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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김미승, 에코 드로잉 분야를 개척하다
  • 최은혜
  • 승인 2020.05.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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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부터 살바도르 달리까지. 폐 화장품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이야기.
 
버리는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김미승 @me.seung
색조 화장품을 한번 사면 바닥이 보일 때까지 사용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저 아깝다는 생각에 서랍에 오랜 시간 방치하거나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다 마지못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어릴 때부터 메이크업을 좋아했던 미술학도 김미승 작가는 이러한 폐 화장품으로 인물화와 꽃 등을 그려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탐구하고 넓히고 있는 그녀의 노력은 그림에 대한 새로운 카테고리를 완성하며 인정받고 있다.
 
자기소개 해주세요.
일반적인 미술 도구를 대신해 유통기한이 지난 폐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주제로 한 클래스, 행사 등에 참여하고 있고요. 주로 화장품 회사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림이 자연스럽고 사실적인데,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미술고등학교를 거쳐 미대를 졸업했어요. 입시는 한국화로 치렀고 대학 전공은 아동미술과를 선택했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동양화, 유화 등 장르 구별 없이 두루 그려왔어요. 이런 경험 이 현재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제 그림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5년이었어요. SNS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노출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죠. 그랬더니 메이크업이 떠올랐어요. 학창 시절부터 메이크업을 좋아해서 그야말로 화장품을 연필처럼 가지고 다녔죠. 좋아하는 것을 그림과 접목해보자 생각했고,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오드리햅번, 김미승 작가
작가님 그림의 장르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처음에는 메이크업 드로잉이라고 불렀는데, 그림이 알려지면서 리사이클 드로잉, 코즈메틱 드로잉, 에코 드로잉 등 많은 용어가 생겨났어요.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이 아까워서 기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기부하는 분들도 있어서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책임감이 생겨요. 마침 그림을 그리는 종이도 흰 도화지가 아닌 친환경 종이인 크라프트지를 사용하니까 통하는 면도 있고요. 또 크라프트지는 피부색과 비슷해서 메이크업하는 것처럼 생동감을 줄 수 있어요.
 
기부받는 화장품은 제한이 없나요? “이건 안 된다”라는 품목도 있을까요?
기초화장품은 재료로 쓰기 어려워요. 그 외에는 딱히 제한이 없어요. 폐 화장품을 보내주 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할 뿐이죠. 색감 위주로 작업하다 보니 그림에 활용하지 못하는 제품은 없더라고요. 매니큐어, 분장용 팔레트, 속눈썹, 네일 스티커를 보내주는 분들도 있어요. 이처럼 재료가 많을수록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죠.
 
“색과 색을 섞는다거나, 레이어링하는 등 밀도 있는 표현을 위해 탐색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수정은 지우개로 하고 지워지지 않으면 실제 화장하듯이 컨실러로 덮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어떤가요?
주제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나 그리면 괜찮겠다 싶은 걸로 정해요. 배우, 가수는 물론 인상 깊은 영화 장면이라든지요. 또 꽃을 좋아해서 많이 그리고요. 일반적인 그림과 마찬가지로 먼저 스케치를 하고 최대한 연필 선이 안 보이게 털어내요. 채색하면서 연필선이 화장품과 섞이면 얼룩덜룩해지거든요. 채색 과정도 우리가 메이크업하는 것과 비슷해요. 파운데이션, 컨실러로 피부 표현을 하고 셰이딩 제품으로 윤곽을 다듬고, 아이섀도로 눈을 채색하고 립스틱으로 입술을 바르죠. 색감 위주로 재료를 쓰는데 립스틱은 립에만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응용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전통 미술 도구보다 화장품 채색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전통적인 그림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원색을 쓰기보다 색과 색을 섞는다거나, 레이어링하는 등 밀도 있는 표현을 위해 탐색하는 과정을 즐기죠. 수정은 지우개로 하고 지워지지 않으면 실제 화장하듯이 컨실러로 덮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펄이나 글리터를 좋아해서 항상 마지막에 입체감과 포인트, 화려함을 주는 편이에요.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딱 하나를 고르기 힘들어요. 하지만 설렘 가득했던 초기의 그림이 더 특별한 거 같아요. 그때 그림을 보면 순수하고 클래식한 느낌도 강하고요. 그림은 너무 아까워서 구매 연락이 와도 못 팔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림을 너무 쌓아두면 순환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점을 팔았는데 시원섭섭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판매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미승 작가
살바도르 달리, 김미승 작가
 
기억에 남는 팬이 있나요?
예전에 여러 작가님과 전시회를 할 때 초기부터 팬이었다고 반갑게 인사해주던 분, 제가 그린 고흐의 그림을 한참 보더니 나중에 자신의 SNS에 이 전시회에 와서 가장 큰 보람은 저를 알게 된 것이라고 글 을 남겨준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작가님의 뷰티 라이프는 어떤가요?
메이크업을 좋아하고 특히 눈 화장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메이크업이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생얼로도 잘 다녀요. 또 화장품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화장품을 보면 그림 재료로 보이더라고요.(웃음) 나스의 제품을 좋아해서 쿠션부터 아이 제품까지 두루 쓰고 있고 특히 나스 아쿠아 글로우 쿠션 남산 색상은 4통째 사용 중이예요. 샴푸는 트리아밀리아, 헤어 에센스나 왁스는 마쉐리 제품의 향이 좋아서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헤어는 쇼트 단발을 오래 해오다 현재는 기르는 중이고요. 워낙 머리 손질을 못해서 레이어드 커트하고 펌을 했어요. 집이 김포지만 홍대 유니크바이에서 머리를 하고 있어요. 예약하기 어렵지만 머리를 너무 잘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림 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서 유튜브를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클래스 전문 업체에서 의뢰도 들어와서 온·오프라인 수업도 계획 중입니다. 또 그림은 실제로 봐야 디테일이 보이니까 전시회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책 출간에 대한 연락도 왔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어요.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 몰랐거든요. 이제는 더 영역을 넓히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에디터 최은혜(beautygrpahy@naver.com) 포토그래퍼 심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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