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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⑮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스'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6.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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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⑮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나르키소스 2 
 
산속에 맑은 샘이 있었는데 물이 어찌나 맑고 유리처럼 빛나는지, 아무도 그 아름다움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가 사냥을 하다 더위와 갈증에 지쳐 이 샘으로 왔다. 그는 몸을 굽혀 물을 마시려다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나르키소스는 물 위에 비친 빛나는 두 눈, 디오니소스나 아폴론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둥그스름한 두 볼, 상아처럼 흰 목, 조금 벌어진 입술, 이 모든 것보다 빛나는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몸을 정신없이 내려다보았다. 나르키소스는 물 위 그림자에 키스하려고 입술을 댔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몸을 껴안으려 팔을 물속으로 담갔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의 포옹을 피해 달아났다가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매력을 발산했다.
 
나르키소스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샘가를 방황하며 수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자여, 그대는 왜 나를 피하는가? 내 얼굴이 그대가 싫어할 정도로 못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님프들은 모두 나를 사랑하고 그대도 나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내가 팔을 내밀면 그대도 내밀고 내가 웃으면 그대도 미소를 짓고 내가 손짓을 하면 그대도 그렇게 했잖아.” 나르키소스의 가슴에서 타는 불꽃은 마침내 그의 몸을 태워버렸다. 그의 혈색 돌던 얼굴, 활기찬 젊음은 점차 사라지고, 에코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움도 시들고 말았다. 그러나 에코는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무르며 그가 “아아!” 하고 탄식하면 그녀도 똑같은 말로 화답했다.
 
나르키소스는 홀로 애태우다 죽고 말았다. 님프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물의 님프들이 가슴을 치며 슬퍼하자 에코도 자기 가슴을 쳤다. 그들은 땔나무를 준비하여 나르키소스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한 송이 꽃을 발견했는데, 이 꽃은 수선화라는 이름으로 나르키소스를 추억하고 있다.
 
파브르(Francois-Xavier Fabre, 1766_1837), 나르키소스의 죽음, 1814년.
파브르(Francois-Xavier Fabre, 1766_1837), 나르키소스의 죽음, 1814년.
1번 그림은 나르키소스의 시신 앞에서 님프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붉은 망토를 걸치고 누워 있는 나르키소스가 보이고 왼쪽에는 그가 사냥할 때 데리고 다니던 사냥개 한 마리가 앉아 있어요. 수많은 동물을 향해 던졌던 그의 창도 이젠 주인을 잃은 채 비스듬히 놓여 있고요. 나르키소스의 옆에 두 님프가 있는데 하나는 무릎 꿇고서 울고 있고 또 하나는 나르키소스의 분신인 수선화 한 송이를 비장한 자세로 치켜들고 있네요.
 
그리고 오른쪽 앞에는 푸른 망토를 걸친 에코가 슬퍼하며 앉아 있군요. 그러고 보니 두 여인이 이마를 짚고 있는데 아마 슬픔을 의미하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먼 뒤쪽에는 이 장면과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야유회라도 나온 것처럼 그려져 있네요. 이 비극의 현장과 가까이 있고 싶지 않은 심리일지도 모르겠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_1917), 에코와 나르키소스, 1903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_1917), 에코와 나르키소스, 1903년.
2번 그림은 색감과 실루엣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표정도 생생하네요. 나르키소스는 몸 전체로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데 물에 비친 그의 두 눈은 그가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주고요. 그런 나르키소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에코의 핼쑥한 얼굴과 깡마른 몸은 그동안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스어에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의미하는데요. 인물의 성격에 들어 있는 결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문학작품에는 이 하마르티아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해요. 신과 인간 가릴 것 없이 큰 실수나 잘못을 범하여 낭패를 보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르키소스 역시 하마르티아의 피해자라 볼 수 있어요. 그의 성격에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결점이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확인했지요. 사랑을 거절하면서 여자가 크게 상처받을 만큼 험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도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울렸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죠. 오죽하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나서서 벌을 주었을까요.
 
그리고 나르키소스의 오만함이 드러난 장면이 또 있어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맑은 샘에 굳이 물을 마시러 찾아갔다는 것이죠. 물론 네메시스의 ‘설계’에 말려든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그곳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본인도 조심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랑 제대로 말도 안 섞는 성격이다 보니 항상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그 결과 정말로 간절히 소통하고 싶었던 대상인 자기 그림자와 끝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죽게 되었죠.
 
리치몬드(Sir William Blake Richmond, 1842_1921), 나르키소스의 거울, 1860년.
리치몬드(Sir William Blake Richmond, 1842_1921), 나르키소스의 거울, 1860년.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의 이미지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갈망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쉽게 전이됩니다. 연못과 거울은 표면이 밝게 빛나며 그 위에 사물의 그림자를 비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그래서 예술적으로는 자아 성찰의 도구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나르키소스와 3번 그림의 여인은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연못이나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영혼은 다른 곳에 둔 채 그저 자기의 겉모습에 취해 있을 뿐인 거죠. 다른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의 내면과도 소통하지 않고서 혼자만의 완고한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요. 자칫하면 복수의 여신이 내린 벌을 받게 될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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