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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 원빈 머리, '시스루뱅' 창시자는 누구?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10.1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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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헤어 스타일리스트
경력 1995년도부터 일을 시작해 올해 26년째
前 런던 토니앤가이 아트 디렉터
前 헤어 스타일리스트 Peter Gray Team
前 AVEDA 콘셉트 스타일리스트
화보, 광고, 패션쇼, 송혜교, 원빈, 강동원 등 헤어 담당
포트폴리오 홈페이지 'lee-hy.com'
최근 화보 속 풀 뱅 앞머리에 올림머리로 동안 미모를 뽐내 화제가 된 송혜교의 담당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그녀의 손이 닿은 스타일은 매번 이슈가 된다. 많은 헤어 디자이너의 롤 모델로 언급되는 그녀를 만나봤다.
 
헤어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화를 좋아해 할리우드에 가서 특수 분장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특수 분장을 배우려면 헤어부터 배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헤어를 시작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에게는 이 길이 맞는 거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머리를 만지고 있네요.
 
어떻게 일했나요?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신포점에서 20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어요. 휴일도 한 달에 두 번뿐이었죠. 아직도 4만 3,100원인 저의 첫 월급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월급으로 20만원을 받았을 때도 선배들로부터 그것도 많은 거라며 운이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힘들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미용업계의 과도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때 고생을 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으로 떠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용을 시작했을 때부터 영국 아니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결국 헤어 역사가 좀 더 긴 영국행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외국에는 미용과가 따로 있지 않아 토니앤가이 아카데미에서 일하며 실전으로 배웠습니다. 비달사순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토니앤가이로 가길 잘한 거 같아요. 제 스승인 피터 그레이가 비달사순 출신이라 두 아카데미의 장점을 같이 배울 수 있었거든요. 
 
환경과 언어가 달라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경쟁이 심하기도 했지만 모델을 헌팅하는 과정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또 한국에서 쓰던 기술이나 습관을 없애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곳의 기법을 받아들이려면 제가 쓰던 기술과 습관을 다 리셋해야 했거든요. 7년이란 경력은 잊어버리자 작정하고 다시 초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어요. 연수가 아니고 직원으로 토니앤가이에 들어가 실전으로 부딪히다 보니 영어가 빨리 늘었어요. 동양인이 저밖에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일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토니앤가이가 함스테드라는 부자 동네에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대학 동문 중 한국 사람이 있다며 기업인 H씨를 아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하버드 재학 당시 본인은 알바를 하면서 학비를 냈는데 H씨는 부모님이 다 내주셔서 괴리감이 들었다는 말을 해 영국인도 한국인이 하는 생각을 비슷하게 해 신기했어요. 또 북한 사람한테 집 초대를 받은 고객도 있었는데 같은 한국 사람이니 저에게 정보를 달라고 하는 거예요. 남한에서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지만 저 같으면 초대에 응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유명한 영국 연예인도 많이 만났어요. 옛날 연예인은 잘 몰라 다른 직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저 혼자 태연했던 일도 생각나네요.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나요?
워크 퍼밋을 받은 상태라 조금 있으면 영주권이 나오는 단계였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영국에 평생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워크 퍼밋을 받기 힘들뿐더러 영주권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걸 거부하고 한국에 간다고 하니 토니앤가이 원장님이 저에게 미쳤다고 한 기억이 나네요. 돌아와서는 살롱에 들어가지 않고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어요.
 
잡지, 광고, 패션쇼 등 많은 작업을 하면서 매번 변화를 주는 게 힘들 것 같은데 콘셉트는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하나요?
잡지를 예로 들면 에디터가 어떤 무드의 촬영이라고 기획안을 공유하면 그 무드에 맞게 준비를 합니다. 현장에 가면 제가 생각했던 헤어스타일과 모델의 얼굴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촬영 전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서 갑니다. 대부분 현장에서 수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도대로 해본 적이 많지 않아요. 다행히 경험이 많다 보니 상황 대처 능력이 있어 가능한 것 같아요. 손이 빠른 편이기도 하고요.
 
이혜영 헤어 스타일리스트 작업 현장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어린 친구들의 관심사도 찾아봐요. 촬영 때 가끔 관계자들이 제가 모델을 모를까봐 사진을 보내주는데 사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느낌이 있는 모델을 만나면 아이디어가 순간적으로 떠오르기도 해요. 과거 워스트 헤어스타일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영화도 많이 참고하고요. 
 
빗앤붓 박내주 원장, 살롱하츠 백흥권 대표 등 제자들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겠습니다. 
박내주 원장과 백흥권 대표는 소개로 만나 함께 일을 했습니다. 백흥권 대표는 면접을 보러 일본에서 한국까지 왔어요. 그 때 일본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인데 마무리를 잘 하고 왔으면 해서 면접 6개월이 지난 후에야 같이 일하게 됐습니다. 모든 일에서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둘 다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능력도 좋아 잔소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행복합니다.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소리와 칭찬이 들려오면 기분이 좋아요.
 
제자뿐 아니라 SNS나 개인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디자이너들도 많을 거 같습니다. 
저는 사수가 외국인이다 보니 힘든 걸 얘기하고 싶어도 만나기 쉽지 않아 못했어요. 그런 경험이 있어 최대한 성심성의껏 솔직하게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면서 외국으로 나간 분도 있어요.
 
실장님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스승인 피터 그레이입니다. 런던에 있을 때 백스테이지에서 일을 하고 싶어 친구를 통해 수소문을 해 피터 그레이를 만나 같이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가끔씩 한국에 올 때마다 저에게 ‘살이 찐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라며 무서운 말을 하고 가세요. 행복하지 않아서 살이 찐다는 그 말을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웃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요?
프리랜스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스타일링이 강점이지만 저는 커트, 염색 등도 다 하는 게 강점인 것 같아요. 한동안 유행하던 시스루뱅도 제가 만든 단어에요. 기자들이 앞머리 이름을 물어 봐 즉흥적으로 이마가 보이는 스타일이니 시스루뱅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후로 다들 시스루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영화 <아저씨>의 원빈 머리도 오랫동안 유행했죠.
 
휴일은 어떻게 보내나요?
일을 하지 않을 때도 하루를 쪼개서 사는 스타일입니다. 평소 여유 시간이 없어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으려고 해요.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게 오히려 재충전할 수 있고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머리가 꽉 차 있으면 늘 일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취미 생활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손으로 하는 걸 다 좋아해서 최근에는 뜨개질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내야 잠을 자는 스타일이라 뜨개질을 취미 생활로 해도될지 고민입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뜨개질하는 과정에서 힐링이 되는 거 같아요. 사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일로 풀어요. 작업을 잘 하면 기분이 좋으니까 그걸로 피로가 가십니다. 일에 치여 살아도 잠을 잘 자 아직까지 건강에 이상 없어요.
 
코로나19 이후 근무 방식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코로나19 전에는 출장을 많이 갔었어요. 한 달에 최소 2번 이상을 다녀서 15년 동안 비행기를 300번 넘게 탄 거 같아요. 화보와 광고 작업이 있어 올 2월까지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코로나19 창궐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뜨개질을 많이 한 거 같아요.
 
셀럽과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피드백을 세계적으로 받을 것 같습니다. 찾아보는 편인가요? 
찾아보는 편은 아니고 주위에서 많이 알려줘요. 한 번은 배우 송혜교 씨 팬미팅 때 팬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팬이 왜 앞가르마를 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송혜교 씨가 저를 무대로 불러서 앞가르마는 의상과 콘셉트가 맞으면 계속 하겠다고 답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스타일 리스트로 악플이 잔뜩 달리더라고요.
 
유명 모델 벨라 하디드 개인 SNS에 업로드된 이혜영 헤어 스타일리스트와의 작업 모습
잊지 못하는 셉럽과의 일화가 있나요? 
유명 모델인 벨라 하디드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아시아에 올 때마다 저를 부르겠다는 말을 했었어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아시아에 올 때마다 저에게 연락을 해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촬영 일화도 있어요. 아직도 12월 23일, 날짜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록 가수 코트니 러브와의 작업이었죠. 당시 코트니 러브가 마약에 중독된 상태라 촬영을 할 때 옷을 가위로 자르고, 머리에 샴페인을 붓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예요. 또 탈색한 머리를 빼야 했는데 호텔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기도 했어요.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저한테 해코지를 할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오랫동안 작업해온 셀럽들이 많은데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비법이 궁금합니다. 
지루하지 않게 다른 스타일을 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지금 머리를 하면서 다음 머리까지 생각하면서 해요. 그리고 대화를 많이 나눠 당사자의 의견을 잘 반영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작품이 잘 나왔을 때요. 또 즐겁게 촬영할 때
도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에서 기태 역으로 나온 남윤수 배우와 작업을 했는데 너무 유쾌한 시간이어서 기억이 납니다. 외모뿐 아니라 사람을 밝게 하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제일 반응이 좋았던 작업은? 개인적으로 손꼽는 작품이 궁금합니다. 
하나를 꼽기가 힘들어요. <아저씨> 원빈 머리, <검사외전> 강동원 머리, <그들이 사는 세상>, <남자친구>의 송혜교 머리 등 반응이 좋았던 스타일이 많았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셀럽의 스타일을 잡아주는 작업은 재밌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에 피드백이 다양해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재밌었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피터 그레이와 함께한 백스테이지 작업이 가장 힘들면서 재밌었어요. 빈티지 바비 인형 100개를 모아서 사람 머리처럼 똑같이 스타일링했죠. 다 다른 100가지 스타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바비인형이 너무 작아 작업할 때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이혜영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작업물
다시 돌아가고 싶을 시절 있나요?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면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서 일하고 싶어요. 일만 하고 달려왔기 때문에 제 삶 전부가 일이었어요. 거절을 잘 하지 못해 많은 작업을 하다 보니 일만 했던 거 같아요.
 
같이 일하는 구성원을 뽑는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실장님과 인연을 맺고 싶은 디자이너들에게 알려 주세요!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랑 일하는 다른 스태프와의 조화도 중요해요. 프리랜스 디자이너가 되려면 살롱 경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지만 배울 게 분명히 있어요. 프리랜서도 커트, 염색 등 모든 기술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죠.
 
활동 분야에서 어떤 헤어 디자이너로 기억에 남고 싶나요? 
머리를 오래 했지만 아직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재미있고요. 열심히 노력하는 헤어 디자이너로 기억 되었으면 해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 제자들이 잘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숍을 낼 생각은 없어요. 지금처럼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계속 성장하게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혜영 실장님을 보며 꿈을 키우는 준비생들에게 한마디해주세요. 
‘초심을 잃지 말자’입니다. 초심을 잃으면 도태되기 쉬워요. 저도 힘들 때나 슬럼프가 올 때 일하는 자체가 좋았던 처음 그 때를 떠올립니다. 어떤 꿈을 가지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을 했다면 만약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윤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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