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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⑱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그의 아들 '히폴뤼토스'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9.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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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⑰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테세우스와 히폴뤼토스 1

 
이번에는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된 히폴뤼토스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아테네 왕이었던 테세우스는 첫 번째 부인이었던 아마존족 여왕 안티오페가 죽은 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파이드라와 결혼했다. 테세우스에게는 이미 히폴뤼토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같은 매력과 미덕을 겸비했으며 나이도 파이드라와 비슷했다.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인 그를 사랑했으나, 히폴뤼토스는 새어머니의 구애를 거절했다. 그녀의 사랑은 증오로 변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을 꼬드겨 아들을 질투하게 했다. 파이드라의 말을 그대로 믿은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아들에 대한 복수를 기원했다.
 
어느 날 히폴뤼토스가 바닷가에서 말이 끄는 전차를 몰고 있을 때 바다의 괴물이 나타나 말을 놀라게 했다. 말은 그대로 달아났으나 전차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히폴뤼토스는 죽었지만, 그를 보호하던 아르테미스 여신의 도움으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그를 다시 살려주었다. 아르테미스는 테세우스를 부모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이탈리아에 데려다놓고 님프 에게리아에게 그를 보호하도록 했다.
 
히폴뤼토스가 저주를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면서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를 모욕하며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화에서 히폴뤼토스가 아르테미스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에 살을 붙여서, 아르테미스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아프로디테를 끌어들여 사랑의 저주에 빠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첨가한 것이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 숲과 사냥의 여신, 처녀와 순결의 여신으로 활약하고 있어요. 자유분방한 야생성의 상징이지만 의외로 잔인한 면모도 있어서, 자신을 모욕한 남성들이나 순결의 맹세를 저버린 여성들이 잔혹한 최후를 맞게 하는 등의 표독스러운 모습을 신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이렇게 남자를 근본적으로 멀리하는 성향의 여신이지만, 그녀가 호감을 보였던 남성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 중 한 사람이 오리온자리로 유명한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이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히폴뤼토스입니다.
 
히폴뤼토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테세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테세우스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그리스 시대의 신화나 서사시, 비극 등에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거든요.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인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어요. 아이게우스가 여행 중 친구인 트로이젠 왕의 딸 아이트라와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동침을 했는데 그만 임신이 되어버렸죠.
 
아이게우스는 아테네로 되돌아가면서 커다란 바위 밑에 자신의 칼과 신발을 묻습니다. 그리고 아이트라에게 당부하지요. 나중에 아들이 성장하거든 이 증표들을 가지고 아테네로 오도록 하라고요. 테세우스가 성인이 되자 아이트라는 아이게우스가 남기고 간 물건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그는 손쉽게 바위를 들어올려 칼과 신발을 꺼냅니다. 그리고는 수많은 모험을 하며 아테네에 도착하죠.
 
<사진 1>제네리(Benedetto Gennari the Younger, 1633-1715), 미노스 왕의 딸들 아리아드네, 파이드라와 함께 있는 테세우스, 1702년.
히폴뤼토스보다 테세우스를 먼저 언급한 게 사실은 <사진 1> 때문이었는데요. 파이드라를 검색했더니 몇 안 되는 그림 중에 이 작품이 있는데, 등장인물인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이야기를 먼저 간단하게 하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아리아드네는 그야말로 테세우스밖에 모르는 순정파였어요. 이 그림에서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죠.
 
반면 뭔가 감정을 숨긴 눈빛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파이드라. 이 눈빛이 바로 나중에 의붓아들 히폴뤼토스를 향한 강렬한 욕정으로 불타오르게 될 테지요. 그러고 보니 저 두 여인은 이복 자매 사이로군요.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미노스 왕의 큰딸 아리아드네는 조국을 배신하면서 사랑을 택했지만 버림받았어요. 둘째딸 파이드라는 무의식중에 언니의 복수를 한 것인지,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고 스스로 망가져가는 데 한몫을 담당합니다.
 
<사진2>웨스톨(Richard Westall, 1765-1836), 미궁 입구에 있는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1810년경.
지난번 이카로스 편을 통해 크레타 섬에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이 있고 그 안에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 괴물을 퇴치한 자가 바로 테세우스라는 것도 이미 본 적이 있어요. 아리아드네가 실타래를 이용해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그에게 알려줬다는 사실도요. 미궁을 철저히 봉쇄했던 아버지 미노스 왕을 배신할 만큼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사랑했던 거죠.<사진 2>
 
<사진3> 바리(Antoine-Louis Barye, 1796-1875),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1646년.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의 제물이 될 뻔한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을 구출하여 그 실타래를 이용해 무사히 빠져나옵니다. 그리고는 아리아드네도 함께 데리고 아테네로 향하게 되는데요. 도중에 낙소스 섬에 머무르다가 꿈에서 아테나 여신의 계시를 받고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려둔 채 떠나버리죠.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은인 같은 존재이고 게다가 임신까지 한 상태였지만, 이 둘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기에 아테나가 갈라놓았다고 알려져 있어요.<사진 3>
 
아무리 신의 계시라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아버지 아이게우스도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돌보지 않고 버려둔 것이군요. 부자가 모두 여성에게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3대째 히폴뤼토스에 와서는 여성을 혐오하고 아예 거부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사랑을 거부한 데 대해 아프로디테의 저주가 드디어 3대째에 실현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진4>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 1741-1807), 낙소스 섬에서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 1774년.
<사진 4>는 신고전주의 시대 스위스의 여성 화가 카우프만의 작품이에요. 수평선 저 멀리 테세우스의 배가 떠나는 게 보이죠. 절망에 빠진 아리아드네의 섬세한 심리 표현이 돋보이네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사랑을 거부하고 여성을 박대했던 남성들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접했습니다. 그중 오르페우스는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 이승에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나마 신의 저주는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직 퓌그말리온만이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은 이유는 이 세상의 여인과는 아니지만 사랑을 하고자 하는 갈망이 확실히 있었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비록 실패하더라도 사랑을 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사랑이라도 일단 하려고 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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