼈만 남아 바위로 변해 남은 것이라고는 목소리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고 끝까지 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이 목소리를 메아리(echo, 에코)라고 한다.
 
 웨스트 (1738~1820), 에코와 나르키소스, 1805년.
그림을 보면 도도한 자태의 나르키소스가 물가에 앉아 있고 에코는 나무 뒤에 숨어 엿보고 있군요. 에코에게 화살을 겨누는 꼬마 소년은 사랑의 신 에로스입니다. 그림 안에 꼬마들(어린 님프들)도 나르키소스의 멋진 용모에 반한 것 같아요. 스타를 바라보는 팬들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나르키소스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라는 암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에코의 사랑을 거절할 때 내뱉은 모진 말을 보세요.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죠. 그는 몸만 어른이지 정신은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 그림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그레네(1724~1805), 에코와 나르키소스, 1771년.
위 그림은 중앙에 에코의 모습을 배치해 여러 개의 시선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연못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의 시선, 그런 그의 모습을 욕망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에코의 시선, 에코의 사심 가득한 모습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선, 이 세겹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선들은 모두 한쪽으로만 향해 있고 일방적입니다. 나르키소스 신화의 비극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 외에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쪽 방향으로만 머무는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오해에는 시선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또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편협한 가치 평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낯설거나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계속 쏘아보게 되죠. 하지만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굳이 쳐다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사심과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그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죠.
 
나르키소스 신화의 시선은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에만 향해 있고, 나머지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어서 내 삶에 들어오는 게 허락되지 않아요. 나르키소스처럼 에코도 자기중심적이며 어린아이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혼자서만 끝까지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고 타인과 정서적 교감이 어렵고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떨어지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에코의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끝내 자기 파괴라는 비극을 불러옵니다.
 
카바넬(1823~1889), 요정 에코, 1874년.
이 그림은 에코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똑같은 말로 외치는 메아리의 모습을 그린 것 같은데, 어쩐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보이네요. 그녀는 왜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요. 원래 에코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수다쟁이였죠. 그런데 헤라에게 벌을 받은 후 무조건 남의 말부터 들어야 하며 그에 맞춰 대답까지 해야 합니다.
 
그동안 무시했던 남의 말에 처음으로 집중을 해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고통과 반감이 더 커 보이죠. 그래서 결국은 실패한 짝사랑 한 번에 자기 목숨을 버렸고, 죽은 후에도 끝까지 목소리만 남아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에코의 고집도 참 어지간하다 싶습니다. 
 
지혜만 대표(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최은혜(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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