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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⑰ 자기가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2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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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⑰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피그말리온 2   
 
<그림1> 번 존스, 퓌그말리온과 조각상 1 마음이 열망하다, 1878년경.
<그림1>을 보면 퓌그말리온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네요. 문 바깥에는 두 여성이 퓌그말리온에 대해 뒷담화를 하며 지나가는 것 같은데 퓌그말리온은 바깥쪽을 등지고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혐오하는 그의 성격을 표현한 것 같죠. 대신 그의 앞에는 세 명의 나체 여인상이 있군요. 이 여인들은 삼미신(三美神)이라고 하는데요. 이 세 여신이 누구냐 하는 해석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보편적인 구성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라고 하네요. 

그리스 시대에는 3이라는 숫자가 완전한 하나의 단위를 의미했는데요. 세 여신이 원을 그리며 서 있는 자세는 완벽함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봐도 되겠죠. 삼미신은 서양미술사에서 정말 많이 그려졌기 때문에 여러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 퓌그말리온은 오직 여신만이 완벽한 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도 남자이다 보니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겠죠. 첫 그림의 제목처럼 정말 이상적인 여성과 사랑하고픈 마음의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하지만 그 어떤 실제 여인도 싫고, 그렇다고 감히 여신과 사랑을 할 수는 없었으니 완벽한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죠. 
 
퓌그말리온이 키프로스의 여인들을 그토록 혐오했던 이유는 아프로디테가 그녀들에게 저주를 내렸기 때문인데요. 키프로스의 여인들이 나그네를 박대한 죄로 결혼할 때가 되면 나그네에게 몸을 팔아야 했죠. 그리고 그렇게 받은 돈을 모아 혼수를 장만해서 결혼을 해야 했던 겁니다. 퓌그말리온의 눈에는 동네 여인들이 얼마나 음란하고 더러워 보였겠어요. 순결한 여성만이 자신의 신부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주변의 어떤 여인과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 여성 혐오 범죄가 사회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성 혐오자들이 그들의 머릿속에는 본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완벽한 이상적 여성상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성이 현실에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여성 혐오자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은 대체로 일단 외모가 뛰어나고, 다른 남자와 연애한 적이 없고, 자기 말에 늘 순종적이고, 힘들 때 언제든지 기대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일 거예요. 
 
그런데 이런 여성상을 원하는 남성들은 어릴 때 정서적 학대와 무관심에 노출되었던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그들은 자기보다 약한 여성이 자기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싶은 거죠.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되니까 자기가 더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곤 하는 것이에요. 
 
<그림 2> 번 존스, 퓌그말리온과 조각상 2 만지는 것을 자제하다, 1878년경.
퓌그말리온도 어쩌면 어릴 때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얻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돌보고 위로해준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건 아닐까요. 드디어 퓌그말리온은 완벽한 이상형의 여성을 그 값비싼 상아로 조각해냈네요.<그림2>
 
그런데 정작 완성해놓고 보니 자기가 만들었는데도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다워서 감히 손을 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왼손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오른발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군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자세지요. 완벽한 아름다움 앞에 자기도 모르게 경외감을 느끼는 듯해요. 내가 만들었지만 이 엄청난 창조물을 어쩌나 싶은 눈빛으로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네요. 
 
역시 창문 너머 바깥쪽에는 여인들이 있지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요. 그저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나누는 듯한 자세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에요. 실제의 여성에게는 냉정하지만 완벽한 여신에게는 저절로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크게 느꼈던 낭만주의 시대의 인식이 이 그림에도 분명히 반영되어 있어요. 
 
애초에 갈라테아는 생명이 있던 존재가 아니었으니 생명을 얻은 후에도 사람이라기보다는 집 안의 고급 장식품처럼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왜 내가 어느 답답한 남자의 창조물이 되었으며, 이럴 거면 굳이 사람으로 살 필요가 있었나 하는 참담함을 느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림 3> 샬켄(Godfried Schalcken, 1643-1706),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연도 미상.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퓌그말리온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그림이 바로 <그림3>이 아닌가 싶네요. 갈라테아는 아예 팔다리가 없는 토르소로 그려져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요. 퓌그말리온은 온 얼굴에 기분 나쁜 미소를 띠며 마치 인형을 조종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바로크 미술 특유의 검은 배경과 빛의 집중 때문에 더 은밀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죠.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난 영화가 있어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제니퍼 챔버스 린치 감독, 1993년). 사랑에 집착한 남자가 여자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 그녀의 팔다리를 절단한 후 정성껏 보살펴주며 모든 것을 포기한 여자가 자신에게 온전히 의지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인데요. 두 팔이 절단된 <밀로의 비너스> 석상이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됩니다. 
 
퓌그말리온 신화 내용이 해피엔딩이라 해도 실제의 삶이 과연 끝까지 행복했을까 하는 의심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가 워낙 완벽주의자이고 외골수인데다 여성 혐오자의 성향이 강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면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거죠.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의 이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을, 그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해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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