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기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⑲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그의 아들 '히폴뤼토스'-2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09.25 10: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⑲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 테세우스와 히폴뤼토스 2
 
이제 본격적으로 히폴뤼토스와 파이드라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해볼 차례입니다.
 
아프로디테는 아르테미스만을 추종하는 히폴뤼토스가 자신을 경멸하므로 죽일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는 아버지 테세우스의 아내인 파이드라가 의붓아들에게 연정을 품게 하고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한 파이드라가 자살하면서 그 여파로 히폴뤼토스가 파멸하도록 계획한다.
 
상사병에 걸린 파이드라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유모는 히폴뤼토스에게 이를 전하지만 그는 분노하면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있게 한 제우스를 원망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파이드라는 자신과 아이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고, 히폴뤼토스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다.
 
<그림 1>.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 파이드라, 1880년.
<그림 1>을 보면 세 명의 여인이 있는데 일단 맨 오른쪽은 유모인 것 같죠. 사려 깊고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며 여주인을 바라보고 있네요. 가운데 여인은 옷차림으로 보아 하녀 중 한 명인 듯한데, 밤새 파이드라의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견뎌내느라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져 있군요. 그리고 침대 위의 여인은 사랑의 열정으로 밤을 새워 괴로워하는 파이드라입니다. 침대 위 파이드라의 눈을 보세요. 땅 밑까지 파고 들어갈 정도로 짙게 드리운 다크 서클, 정열과 복수심에 불타는 눈동자. 죽음을 결심한 여성이 가질 수 있을법한 가장 극단적인 감정들을 응축해 놓은 저 눈빛이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떨리게 하네요.
 
출장에서 돌아온 테세우스는 파이드라가 남긴 거짓 유서를 보고 경악하여 아들의 진심은 들으려고 하지 않은 채 저주를 퍼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던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히폴뤼토스를 파멸시켜 달라며 간청하고 아들을 추방한다.
 
<그림 2>. 게랭(Pierre-Narcisse Guerin, 1774-1833), 파이드라와 히폴뤼토스, 1815년.
<그림 2>는 히폴뤼토스와 나머지 세 인물의 대립구도처럼 보이는데요.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으로 히폴뤼토스를 노려보는 테세우스, 시치미 떼는 듯한 표정 속에 복잡한 심경을 감추고 있는 파이드라, 그녀에게 귓속말로 충고 또는 걱정을 해주는 유모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어요. 테세우스는 오른팔로 파이드라를 끌어안으며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고, 왼손은 주먹을 꽉 쥔 채 히폴뤼토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죠. 히폴뤼토스의 저 단호한 몸짓은 파이드라의 사랑에 대한 거부뿐 아니라 테세우스의 오해에 대한 거부이기도 할 겁니다.
 
테세우스 앞에는 투구와 방패가 있고 칼은 파이드라가 쥐고 있네요. 히폴뤼토스의 사냥 도구와 테세우스의 전쟁 무기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군요. 칼을 쥔 자가 테세우스였다면 즉시 히폴뤼토스를 베었을 테지만, 화살과 방패의 맞대결은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겁니다. 부자간에 이렇게 팽팽한 갈등을 만들어놓고, 정작 히폴뤼토스 죽음의 계기는 파이드라가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차를 타고 가던 히폴뤼토스가 해변가를 달리고 있을 때 포세이돈은 바다의 황소를 보내 말들을 놀라게 한다. 마차는 전복되고 히폴뤼토스는 말들이 날뛰는 바람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아르테미스가 테세우스 앞에 나타나 이 모든 사건은 아프로디테의 계략에 따른 것임을 알려주고, 자신도 복수를 위해 아프로디테가 가장 사랑하는 자를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테세우스는 왕궁에 실려온 히폴뤼토스와 만나 서로를 용서하게 되고 히폴뤼토스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그림 3>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히폴뤼토스의 죽음, 1613년경.
<그림 3>의 히폴뤼토스가 죽는 장면은 그 비극적 역동성 때문에 화가들이 즐겨 그렸어요. 건장한 육체를 가졌지만 신의 뜻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진 채 끌려가는 청년의 모습은 숭고함을 느끼게도 하니까요.
 
히폴뤼토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몇 점의 그림 중 루벤스의 작품이 가장 내용에 충실합니다. 왼쪽 아래 포세이돈이 소라고둥 나팔을 불며 바다 괴물들을 자극하고, 황소와 물뱀이 말들을 위협하면 겁에 질린 말들은 방향을 잃게 되죠. 수레가 뒤집어져 히폴뤼토스는 쓰러지고, 따라오던 하인들은 도망가기 바쁘고요. 서사적인 면과 극적인 면이 잘 어우러져 한 화폭에 담긴 수작입니다. 인체와 동물의 저 강렬한 근육 묘사는 루벤스의 특기이기도 하죠.
 
<그림 4>. 쿠르(Joseph Desire Court, 1797-1865), 히폴뤼토스의 죽음, 1825년.
<그림 4>에선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군요. 날은 이미 저물고 말들도 도망갔는지 지쳐 쓰러졌는지 보이지 않고요. 오직 숨이 끊어지려는 그 찰나의 히폴뤼토스를 전면에 두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중에도 양손에 말고삐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 아무런 저항력 없이 누운 상태로 고개가 뒤로 젖혀진 자세 등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에로틱한 관점에서 보자면 저 자세는 성적 쾌락이 극대화된 상태라고 해석되기도 하거든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의 두 가지 충동이 있으며 이 둘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어요. 자신을 영원히 지속시키고픈 욕망과 파괴하고 망가뜨리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철학자 바타유는 이 두 욕망이 대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식을 잃고 심연으로 빠져들어 간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한 상태라고 보았답니다.
 
지난번 나르키소스를 다룬 글에서 자신도 모르는 결함이나 실수를 의미하는 ‘하마르티아’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히폴뤼토스 역시 여성을 혐오하여 저주까지 퍼부을 정도로 강한 하마르티아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여자가 그렇게 싫거든 조용히 아르테미스 여신만 추종하면 될 것을, 괜히 아프로디테가 신들 중 가장 악한 신이라고 말하며 그녀의 심기까지 건드려서 저런 파국을 맞게 되었네요. 자신의 생각이 너무나 확고한 나머지 그와 대치되는 다른 영역을 침범하여 깎아내리는 바람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신들 앞에서 조심했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하나 있어요. 신들은 자신을 모욕한 데 대해 절대 용서하거나 관용을 베풀지 않았지만, 가족으로 맺어진 인간은 비록 죽음의 순간에서나마 오해를 풀고 용서했다는 사실이에요. 어느 학자는 이 장면을 두고 신보다 더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통찰이 그리스 시대 전체를 지배했음을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 예술을 공부하면서 바로 이런 고귀한 인간성을 끊임없이 확인해 왔잖아요. 예술의 역사와 작품들을 공부하는 데는 더 지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도덕적으로 더 완성된 인간성을 얻기 위한 이유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합니다.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