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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화장품 기술, 스타트업에서 답을 찾다
  • 김도현 에디터
  • 승인 2020.09.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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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산업은 화학, 생물과학, 생명공학, 약학, 생리학 등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정밀화학공업의 한 분야다” 화장품 산업의 특성을 설명하는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제 이 문구도 화장품 산업의 최신 경향을 반영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첨단과학과 신기술의 융복합이 화장품만큼 빠르고 극적으로 진행되는 분야도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화장품업계의 기술 경쟁은 주로 성분 분야에 치우쳐있었다. 얼마나 더 참신하고 기발한 원료 소재를 내세우느냐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주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화학, 생물과학, 생명공학, 약학, 생리학 등의 학문이 중요했다. 뛰어난 효과의 성분을 안정화시키고 피부 흡수력을 높이는 데에도 이들 학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효능보다 더 중요한 화장품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경쟁의 강도와 범위가 끝없이 높아지고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학문으로 제한된 연구소에서는 갈수록 세분화되는 소비자의 요구를 감당하는 게 버겁다. 마케팅·영업부서가 짜내는 아이디어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뒤처진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3D 프린터 등의 IT 용어를 입에 올리긴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쫓기엔 역부족이다.

자체 역량만으론 버텨내기 어려운 초경쟁의 시대, 화장품 기업들은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콘셉트로 무장해 시대를 선도하는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이 그 대상이다. 재기발랄한 그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에 투자하고 육성해 향후 사업의 새 동력을 얻는다는 게 목표다. 자금에 목마르고 시장 경험이 부족해 뜻을 펼치지 못했던 스타트업들도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또 하나의 사회공헌이자 윈윈(win-win)전략으로도 평기된다.

유망 스타트업 발굴 나선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

한국무역협회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이노브랜치’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50여 주요 기업과 8,500여 스타트업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혁신 기술을 지닌 스타트업과 협업을 원하는 기업에서 관심 분야를 공고하면 조건이 맞는 스타트업이 신청하고 심사와 미팅을 거쳐 협력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6월 열린 '아모레퍼시픽 R&D 챌린지'에 참가한 스타트업 관계자가 피칭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아모레퍼시픽 R&D 챌린지'에 참가한 스타트업 관계자가 피칭을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4월 △소재(천연소재, 친환경 원료 등) △지속가능 패키징(생분해, Plastic-free 등) △바이오(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분석 등) △디지털(웨어러블, AR 등) △디바이스(마사지기, 패치 등) 등 5가지 분야의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모집 공고를 냈다.

아모레퍼시픽의 공고에는 국내외 스타트업 126개사가 화답했다. 2개월여에 걸쳐 서류심사와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최종 후보군 7개사의 1대1 미팅이 진행됐다. 이어 지난 6월 말 우선 협력 대상이 확정됐다.

아모레퍼시픽이 점 찍은 스타트업은 △AI를 활용한 효능 물질 탐색 기술을 보유한 ‘심플렉스’ △분광학을 활용한 화장품 성분 검출 및 분석 기술을 확보한 ‘파이퀀트’ △먹어도 되는 구강 관리 천연소재 및 제형 기술의 ‘바른’까지 총 3개사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들과 기술 라이센싱, 공동 연구, 혁신 제품 공동 개발 등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도 같은 방식으로 스타트업들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 1월 △소비자 경험 혁신(가상현실, 증강현실, 맞춤화 기술 및 서비스 등) △제품 혁신(기능성 소재 및 성분, 마이크로바이옴·유전자분석·디지털 생물학 등 화장품과 접목 가능한 혁신 바이오 기술, 지속가능한 친환경·친사회적 기술 및 제품 등) △오퍼레이션 혁신(3D 프린팅, 사물인터넷 및 블록체인, 스마트 물류 기술 및 시스템 등) 등의 분야에서 협업할 스타트업 모집 공고를 냈다.

국내 스타트업 113개사가 지원한 가운데 역시 심사 과정 및 1대1 미팅 등을 거쳐 지난 5월 3개사를 우선 협력 대상으로 선정했다. 아모레퍼시픽에게도 선택된 파이퀀트를 비롯해 △시선 추적 기반의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디지털캠프’ △화장품 관련 천연원료 추출 기술을 지닌 ‘디네이처’가 로레알의 부름을 받았다.

세계적인 화장품·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벤처투자 및 사모펀드 운용 자회사인 유니레버 벤처스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유기농 순면 생리대로 아마존에서 이름을 알린 여성용품 기업 라엘이 유니레버 벤처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5월 ‘미래화장품 육성재단’을 출범시켰다. 차세대 화장품 기술 개발에 앞장설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기술력이 뛰어난 국내외 뷰티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재단은 △화장품 관련 기초 R&D 분야 연구지원 △우수 뷰티 스타트업 발굴 및 기술개발 지원 △대학생 장학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기술적인 성장 잠재력이 높은 화장품·뷰티 분야 스타트업에겐 초기 연구개발비와 생산설비 등 사업 제반 마련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 또 미래화장품 기술 발전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화학, 바이오, 소재 등 뷰티 유관 분야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생에겐 연구비와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독일 화장품 기업 바이어스도르프는 서울 마포구에 스타트업 파트너사들을 위한 전용 오피스를 마련했다.
독일 화장품 기업 바이어스도르프는 서울 마포구에 스타트업 파트너사들을 위한 전용 오피스를 마련했다.

‘니베아’로 유명한 독일 화장품 기업 바이어스도르프는 차세대 K-뷰티 스타트업을 발굴한다는 목표로 지난해 6월부터 ‘니베아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하 NX)을 운영하고 있다. 1년 단위로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장기 파트너십 체결, 글로벌 바이어스도르프 그룹 내 최고 임원진으로 구성된 멘토링, 다양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NX 전용 공간도 마련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위워크(WeWork) 홍대점 5층 전체를 임대해 파트너사들을 위한 공간으로 내줬다. 레지에나, 리메세, 글로우힐, 판다 등이 1기 파트너로 프로그램을 수행한 가운데 이 중 하나인 라이클(언니의 파우치)은 바이어스도르프의 지분 투자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 7월부터는 △플라워 테라피 콘셉트의 프리미엄 페이스 케어 브랜드 ‘파뮤’ △미니멀리스틱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 ‘베이지크’ △뷰티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사 ‘아이스크리에이브에이티브’ △소비자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 개발로 이어주는 뷰티 커뮤니티 플랫폼 ‘우화만’ △국내 제조사와 해외 바이어의 연결하는 글로벌 B2B 플랫폼 ‘아이오앤코’ 등 5개사가 2기 NX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선택받은 기술, 무엇이 달랐을까?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아모레퍼시픽과 로레알, 두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을 ‘파이퀀트’다. 파이퀀트는 빛을 이용해 대상 물질을 분자 단위까지 분석하는 분광학 기반의 스타트업이다. 지금까지 연구소에서 활용돼온 분광 분석을 소형화함으로써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퀀트가 개발한 ‘워터스캐너’는 수질 분석에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분광기로 현장에서 곧바로 물의 오염도를 파악할 수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를 증식시켜 확인하는 기존 PCR 방식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수질 오염 여부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물 사정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의 수인성 감염병을 예방하는 데 획기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점을 높이 사 빌게이츠재단(빌 앤 멜린다 메이츠 재단)이 그랜드 챌린지 익스플로레이션 프로그램의 파트너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파이퀀트의 분광 분석 기술은 적용 분야가 넓다. 대기 질 파악, 분유 등 식품 내 유해 성분 검출 등에 이미 이용되고 있다. 피부 상태나 화장품 성분을 분석하는 데도 활용 가능하다. 화장품의 안전성을 높이고 개개인의 피부에 최적화된 맞춤형 화장품 제조에 쓰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의 선택을 받은 심플렉스는 인공지능 활용 분석 기술을 확보한 스타트업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통합·시각화·분석·예측모델·공유 기능을 모두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연구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예측하며 검증하는데 드는 수고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이 기술은 지금까지는 제약 분야의 신약 개발에 주로 활용됐는데 효능 물질을 찾는데 최적화된 만큼 화장품 분야에서도 효용성이 큰 것으로 평가됐다.

로레알과 손을 잡은 디네이처는 독자적인 천연물질 추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물에 포함된 소량의 활성 물질을 선택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특허출원 DEE(Dissolution Emulsion Extraction) 공법이 그것이다. 건조중량 대비 0.1%가 되지 않는 극미량의 활성 물질을 2단계에 걸쳐 에멀전 형태로 뽑아낼 수 있으므로 경제성과 활용도가 크다는 설명이다.

디네이쳐는 DEE 추출법을 이용해 JAK/STAT 저해 효과를 지닌 천연물질을 얻었으며 이를 탈모 등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인체 적용 시험에서도 탈모 증상 완화에 유의미한 효능이 있음이 확인돼 이를 응용한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비주얼캠프는 시선 추적 기술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무의식적인 움직임인 시선을 파악해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분석하는데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모바일에 적용 가능하며 마케팅과 광고, 유통, 교육, 훈련,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평가다.

에디터 김도현(cos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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