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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⑯ - 자기가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7.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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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피그말리온 1   
 
내가 꿈꾸던 완벽한 이상형과 실제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소원을 이룬 사람이 바로 퓌그말리온(피그말리온의 그리스식 발음)입니다. 자기가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그 조각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신하여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퓌그말리온 신화를 다룬 그림들을 감상하고, 동화의 뒷면에는 어떤 그림자가 깔렸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였던 퓌그말리온은 여자의 결점을 너무 많이 봐 여성을 혐오하고 한평생 독신으로 지내기로 했다. 그는 상아로 여자의 입상을 조각했는데 어찌나 정교하고 아름다웠는지, 살아있는 여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감탄한 나머지 이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이 조각상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듯 조각상을 끌어안아 보기도 하고,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반지와 목걸이, 귀고리 등을 달아주었다. 그는 튀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천을 소파에 깔고는 조각상을 그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조각상을 자기 아내라고 부르며 머릿밑에 보들보들한 깃털을 넣어 만든 베개를 놓아서, 마치 조각상이 그 부드러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듯이 정성을 다했다.
 
퓌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제전일에 제단 앞에 서서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는 차마 자신의 조각상 그 자체를 아내로 달라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제전에 참석했던 아프로디테는 그의 참뜻을 알아듣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퓌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가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 입술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다시 조각상의 입술에 키스하고 그 몸을 쓰다듬어보았다. 그랬더니 상아가 매우 부드럽게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히메토스 산에서 나는 밀랍처럼 말랑말랑했다. 퓌그말리온은 놀라고 기뻐했지만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녀를 여러 번 어루만져보았다.
 
그녀는 정말 살아 있었다. 혈관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쑥 들어갔다가 손을 떼니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녀는 키스를 받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수줍게 눈을 뜨고 연인을 바라보았다. 아프로디테는 자기가 맺어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다.
 
실제로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가 했던 일들을 찾아보면 퓌그말리온의 사랑을 이루게 한 것 외에는 해피엔딩이 거의 없어요. 사랑을 기만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거나, 아니면 아프로디테 본인이 바람기 때문에 스스로 망가지거나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림1. 트리오종(Anne-Louis Girodet de Roussy-Trioson, 1767-1824),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19년경.
[그림1] 트리오종(Anne-Louis Girodet de Roussy-Trioson, 1767-1824),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19년경.
바다 님프의 이름에서 따온 갈라테아(또는 갈라테이아)는 퓌그말리온의 조각상이자 아내의 이름입니다. [그림 1]은 조각상이 이제 막 생기를 얻고 그걸 바라보는 퓌그말리온이 감격스러워하는 순간을 포착했군요. 꼬마 에로스가 둘 사이를 이어주고, 작업실에는 신비한 안개와 광채가 깔리면서 조각상의 얼굴에 발갛게 혈색이 돌고 있어요.
 
그런데 가슴 아랫부분은 여전히 차가운 대리석의 느낌이 있네요. 갈라테아는 생명이 없는 조각상과 온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대조적인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여인인 거죠. 이렇게 모순적인 특징이 공존하는 극적인 상황을 그려내는 작업은 여러 화가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림2]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습작), 1890년. [그림3] 제롬,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92년.
[그림2]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습작), 1890년. [그림3] 제롬,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92년.
[그림 2]와 [그림 3]은 같은 포즈를 취한 인물들을 각각 다른 위치에서 그린 한 쌍의 그림이에요. 첫 번째 그림은 갈라테아를 정면에서 그렸고 두 번째 것은 뒷모습을 그렸네요. 첫 그림은 아무래도 습작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다 완성된 상태는 아닌 것 같고, 둘째 그림이 제대로 된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확실히 두 번째 그림이 훨씬 더 극적이고 생동감이 느껴지죠. 더 꼼꼼한 붓질의 마감 처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껏 구부러진 뒷모습의 곡선이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네요. 그림을 자세히 보니 여인의 허벅지 중간 윗부분은 생명이 도는 상태로, 그 아랫부분은 굳어 있는 상태로 그려놓았어요.
 
이 그림을 보면서 남성 감상자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 한번 생각해볼까요. 일단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 신체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무릎 위쪽에 다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이 여인의 다리 부분을 굳은 채로 놔둬도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이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아름답겠죠. 그리고 다리가 굳어 있어서 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여인의 수동적인 자세가 남성에게 주는 판타지는 상상 이상으로 큰 것 같아요. 내 맘대로 저 여성을 다루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을테고, 반항하지 못하는 여성을 정복하는 쾌감도 가질 수 있다는 위험한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저 여인의 다른 부분은 다 살아 있는데 하필 다리만 굳어 있어요. 감상자인 남성 입장에서는 이 여인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쉽게 자세가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강렬한 욕망이 차오르는데 그것을 쉽게 해결하지 못해 안절부절 애를 태우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퓌그말리온이라는 신화 속 인물에 투사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19세기에는 낭만주의의 물결이 온 유럽을 휩쓸었죠. 다가가지 못하는 환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이상을 추구하다 장렬하게 쓰러져가는 비극적 영웅에 대한 숭고한 마음 등이 이 시대 예술의 주류를 이루었어요. 달콤한 행복이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어렵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곳곳에 깔렸죠.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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