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기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⑳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여인들 시빌레와 카산드라 -1
  • 이수지 에디터
  • 승인 2020.10.26 1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5 – 예언하는 여인들 시빌레와 카산드라 1 

 

이 세상 대부분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의 주제는 사랑 아닐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그리스 신화의 내용 역시 사랑을 마주한 여러 인물들의 반응이나 태도를 다룬 것들이에요. 그런데 모두들 느끼셨나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결말은 오늘날의 영화나 TV 드라마의 공식과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요.


그리스 신화나 비극에서 사랑의 스펙트럼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이라 할 수 있어요. 사랑이 이루어졌느냐 아니냐에만 주로 관심을 두는 오늘날의 관점과는 많이 다르죠. 사랑의 조건과 맹세의 무게감, 그리고 이를 거부했을 때의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하나의 세계가 생겼다 망했다 할 정도이고요.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운명에 대해 아주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번에 다룰 인물은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 여인들입니다. 먼저 시뷜레라는 무녀가 있는데요. 아폴론이 왜 무녀인 시뷜레를 사랑했냐면, 그가 예언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여인에게 끌려서 그런 것이겠죠.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그리스의 델포이라는 곳은 아폴론 신전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어요. 델포이에 가면 ‘옴팔로스’라는 이름의 돌이 있는데, 옴팔로스는 배꼽이라는 뜻이죠. 인체의 중심에 배꼽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중심인 델포이에도 옴팔로스가 있었던 거지요. 원래 델포이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신탁을 전하는 장소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여신의 배꼽인 옴팔로스는 자궁을 의미하기도 해요.


가이아는 자기 자식이기도 한 왕뱀 퓌톤에게 이 신탁소를 지키게 했는데, 나중에 아폴론이 퓌톤을 죽인 후 그의 아내인 퓌티아를 사람으로 변신시켜 자신의 신탁을 전하는 무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성을 상징하는 여신이 힘을 잃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의 남신에게 올림포스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사건이에요. 신화에서는 퓌티아가 환각 상태로 무아지경에 빠져 아폴론의 예언을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델포이의 땅 밑에 환각 작용을 하는 가스가 묻혀 있는게 발견되어서 다들 그리스 신화의 과학적 근거에 감탄했다고 하네요.


아폴론은 시뷜레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해요. 시뷜레는 모래를 한 줌 쥐고서 자신의 생일이 이 모래알의 수만큼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한마디로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는 것이죠. 그런데 젊음도 함께 유지시켜달라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고 결국 늙은 상태로 몸이 점점 쪼그라드는 고통 속에서 천년을 살았다고 해요. 다른 설에 의하면 시뷜레가 영생을 얻은 후 아폴론의 사랑을 배신했기 때문에 그 벌로 청춘을 빼앗겼다고도 하네요.

 

<그림 1>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델포이의 시뷜레, 1509년.

<그림 1>에서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5명의 시뷜레를 그려놓았는데요. 델포이의 시뷜레는 가장 젊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지만 젊음을 잃어버린 시뷜레는 델포이의 한 동굴에서 천년을 살았는데 늙어가면서 몸이 점점 쪼그라들어 나중에는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있었고 목소리만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목소리만 남았다는 데서 메아리가 되어버린 에코가 떠오르지요. 예언과 메아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다음 글에서 설명할 테니 여러분도 한번 짐작해보세요.

 

<그림 2> 미켈란젤로, 쿠마에의 시뷜레, 1510년.

쿠마에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인데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고 해요. 원래 시뷜레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던 델포이의 한 여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녀들을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그래서 그녀들이 활동했던 지역의 이름을 앞에 붙여서 ‘◯◯◯의 시뷜레’라는 식으로 구별한다고 하네요.<그림 2>

 

미켈란젤로의 화풍이 원래 사람들을 좀 우락부락하게 묘사하는 특징이 있긴 한데, 이 그림은 정말 할머니를 그린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얼굴만 쪼글쪼글하지 온몸이 근육질이고 글래머러스하기까지 하죠.

 

<그림 3> 라파엘(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무녀들, 1514년경.

<그림 3>을 보면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 성당에도 여러 명의 무녀들이 그려져 있어요. 그런데 이들 곁에는 천사가 한 명씩 붙어 있네요.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가 서로 만나는 현장이군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이라고나 할까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문명이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융합되었으니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바로 이러한 두 문명의 만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이 글의 첫머리에서 그리스 신화의 사랑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말했었죠. 사랑이 인간의 운명을 얼마나 크게 뒤흔들어놓는지를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유럽 문명사의 대격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네요. 시뷜레의 사랑이 가져온 나비효과가 엄청나군요.


아폴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시뷜레는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살았어요. 죽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그녀의 말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죠.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감수할 것이냐,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더 큰 무언가를 내려놓고 평범하게 살 것이냐… 그리스 신화에는 신에게 무언가 대가를 요구하고서 감사의 표시도 하지 않은 채 오만하게 굴다가 화를 입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뛰어난 능력이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 부분을 희생해야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그림 4> 프라우트(Samuel Prout, 1783-1852), 티볼리의 시뷜레 신전, 연도 미상.

<그림 4>에서 폐허가 된 신전과 빨래의 대비를 보니 인생이란 게 참 보잘것없고 덧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들의 위대함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에 비하면 별거 아니구나 싶어요. 과거에는 위대했지만 지금은 무너져버린 신의 권위와, 뛰어난 건 하나도 없지만 꾸준히 일상을 지키는 인간의 평범함 중에서 어느 게 더 좋은 건지 쉽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뷜레처럼 온 일생을 걸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세보다는 현실을 중시하며 순간순간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으려 했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스 예술을 살펴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했던 인본주의입니다. 


비록 영생하지는 못하지만 인간만큼 위대하고 도덕적이며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는 믿음이 헬레니즘의 근본이 된 것이죠. 헬레니즘은 문명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했고 잠시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오늘날까지 그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관련기사