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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서 Z까지 해결해드립니다” 화장품 산업에 싹트는 ‘플랫폼’ 경제
  • 김도현 에디터
  • 승인 2020.08.2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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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요구는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미코노미(Me+economy)’, ‘나심비(나+심리+가성비)’와 같은 신조어가 잇따라 등장하고 소비재 전반에 커스터마이징 제품이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다. 한국의 화장품 시장에선 잘게 쪼깨진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시도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 최초로 ‘맞춤형 화장품’을 법제화했을 정도다.

물론 개인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진정한 의미의 ‘맞춤형 화장품’을 사용하기까진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저런 현실적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시장 구조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공급자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미리 대량으로 생산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개별 소비자 집단의 특성과 취향, 선호를 반영한 ‘다품종 소량생산’ 화장품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사진 : 뷰티메이커스
사진 : 뷰티메이커스

틈새 니즈 파고드는 ‘인플루언서’ 브랜드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현재 세계 2위 규모이며 세계 1위를 향해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시장 성장을 이끄는 채널은 온라인이고, 온라인 화장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는 건 이른바 ‘왕홍(網紅·온라인 인플루언서)’들이다.

KOTRA 항저우 무역관에 따르면 중국 내 왕홍 경제 규모는 2019년 기준 2,524억 위안(한화 약 43조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46%나 증가할 정도로 급성장세다. 같은 해 왕홍 생방송 이용자는 5억 명을 돌파했는데 올해 들어선 1분기에만 5억6,000만 명 수준에 이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뷰티 왕홍들이 기존 화장품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자신의 브랜드를 선보이고 판매하는데 속속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항저우 무역관은 다이(张大奕), 퉁즈추(董子初), 팡쥔핑(方俊平), 장머판(张沫凡) 등 1,000만 명 이상의 팬을 보유한 슈퍼 왕홍들이 최근 몇 년간의 실적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신제품 개발하고 아이템 확충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 1위 화장품 시장인 미국에서도 이른바 ‘셀러브리티(Celebrity) 브랜드’가 연이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방송인 겸 모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가 설립한 ‘카일리코스메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리한나(Rihanna)가 만든 ‘펜티 뷰티’, 뷰티 인플루언서 후다 카탄(Huda Kattan)의 ‘후다 뷰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SNS 인플루언서 ‘임블리’로 잘 알려진 임지현의 ‘블리블리’가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인플루언서 브랜드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가했지만 이후에도 뷰티 인플루언서들의 브랜드가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너도나도 화장품 사업 벌인다지만 ‘냉혹한 현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시장에는 나만의 화장품 혹은 틈새를 겨냥한 화장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화장품 판매사) 수는 15,707개에 달한다. 2012년만 해도 829개였는데 불과 7년 만에 19배 가까이 불었다.

그런데 15,707개의 화장품 판매사 가운데 지난 한 해 생산실적이 있었다고 보고한 곳은 7,580개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8,127곳은 한 해 내내 화장품 매출이 한 푼도 없는 무늬만 판매사였던 셈이다. 진입 문턱이 낮기로 유명하지만 성공은 둘째치고 제품을 만들어보는 것조차 어려운 국내 화장품 시장의 현실을 드러내는 수치다.

제품을 만드는 건 제조사를 통하면 해결될 일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3,000개 안팎의 화장품 제조사가 존재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화장품 상당수가 이들 제조업체에서 OEM·ODM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화장품 판매사는 제품 생산조차 해보지 못했을까? 실제로 화장품 사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실행해 본 이들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고 입을 모은다. 행정적 절차인 책임판매업체 등록도 만만치 않은 일이거니와 생산 첫 단계인 제조사를 선택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제조사는 역으로 선택의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수천 개나 되는 제조사를 일일이 접촉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므로 자칫하다간 속칭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제품 기획이 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문제이고 되어있다 해도 현실적 조건에 치여 결국 처음 생각과는 영 딴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어찌 제품 개발이 결정된다 해도 수차례의 샘플 테스트 과정은 보통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기획한 제품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이므로 대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도 제조사의 협조가 있어야 충분한 테스트가 가능하다.

이 과정과 함께 용기와 패키지, 라벨과 같은 부자재를 수급하고 부자재에 입힐 디자인을 담당할 회사 등등을 찾아야 하는데 그 각각이 제조사를 찾는 일과 같은 수준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화장품을 생산하는 일은 이처럼 여러 회사와의 협업 과정이므로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잘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한 곳이라도 비끗하면 일을 망친다. 이 과정을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로서 판매사가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화장품은 신체에 직접 바르는 제품이므로 생산 과정에서의 위생이나 안전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생산을 마친 제품들을 옮기고 보관하는 일 또한 수고스러운 일이다. 여기까진 그래도 판매사가 ‘갑’의 위치지만 이후엔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경쟁자가 득실거리는 치열한 마케팅 및 유통의 단계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유명한 인플루언서라도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을 벌이겠다는 선택이 쉽지 않다. 일반인들에겐 더더욱 리스크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새 공략의 성공을 확신하고 화장품 사업 벌이겠다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장품 사업 대행사의 역할이 생긴다. OEM·ODM 제조사가 이미 생산을 대행하는 회사들이지만 화장품 사업 대행사는 제품을 기획하고 가장 적절한 협력사들을 찾아 실제 제품 생산이 완료되는 전 과정을, 때에 따라선 마케팅과 판매, 유통의 업무까지 대신해 주기도 한다.

화장품 사업 대행사라는 업태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화장품업계에도 ‘컨설팅’이라 이름 붙인 몇몇 회사들이 예전부터 알음알음 대행 업무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업무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소비자 니즈의 세분화와 함께 화장품 판매업체들이 급격한 증가하고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의 전환이 임박한 요즘에는 보다 폭넓게 공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대행사가 등장하고 있다.

알음알음 대행사에서 전면적인 ‘플랫폼’으로

뷰티메이커스는 제조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의 견적 금액을 자동 산출해주고 샘플까지 제공해준다. 사진은 뷰티메이커스의 프리미엄 샘플 서비스.
뷰티메이커스는 제조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의 견적 금액을 자동 산출해주고 샘플까지 제공해준다. 사진은 뷰티메이커스의 프리미엄 샘플 서비스.

최근 ‘온디맨드 코스메틱 제조 플랫폼’을 표방하며 전면적인 대행 서비스를 개시한 뷰티메이커스가 대표적 사례다. 뷰티메이커스는 지난해 3월 뷰티 제품 관련 펀딩 플랫폼으로 출범한 회사다. 지난 1년여 동안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제 화장품 A-Z 비대면 풀서비스 제공을 선언하고 나섰다.

화장품을 만들고 싶지만 시장 생리를 모르고 정보에 어두운 이들을 위해 기획과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답을 주고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간편하게 온라인상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뷰티메이커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만들려는 화장품의 견적을 손쉽게 받아보고 비교할 수 있다. 원하는 아이템의 카테고리를 찾아 타깃 제품을 선택하고 바라는 기능까지 추가하면 샘플 제조가 가능한 견적 금액이 자동 산출되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는 1,157개에 달하는 화장품 제조사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했다.

견적을 확인한 후엔 최소 비용으로 테스트해 볼 샘플을 만들 수도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실제 판매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과정 전반을 브랜드 매니저를 비롯한 오랜 경력의 화장품 전문가가 지원하며 내용물 제조사는 물론 부자재를 비롯해 100여 곳의 협력사들이 함께 한다. 생산 제품은 뷰티메이커스의 펀딩 플랫폼을 통해 론칭하거나 별도 방식으로 시중에 선보여도 된다.

뷰티메이커스는 이번 서비스 리뉴얼과 함께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오프라인 공간인 ‘메이커 스페이스’를 공식 오픈했다. 화장품 제작 및 생산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을 해결하고 싶거나 교육이 필요한 이는 누구나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할 수 있고 팝업스토어와 같은 특별한 공간 운영도 가능하다.

뷰티메이커스 유승혁 공동대표는 “메이커 스페이스는 중소 업체들을 위한 팝업스토어는 물론 화장품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염두에 두고 꾸민 공간이다”며 “온라인 서비스 메뉴 고도화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영문 서비스도 개시해 온·오프라인 방문 수와 활용도를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화장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사업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플래닛147’ 서비스를 개시했다. 사진은 ‘플래닛 147’ 인스타그램 이미지.
한국콜마는 화장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사업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플래닛147’ 서비스를 개시했다. 사진은 ‘플래닛 147’ 인스타그램 이미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장품 제조사인 한국콜마도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다른 업종의 기업이나 인플루언서, 일반 개인들까지 화장품 사업 진출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플래닛 147’ 사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플래닛147’은 화장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사업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화장품 개발 과정에 대한 교육부터 내용물 제작, 패키지 개발, 브랜드 기획까지 화장품 사업에 대한 전 분야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접속이 가능한 개방형 웹사이트 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의 고객에게 신속히 화장품 사업 솔루션을 제공하고 사업에 필요한 전방위 서비스를 요구사항에 맞게 제공한다는 취지다.

내곡동에 있는 종합기술원 로비에는 화장품 개발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396㎡ 규모의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했다. 화장품 원료와 그 원료를 배합해 만든 대표 제형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 고객사는 개발하고자 하는 품목의 다양한 제형을 직접 확인하며 원하는 제형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체험 공간과 바로 이어지는 상담 공간에는 제형, 패키지, 브랜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상주하며 고객이 원하고, 구상하는 아이디어를 바로 제품에 반영해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객의 사소한 요구사항도 섬세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이 공간에 수천 개의 원료 옵션이 탑재된 제품 개발 시스템(PDS : Product Development System)도 준비했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30년 동안 K뷰티의 성장을 이끌어 왔듯 앞으로는 전 세계 고객들의 화장품 사업에 대한 다양한 열망과 꿈을 실현시키는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우화만’은 소비자가 평소 화장품을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이나 개선점을 제안하면 전문 BM이 시장성을 검토해 함께 실제 제품을 만들어준다.
‘우화만’은 소비자가 평소 화장품을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이나 개선점을 제안하면 전문 BM이 시장성을 검토해 함께 실제 제품을 만들어준다.

굿즈컴퍼니 또한 ‘우화만’이란 브랜드를 통해 화장품 개발·제조·판매 대행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우화만은 ‘우리 같이 화장품 만들어볼래?’의 약자다. 그 이름처럼 소비자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실제 화장품으로 개발해준다.

소비자가 평소 화장품을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이나 개선점을 제안하면 전문 BM이 시장조사를 거쳐 개발 타당성과 시장성 등을 두루 검토한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제안자와 의견을 나눠가며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실제로 출시해 판매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살균력과 보습력을 겸비한 ‘오삭 핸드겔’, 붙이지 않고 바르는 ‘인플라이트 마스크팩’, 페이스 클렌징과 각질 제거가 동시에 가능한 ‘마더파더타월’ 등의 제품이 우화만을 통해 탄생했다. 최근 우화만은 독일 화장품 기업인 바이어스도르프가 전도유망한 K-뷰티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전개하고 있는 ‘니베아 액셀러레이터(NX) 프로그램’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며 사업성을 입증했다.

에디터 김도현(cos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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